산업 산업일반

"배터리협회 인력도 빼가..완성차 업체 100% 내재화 불가능"

안태호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1.08.21 13:23

수정 2021.08.21 16:25

정순남 한국전지산업협회 상근부회장 인터뷰

석박사 1000명, 학사 2000명 인력 부족
"경제협력관 유럽 파견, 배터리과 신설 必"
"리튬 등 원재료 확보, 정부가 직접 나서야"
"ESS 등 전기차 외 배터리 시장도 급성장"
[파이낸셜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8일 충북 청주시 LG에너지솔루션 오창 제2공장에서 열린 K-배터리 발전전략 보고 'K-배터리, 세계를 차지(charge)하다'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8일 충북 청주시 LG에너지솔루션 오창 제2공장에서 열린 K-배터리 발전전략 보고 'K-배터리, 세계를 차지(charge)하다'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정순남 한국전지산업협회 상근부회장은 배터리 산업의 급속한 성장세를 피부로 느낀다. 바로 인력 문제다. 최근 그에게 같은 용건의 전화가 자주 온다. 배터리 관련 사업에 진출하려는 업체들의 연락이다.
이들은 국내 배터리 제조 3사인 LG에너지솔루션, SK이노베이션, 삼성SDI에 재직 중인 부장급 이상 인력 중 대표이사로 모실만한 인물을 추천해 달라고 요청한다.

하지만 한 명도 추천하지 못했다. 인력 자체도 부족한 데다 중국 등으로 옮기는 인력이 많아서다. 국내 제조 3사도 '인력 블랙홀'이라 불릴 만큼 전문가 흡수에 나서고 있다. 인력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그야말로 '인재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협회도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다. 그는 전지산업협회가 간접적으로 배터리 산업 인력을 양성하고 있다는 농담을 던졌다. 최근 직원 몇 명이 협회를 그만두고 노스볼트(스웨덴), LG화학, 중국업체로 이직했다. 정 부회장은 "광주, 나주, 광양 등에 분원 및 센터를 운영하는데 필요한 인력을 채용했다"며 "이분들을 다른 곳에서 모셔가시는 탓에 협회 운영에 조금 어려움이 있었다"고 말했다.

협회가 진행한 수요조사에서 석박사급은 1000~1300명, 학사급은 1500~2000명이 부족하다는 결과가 나왔다. 현재 5개 대학과 인력양성 사업을 진행 중이다. 재작년부터 학교별 10명 안팎으로 총 100명 이상 배터리 전문 인력이 양성되고 있다. 정 부회장은 "인력양성 사업은 취업률 80%를 넘어야 계속 진행될 수 있는 터라 걱정했다"면서도 "졸업하지도 않은 학생들을 선점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취업률 100%는 문제없을 것 같다"고 자신했다.

정순남 한국전지산업협회 상근부회장.
정순남 한국전지산업협회 상근부회장.

정순남 부회장은 산업통상자원부 정통 관료 출신이다. 행시 26회로, 1983년 공직에 발을 들였다. 그간 정부에서 축적한 경험을 배터리 산업 발전에 쏟아붓고 있다.

지난 9일 서울시 서초구 양재동에 위치한 협회 집무실에서 만난 그는 배터리 산업 발전을 위한 제언을 쏟아냈다. 유럽 현지에 파견돼 한국 배터리 업체들을 도와줄 경제협력관을 파견해야 한다는 주장도 그중 하나다. 정 부회장은 "해외에서 인력을 고용할 때 당면하는 법률·회계적으로 복잡한 문제들이 많다"며 SK이노베이션의 불법 취업 논란을 예로 들었다. 작년 8월 미국 조지아주 의원이 SK 측 공장 건설에 한국인들이 불법 취업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논란이 불거진 바 있다.

정 부회장은 "과거 인도네시아와의 경제협력이 활발해지면서 정부가 경제협력관을 파견한 사례가 있다"면서 "배터리 산업에도 유럽 지역을 담당하는 경제협력관이 필요하다고 건의했다"고 전했다.

이런 그가 정부에 꾸준히 요청하는 게 또 있다. 배터리 담당과 또는 팀을 신설하는 문제다. 정 부회장은 1980년대부터 국내 산업 발전에 따라 담당 정부 조직이 새로 꾸려지는 모습을 직접 목격해온 장본인이다. 자동차과, 조선·해양플랜트과, 반도체·디스플레이과 등이 특정 산업 진흥을 위해 일한다. 그는 지금이 배터리과 또는 팀을 신설할 적기라고 본다.

배터리 산업은 현재 '전자전기과'에서 담당한다. 배터리 산업이 급속하게 성장하고 있지만, 정부조직은 아직 '건전지'로 불리던 소형 전지만을 생산하던 때에 머물러있는 셈이다. 그는 "업계 의견을 수렴해서 정부 예산에 반영하고, 청와대나 총리실 등 정부 내 주요 조직에 전달할 수 있는 조직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경기도 안성시 원곡면 경부고속도로 안성휴게소 서울 방향에 설치된 초고속 전기차 충전소. 뉴스1
경기도 안성시 원곡면 경부고속도로 안성휴게소 서울 방향에 설치된 초고속 전기차 충전소. 뉴스1

다음은 정 부회장과의 일문일답

―2017년부터 협회 부회장을 맡으셨다. 취임 당시와 지금과 분위기가 많이 달랐겠다.

▲사실 전지산업협회라는 조직이 있는지도 몰랐다. 그 당시엔 다들 전지나 배터리에 큰 관심이 없었던 것 같다. 2018년쯤 테슬라가 본격적으로 전기차를 출시하기 시작했다. 기후변화, 탄소중립 등도 화두가 됐다. 이런 것들이 맞물려 배터리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협회 부회장으로서 어떤 분들을 주로 만나는지.

▲정부측을 접촉도 하지만 주로 회원사를 자주 만난다. 취임했을 때 40곳에 불과하던 회원사가 현재 106곳 정도로 늘었다.

―최근 정부가 발표한 K배터리 전략에 대한 업체들의 반응은.

▲지금까지 배터리 업계가 정부에 대해 조금 서운한 마음을 가졌다. 정부는 전기차를 제2의 반도체 또는 미래 먹거리로 이야기하면서도 배터리 자체에 대해선 별다른 언급이 없었다. 배터리와 관련된 정부 정책을 발표한 게 처음이다. 배터리 업계의 관심이 굉장히 높았고, 기대도 많이 했고, 만족도도 상당히 높다.

―기업의 관심이 특히 높은 분야는.

▲차세대 배터리 연구개발과 인력이다. 전고체, 리튬황, 리튬금속 등 차세대 배터리에 대한 R&D를 대폭 지원하는 방안을 내놨다. 배터리 3사가 5000억원에서 거의 1조원 정도의 R&D를 하고 있는데, 주로 리튬 배터리의 성능을 업그레이드하는 쪽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아무래도 (차세대 배터리는) 기업이 위험을 감수하기 어려운 분야다. 배터리 전문 인력도 많이 부족하다. 국내 배터리 학과를 가진 학부 과정도 없다. 이번 발표 때 인력 양성 사업을 지원하는 방안도 마련됐다.

삼성SDI 모델이 원형전지를 소개하고 있다. 삼성SDI 제공. 뉴스1
삼성SDI 모델이 원형전지를 소개하고 있다. 삼성SDI 제공. 뉴스1

―K배터리 전략에 담긴 추진 과제가 많다. 진행 상황은 어떤 방법으로 체크하나.

▲전략 추진을 위한 협회 내 테스크포스팀을 만들었다. 크게 차세대 배터리 개발, 인력양성, 폐배터리 리사이클로 나눴다. 산업부의 '프로젝트 디렉터(PD)' 제도도 배터리 업계에 처음 적용됐다. 협회와 정부뿐만 아니라 전자부품연구원, 전기연구원 자동차부품산업연구원도 전략 추진에 함께한다. 산업부가 전자부품연구원에서 PD 한 분을 뽑았다. PD가 전반적인 로드맵을 마련하고, 진도를 체크하는 역할을 한다.

―이번 발표에서 아쉬운 부분은.

▲원재료 확보 부분이다. 정부가 해결하기 어려운 분야이긴 하다. 원재료 비중이 전체 배터리 가격에서 60% 정도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니켈, 코발트 등 광물은 소수 국가가 독점하고 있어서 가격 변동성이 매우 크다. 과거 정부에서 해외자원 개발에 상당히 어려움이 겪었기 때문에 기업도, 정부도 선뜻 대규모 투자를 하기에 어려운 분위기다. 과거에는 광물자원공사, 조달청, 해외자원 개발협회 같은 곳에서 성공불 융자 제도를 운영했다. 정부가 투자금을 융자해주고 성공하면 빌린 돈을 갚는다. 실패하면 대출한 돈을 상환하지 않아도 된다. 실패할 확률이 굉장히 높기 때문에 도입한 제도다. 성공하기도 했고, 실패하기도 했다. 수출입은행이나 무역보험공사 등에서 보증해주는 제도가 필요하다.

―MB정부 때 자원외교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당시 유가가 140달러, 150달러까지 올라갔다. 해외자원을 확보하지 않으면 큰 문제가 발생한다는 위기의식이 있었다. 투자하고 보니 피크(고점) 때 투자를 해버린 거다. 이런 리스크가 있으니 섣불리 투자를 못 한다. 중국, 일본 이런 나라들은 워낙 큰 나라인 터라 과거부터 해외 자원을 개발하는 인력을 양성해왔다. 중국은 국부펀드를 투입한다. 손실을 보더라도 일단 정부가 투자해서 소유권을 확보하는 구조다. 해외 자원 분야에서 중국 의존도가 커질 수밖에 없다. 미·중 무역 갈등이 극심해지면 미국이 중국의 희귀금속 수출을 규제하는 등 통상 압력을 행사할 수도 있다. 이건 기업이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다. 정부가 조정을 해줘야 한다.

사진=뉴스1
사진=뉴스1

―정부에서 배터리 담당 과를 신설을 주저하는 이유는.

▲일자리 문제다. 배터리 업체 투자 대부분이 해외에서 이뤄지고 있다. 국내 일자리 창출에는 크게 기여하지 못하는 편이다. 산업이 더 성장하고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게 되면 배터리과가 생길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물론 지금도 배터리 소재· 부품·장비 기업들은 국내서 일자리를 만들어내고 있다.

―전기차 외 다른 어플리케이션의 성장성은.

▲전동공구, 소형가전에 들어가는 소형배터리 시장은 공급 부족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주로 원통형 배터리가 들어가는데, 삼성전자의 경우 공급이 부족해서 삼성SDI에서 받는 것 말고도 역수입을 하는 상황이다. 에너지 저장장치(ESS) 시장도 해외에서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매년 40~50%씩 성장하고 있다. 앞으로 화력, 원자력발전소가 사라지고 풍력, 태양광으로 전환될 것이다. 생산 전력을 ESS에 저장했다가 전기 생산이 안 되는 시간에 사용하는 분산전원시스템으로 가는 추세다. 이 밖에도 재활용 배터리, 선박, 드론, 항공기, UAM 등 다양한 어플리케이션에서 배터리가 사용될 것이다.

―완성차 내재화 문제는 어떻게 보나.

▲완성차 업체는 리스크 문제로 배터리를 100% 내재화 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본다. 최근 전기차 화재로 리콜 비용이 많이 들고 있다. 이 리스크를 완성차 업체가 혼자 끌어안기는 어렵다. 물론 완성차 업체들은 배터리 생산 일부를 내재화 해야 한다. 배터리 업계를 상대해야 하기 때문이다.
자체적인 배터리 인력을 보유하고 경험을 쌓아야 협상력이 생긴다. 하지만 딱 그 수준까지다.
10% 내외로 완성차 업체들이 내재화를 하지 않을까 싶다.

미국 조지아주 제1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 SK이노베이션 제공
미국 조지아주 제1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 SK이노베이션 제공


eco@fnnews.com 안태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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