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건·사고

조직폭력배가 왜?…검사 출신 변호사 살해 진실 밝혀지나?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1.08.22 15:31

수정 2021.08.22 15:38

제주지방법원, 50대 피의자 구속 영장 발부 
22년 전 살인교사, 방송서 자백했다가 덜미
제주지역 장기미제 ‘이승용 변호사 살인사건’ 관련 살인교사 혐의를 받고 있는 A(55·가운데)씨가 21일 오전 제주동부경찰서에서 영장실실심사를 받기 위해 호송차로 이동하고 있다. 2021.08.21. [뉴시스]
제주지역 장기미제 ‘이승용 변호사 살인사건’ 관련 살인교사 혐의를 받고 있는 A(55·가운데)씨가 21일 오전 제주동부경찰서에서 영장실실심사를 받기 위해 호송차로 이동하고 있다. 2021.08.21. [뉴시스]

■ 법원 “도주 우려”…김씨 “배후 세력 없다”

[제주=좌승훈 기자] 22년 전 제주에서 검찰 출신 변호사의 살해를 교사한 혐의로 조직폭력배 행동대원 출신의 김모(55)씨가 해외에서 붙잡혀 국내로 송환된 가운데, 제주지방법원이 지난 21일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 후 “주거가 일정하지 않고, 도주 우려가 있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이모 변호사 피살 사건은 제주의 대표적인 미제사건 중 하나다. 김씨는 1999년 11월5일 오전 6시50분쯤 제주시 제주북초등학교 북쪽 삼거리에 세워져 있던 승용차에서 흉기에 찔려 숨진채 발견된 이 변호사(당시 45세) 살해를 교사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 변호사는 가슴과 배, 왼쪽 팔 등 6군데를 예리한 흉기에 찔렸고, 과다 출혈로 사망했다. 경찰은 가정이나 식당에서 사용하는 칼이 아니라 송곳처럼 끝은 뾰쪽하지만 뼈를 뚫을 정도로 단단한 재질로 만든 전문적인 살인도구로 추정했다.



해당 사건은 기존 15년이던 공소시효가 이미 지났지만, 경찰은 일명 ‘태완이법’을 적용해 검거했다. ‘태완이법’은 살인사건의 공소시효를 폐지하는 내용의 형사소송법 개정안이다. 2015년 7월24일 국회를 통과해 같은 달 31일부터 시행됐다.

김씨는 지난해 6월 27일 방영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인터뷰에서 1999년 10월 당시 조직 두목인 백모(2008년 사망) 씨로부터 범행 지시를 받았으며, ‘갈매기’라 불리던 동갑내기 손모(2014년 사망) 씨를 통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김씨는 공소시효가 만료된 줄 알고 인터뷰에 나섰다가 22년 전 범행에 꼬리를 잡힌 것이다.

■ 피의자 공소시효 끝난 줄 알고 방송 출연

김씨는 방송에서 범행에 사용된 유사한 모양의 흉기를 직접 그려서 보여줬다. 또 당시 이 변호사가 제주시 탑동 인근에 있던 모 카페에서 나와 승용차에 타기 전까지 동선도 알고 있었다. 또 범행 현장 주변에 가로등이 꺼진 정황도 파악하고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는 지난 6월 불법체류 혐의로 캄보디아 현지에서 검거됐으며, 지난 18일 국내로 강제 송환됐다.

제주 지역 장기미제 '이승용 변호사 살인 사건' 핵심 피의자로 지목된 A(55·왼쪽 두번째)씨가 지난 18일 오후 제주국제공항 1층 도착장에서 경찰에 의해 송환되고 있다. 경찰은 A씨를 1999년 11월5일 발생한 이 변호사 살인사건의 교사범으로 보고 체포영장을 발부받았다. 캄보디아에 불법체류 중이던 A씨는 현지 경찰과 인터폴 적색수배에 따른 강제추방이 결정돼 국내로 송환됐다. 2021.08.20. [뉴시스]
제주 지역 장기미제 '이승용 변호사 살인 사건' 핵심 피의자로 지목된 A(55·왼쪽 두번째)씨가 지난 18일 오후 제주국제공항 1층 도착장에서 경찰에 의해 송환되고 있다. 경찰은 A씨를 1999년 11월5일 발생한 이 변호사 살인사건의 교사범으로 보고 체포영장을 발부받았다. 캄보디아에 불법체류 중이던 A씨는 현지 경찰과 인터폴 적색수배에 따른 강제추방이 결정돼 국내로 송환됐다. 2021.08.20. [뉴시스]

당초 두목은 다리를 찔러 겁을 주라고 했지만, 자신의 말을 듣고 직접 행동에 나선 손씨가 피해자가 저항하는 과정에서 살해했다는 것이 김씨의 진술이다.

김씨는 자신의 자백을 통해 유족의 억울함을 풀어주고 지금이라도 피해자의 원혼을 달램으로써, 유족 측으로부터 사례비라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이 같이 자백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는 밤행 당시 유탁파 조직이 1998년 치러진 제주도지사 선거에 개입했을 가능성도 제기했다. 선거가 끝난 후 당선된 A후보의 캠프에 있던 모 마을 청년회장이 선거 자금 800만원을 받은 사실을 폭로했고, 이 변호사는 이 사건을 맡아 부정선거의 진실을 밝히고, 이 청년의 양심선언을 돕기 위해 나선 것으로 전해졌다.

■ 동기·배후 의문…지사선거 연루 가능성도

또 김씨는 술집에서 유탁파 두목 백모씨를 만나서 직접 범행을 지시받았다고 했지만, 백씨는 당시 범죄단체 조직 혐의로 대법원에서 최종 징역 5년을 선고받고 교도소에 수감 중이었다.

이 변호사의 경찰 수사 기록은 6000페이지에 이른다.

이 변호사(사법연수원 14기)는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1985년부터 서울·부산지검에서 검사생활을 한 후 1992년 고향 제주로 내려와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했다. 김진태 전 검찰총장과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 홍준표 국회의원 등과 동기다.


경찰 관계자는 “쟁점이 많아 앞으로 입증해야 할 부분도 많다”며 “김씨가 직접 범행을 저질렀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폭넓게 조사를 벌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씨는 21일 오전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제주동부경찰서 유치장에서 제주지방법원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배후가 있느냐”는 취재진 질문에 “배후 세력은 없다”고 말했다.
또 혐의를 인정하는지, '유가족들에게 할 말 없는지를 물렀지만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jpen21@fnnews.com 좌승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