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곽인찬 칼럼] 국민밉상 민노총, 그렇지만

곽인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1.08.23 18:03

수정 2021.08.23 18:03

복지 부실에 해고 공포감
일자리에 병적으로 집착
사회안전망 확충이 해법
[곽인찬 칼럼] 국민밉상 민노총, 그렇지만
민주노총은 국민밉상이다. 청개구리가 따로 없다. 코로나 속에서 집회를 여는 모습을 보면 절로 눈살이 찌푸려진다. 방역지침을 무시한 막무가내 집회는 꼭 열혈 종교집단을 보는 것 같다. 위원장은 총리보다 위다. 김부겸 총리는 선약 없이 갔다가 퇴짜를 맞았다.
경찰은 구속영장을 집행하지 못해 쩔쩔맨다. 민노총과 위원장은 치외법권 지역에 사는 듯하다.

민노총은 비정규직 노동자를 위해 머리띠를 동여맨다. 위선이다. 비정규직을 양산한 주범이 바로 민노총이다. 산하엔 대기업 등 고소득 정규직 노조가 즐비하다. 자연 민노총은 정규직 임금을 높이는 데 전력투구했다. 현대차 노조에 붙은 '귀족' 칭호가 그 증거다. 기업은 인건비 총량에서 정규직 몫이 커지면 채용을 줄이거나 뽑아도 저임 비정규직을 선호한다. 민노총이 비정규직 권익 보호를 외치는 것은 병 주고 약 주는 격이다.

그런데 그런 민노총이 문재인정부에서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노조원 수가 쑥쑥 늘어 100만명을 넘어섰다. 정부 공인 제1 노총 자리를 꿰찼다. 네이버·카카오처럼 잘나가는 혁신기업 노동자들도 속속 민노총 깃발 아래 모였다. 심지어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민노총을 찾는다. 기이한 역설이다.

민노총의 기를 꺾을 방도는 없을까. 있다. 민주화 운동에서 해법을 찾을 수 있다. 한때 부모들은 자식들이 데모를 할까봐 전전긍긍했다. 그땐 데모하다 다치거나 학교에서 쫓겨나는 일이 흔했다. 그래도 학생들은 줄기차게 데모를 했다. 왜? 한국은 독재국가였으니까. 이른바 86세대 중에는 목숨 걸고 싸운 이들이 적지 않다. 이들 중 상당수가 문 정권에서 요직을 차지했다.

그러던 어느날 갑자기 학생운동이 사라졌다. 자식들이 어른 말을 듣기로 마음을 바꾼 걸까? 천만에. 싸울 상대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87년 체제'가 들어선 뒤 한국은 대통령을 제 손으로 뽑고, 하고 싶은 말도 다 할 수 있는 나라가 됐다. 데모는 독재를 먹고 자랐다. 그 독재가 사라지니까 학생운동도 저절로 소멸했다.

스웨덴은 또 다른 교훈이다. 20세기 초 스웨덴은 극렬 노동운동의 대명사였다. 1931년 총파업에서 '오달렌의 비극'이 벌어진다. 수도 스톡홀름 북쪽에 있는 작은 마을에서 군의 발포로 노동자 5명이 죽고 5명이 다쳤다. 이 사건은 스웨덴이 노사 관계를 새로 짜는 계기가 됐다. 1938년에 맺은 살트셰바덴 협약은 여지껏 노사관계의 뼈대를 이룬다.

이와 함께 사회민주당 정부는 국민의집(Folkhemmet)이라는 개념 아래 1932년부터 복지국가 건설에 착수했다. 사민당은 한손(재임 14년)~에를란데르(23년)~팔메(11년) 총리를 거치면서 세상이 부러워하는 복지의 틀을 다졌다. 사회안전망이 탄탄하면, 그래서 비빌 언덕이 있으면 노조원들이 눈에 핏발을 세우지 않아도 된다. 일자리를 잃어도 인간으로서 품위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밉상 민노총을 두둔할 생각은 없다. 다만 비난의 총부리를 모조리 민노총에 돌리는 건 다시 한번 생각하자. 한국적 현실에서 해고는 여차하면 빈곤층 전락을 뜻한다. 그만큼 복지가 부실하다. 이걸 손보는 게 먼저다. 그래야 민노총은 싸울 상대를 잃고, 그래야 노사평화 물꼬가 트인다.
요컨대 든든한 복지야말로 기고만장 민노총을 무력화할 전략적 병기다. 앞뒤 안 재고 들입다 때리는 게 능사가 아니다.
대선 주자, 특히 보수 후보들이 이 점을 꼭 알았으면 한다.

paulk@fnnews.com 곽인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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