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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vs책] 두 할머니가 들려주는 "아직 늦지 않았다는 말"

조용철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1.08.26 11:28

수정 2021.08.26 13:18

햇빛은 찬란하고 인생은 귀하니까요/장명숙/김영사
햇빛은 찬란하고 인생은 귀하니까요/장명숙/김영사
끝날 것 같지 않던 뜨거운 여름도 슬슬 막을 내리는 듯하다. 지난여름이 얼마나 뜨거웠건 간에 한바탕 비가 내리고, 북태평양 기단이 물러나면 공평하게 가을이 온다는 점에서 우리는 어떤 자연의 이치를 읽을 수도 있다. 젊음이 얼마나 빛났건, 누구에게나 나이듦은 공평하게 찾아온다는 것이다.

일흔 살이 된 나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사실 일흔까지 내다보기엔 세상은 너무 바쁘고, 주어진 일은 많다. 대학을 졸업하면 공백기 없이 취직에 성공해야 하고, 서른이 넘기 전에 얼마 이상 자산을 모아야 하며, 그 돈으로는 집을 사야 하고, 결혼을 해야 하고, 아이를 키워야 한다. 이 모든 여정이 끝나고 나면 노인이 되어 있을 것이다.
그 노인이 무엇을 하며 살고 있을지를 생각해 본 적은 없다. 그냥 별 일 없이 조용하고 심심한 삶일 것이다.

하지만 유튜브 시청자들이 발견한 두 할머니의 이야기를 가만 보고 있다보면, 생각보다 일흔 노인의 삶도 젊은이의 삶만큼이나 신나고 빛날 수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한평생 아버지, 남편, 자식을 위해 일한 박막례 할머니는 나이 일흔에 유튜버로 데뷔했다. 할머니의 치매를 염려해 일을 관두고, 할머니와 여행을 떠나보겠다고 결심한 손녀 김유라 PD의 천재적 기획력과 함께. 우리나라 패션 역사에 한 획을 그으며, 그 연세에도 여전히 이탈리아를 수시로 오가며 바쁘게 일하는 '밀라논나(밀라노 할머니)' 장명숙씨 역시, 후배의 권유로 유튜브를 시작했다. ‘할머니들의 이야기라 시시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라면 오산이다. 연륜이 담긴 촌철살인의 유머에 배를 잡고 웃다가도, 인생의 지혜가 담긴 위로에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한다. 이 멋진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책으로도 만날 수 있다.

박막례, 이대로 죽을 순 없다/박막례 김유라/위즈덤하우스
박막례, 이대로 죽을 순 없다/박막례 김유라/위즈덤하우스
박막례 할머니와 김유라 PD가 쓴 ‘박막례, 이대로 죽을 순 없다‘(위즈덤하우스 펴냄)는 하루아침에 달라진 박막례 할머니의 인생 후반전을 담아낸 에세이다. 집안의 막내딸이라 ‘막례‘라는 이름을 받게 된 박막례 할머니의 인생 전반전이 오로지 가족을 위해 치열하게 버텨온 시간이었다면, 후반전은 유튜브를 시작하며 당신 삶의 의미를 찾기 시작한 시간이다. 곡절의 인생을 살았다고 해서, 그렇게 죽으라는 법은 없는 것이다. 호주 케언스로 떠난 여행 영상을 시작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게 된 박막례 할머니는 ‘편들(박막례 할머니 유튜브 구독자 애칭)‘도 생기고, 유튜브 최고경영자(CEO), 구글 CEO도 만나게 된다. ‘이런 세상이 있구나. 바보였구나.’ 일흔에 알게 된 더 큰 세상은 새롭고 낯설다.

또 87만 유튜버 밀라논나의 이야기를 책으로 묶은 ‘햇빛은 찬란하고 인생은 귀하니까요‘(김영사 펴냄)에는 그의 단단한 삶의 이야기가 한껏 녹아있다. 독서 플랫폼 밀리의 서재가 제공하는 독서 통계 빅데이터인 완독지수를 살펴보면 이 책의 완독 예상 시간은 109분. 우리는 100분 남짓의 시간을 들여 멋진 ‘어른‘의 70년 가까운 인생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밀라노 패션 유학을 떠난 밀라논나 할머니는 지금껏 ‘하나뿐인 나에게 예의를 갖춘다‘는 마음으로 삶을 귀하게 여기며 살았다. 검약한 삶의 태도를 견지하면서도, 아낌없이 베푼다. 나 다운 삶, 품위를 지키는 삶, 사회의 보탬이 되는 삶에 대해 늘 고민하면서도 젊은이들에게 강요하거나 가르치지 않는다. 나이가 들어서도 근사한 라이프스타일을 유지한다는 건 결국 근사한 어른이 된다는 것이 아닐까. 우리 인생의 선택지에는 이렇게 ‘멋진 어른‘이 되는 법도 있다.

위로가 어려운 세상이다. 세상이 정해놓은 코스와 제한시간에 맞춰 바삐 달려야 하는 젊은이들은 언제나 불안하다.
‘이대로 나를 잃어버리는 건 아닐까?‘, ‘내게도 희망적인 내일이 있을까?’ 그래서 먼저 그 길을 지나온 어른들의 이야기가 절실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멋지게 자신의 삶을 살고 있는 어른들이 말하는 ‘지맥(자신의 타고난 맥박)‘대로 살다보면, ‘북 치고 장구 치고 하고 싶은 대로 살다 보면 그 장단에 맞추고 싶은 사람들이 와서 춤춘다’는 이야기만큼 유효한 위로가 있을까. 두 권의 책을 읽다 보면 나답게 사는 게, 나이가 드는 게 두렵지 않게 느껴진다.
생각보다 더 인생은 길고, 아직 늦은 건 아무것도 없으니까 말이다.

이윤슬 밀리의서재 에디터
yccho@fnnews.com 조용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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