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익명' 뒤에 숨어 성착취물 퍼뜨리는데… 수사는 몇년씩 걸려 [끊이지 않는 '디지털 성범죄'(中)]

이정화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1.08.26 18:31

수정 2021.08.26 18:31

SNS 플랫폼이 범죄 통로로
피해자들은 유포 공포에 시달려
'n번방 방지법' 시행중이지만
불법 일차적 판단 사업자에 맡겨
'익명' 뒤에 숨어 성착취물 퍼뜨리는데… 수사는 몇년씩 걸려 [끊이지 않는 '디지털 성범죄'(中)]
익명성을 기반으로 한 사회관계망서비스(SNS)가 마약·성범죄 등 범죄의 통로가 된 지 오래다. 해외서버로 수사나 단속이 어려운 점을 악용해 피해자 사진을 무단 도용한 지인 능욕부터 딥페이크 합성물까지 온라인 상에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가고 있다.

■성착취물 판치는 SNS

26일 사단법인 탁틴내일이 지난 4월 5일부터 27일까지 약 3주간 트위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SNS를 모니터링한 결과에 따르면, 특정 신체부위·행위 등을 가리키는 해시태그 122개가 검색됐다. 이 중 94개(77%)가 트위터에서 발견됐다. 피해여성의 사진을 게재한 뒤 성희롱하는 '#지인능욕' 의뢰, '#영상거래' 등 불법 성영상물을 유통하고 교환하는 식이다. 페이스북에서는 24개, 인스타그램 18개가 검색됐다.


익명성이 보장되고 그만큼 범죄 은폐도 용이한 SNS 특성상 수사나 단속도 쉽지 않다. 특히 해외에 서버를 둔 해외사업자의 경우 협조요청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경우 국가적 조약인 형사사법공조를 통해 정식 협조요청을 할 수 있지만, 자료를 받는데 길게는 수 년이 걸린다.

경찰청 관계자는 "해외사업자들은 우리나라의 사법권이 미치지 않는 외국의 사기업으로, 순수 협조관계"라며 "해당 국가에서 범죄 성립이 되지 않는 경우, 성착취물이라고 판단하기 애매한 경우에는 협조가 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고 설명했다. 일선 경찰 관계자는 "협조가 잘 이뤄지지 않아도 마땅한 제재 수단이 없다"며 "영·미에서는 모욕죄나 명예훼손죄를 처벌하지 않아 협조가 잘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유포불안에 시달리는 피해자들

또 성착취물 관련 게시물 또는 해당 계정에 대한 신고가 접수되더라도 새 계정을 만드는 방식으로 성착취물 제작·유통은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이 때문에 실제 불법촬영물이 온라인에 이미 유포된 경우는 물론, 유포가 확인되지 않은 피해자들도 극심한 불안감을 호소하고 있다.

여성가족부(여가부)에 따르면 최근 3년간(2018~2020년) 여가부 산하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에 접수된 피해 1만3386건 가운데 25%는 유포 협박·유포 불안이었다.

유호정 한국성폭력상담소 활동가는 "피해자들은 온라인상에 유포된 피해촬영물을 발견한 뒤 엄청난 불안감으로 여러 사이트를 검색하며 피해촬영물을 찾아보게 된다"며 "유포가 확인된 경우 삭제지원이 가능하지만, 유포되지 않은 경우 유포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극심하다"고 말했다.

성착취물 삭제 지원기관은 인력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는 지난해 초 한국여성인권진흥원이 특수법인으로 전환되면서 고유사업으로 운영되고 있다. 현재 센터 지원 인력은 정규직 17명, 기간제 22명 등 39명에 그친다. 이들은 모니터링, 개인정보 유출 등 2차 피해성 게시물, 검색엔진 내 잔여 기록 삭제까지 지원하고 있다. 지난해만 피해자 4973명을 대상으로 15만8760건의 삭제지원, 1만1452건의 상담지원을 했다.

센터 관계자는 "n번방 사건 이후 그동안 피해신고를 하지 못하거나 몰라서 지원요청을 하지 못하는 피해자들의 상담이 몰리면서 인력이 부족한 상황"이라며 "디지털성범죄 피해지원 업무 특성상 지속성 있는 인력 운영이 중요한데, 기간제의 경우 계약기간이 정해져 있어 공백기간이 생기고 삭제 노하우 등 전문성 강화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했다.

■실효성 담보 요원한 'n번방 방지법'

이른바 'n번방 방지법'이 지난해 12월 10일부터 시행됐지만, 불법촬영물 판단에 대한 일차적 판단을 사업자에게 맡기면서 실효성 논란도 제기된다. 'n번방 방지법'(전기통신사업법·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은 불법촬영물의 삭제·접속차단을 하지 않을 경우 매출액 3% 이내의 과징금을 부과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 관계자는 "플랫폼 사업자들이 불법촬영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하면 삭제가 되지 않는다"며 "모든 신고 사례에 대해 외부기관에서 불법촬영물 여부를 판단하긴 어려워 기술적으로 1차적 판단을 사업자에게 맡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밖에도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에 신설된 역외적용 조항 역시 실효성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보통신망법 제5조의2는 국외에서 이뤄진 행위라도 국내 시장 또는 이용자에게 영향을 미치는 경우 적용할 수 있도록 명시했다.


박찬성 변호사(포항공대 인권자문위원)는 "국내에 서버를 두지 않고 해외에 머무르며 범행을 저지르는 경우라면 법 개정에도 불구하고 실제 처벌을 하는 것은 앞으로도 용이하지 않을 것"이라며 "해외 수사기관들과 수사 공조가 얼마나 실질적으로 이뤄지고 있느냐, 범죄인 인도조약에 따라 범죄인 인도가 얼마나 실효적으로 이뤄질 수 있느냐의 문제에 달려있어 개선책 모색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clean@fnnews.com 이정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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