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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기하지 않은 '中반도체', 내수와 민족주의로 '굴기의 꿈'[글로벌리포트]

정지우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1.08.29 19:00

수정 2021.08.29 19:33

- 3년 전부터 시작된 미국의 전방위 반도체 제재
- 미국 압박 이후 국민기업으로 떠오른 화웨이
- 미 제재가 호재로 작용한 SMIC
- 반도체 장비 갖추고 인력 채용 등 시동 걸기 시작한 푸젠신화
People visit a display of semiconductor device at Semicon China, a trade fair for semiconductor technology, in Shanghai, China March 17, 2021. REUTERS/Aly Song /REUTERS/뉴스1 /사진=뉴스1 외신화상
People visit a display of semiconductor device at Semicon China, a trade fair for semiconductor technology, in Shanghai, China March 17, 2021. REUTERS/Aly Song /REUTERS/뉴스1 /사진=뉴스1 외신화상
중국 상하이 소재 한 반도체 생산공장 내부전경. 로이터뉴스1


【베이징=정지우 특파원】중국 반도체 산업이 미국의 전방위 제재를 받고 있는 만큼 그 반대적인 생존의 몸부림도 치열하다. 중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지를 버팀목으로 돈을 뿌려 해외 기업을 사들이고 각가지 당근을 꺼내 전문 인력을 유혹한다.

하지만 반도체 기술은 중국이 세계 시장에서 그 동안 전개해왔던 전략만으로 접근하기엔 한계가 있다. 기업 흡수와 고급인재 유치로 포장해 특정 기술을 자국에 귀속시킨 뒤 종국에 내다버리는 ‘토사구팽’식 수법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광범위한 미국의 제재 규정도 걸림돌이다. 반도체 업계에서 미국 장비·부품과 연관이 없는 기업은 드물다.
세계 1위 파운드리(위탁생산) 업체 대만의 TSMC조차도 미국 제재 영향으로 중국과 거래를 끊었다. 뒤늦게 반도체 개발에 뛰어든 중국이 미국의 경제 수준을 뛰어넘겠다고 공언한 2035년까지 시간이 넉넉하지도 않다.

그러나 중국은 ‘반도체의 굴기’를 포기할 수 없다. 현대 사회에서 반도체는 국가 경쟁력의 핵심이다. 반도체를 제외시키면 대부분 첨단 산업은 식물 상태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중국 전문가와 관영 매체는 막강한 내수 시장을 장점으로 꼽는다. 중국 내에서 기술력을 가진 기업이 등장하면 이를 바탕으로 민족주의나 애국심, 정부 지원까지 더해져 세계 반도체 시장을 빠르게 장악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다. 중국이 주목하는 3대 기업 화웨이와 SMIC(중국국제직접회로), 푸젠진화(JHICC)의 속사정을 들여다봤다.

■3년 전부터 시작된 美 반도체 견제
통상적으로 미중 갈등은 도널드 트럼프 전 미 대통령의 집권 말기인 2019년 하반기부터 본격화됐다고 알려져 있다. 다만 반도체 봉쇄 움직임은 이보다 1년 전에 시작했다고 봐야 한다.

미국 상무부가 산하 산업보안국 수출관리규정(EAR) 기업 목록에 중국 반도체와 통신장비, 인공지능, 인터넷 기업 명단을 올린 시점이 2018년 8월이다. 이후 EAR은 그 해 10월 푸젠진화, 2019년 5월에 화웨이, 6월 청두하이광반도체 2곳, 2020년 6월 윈텐리페이, 2020년 12월 중신반도체 등 59개 기업을 잇따라 포함시켰다. 미국 기술이 들어간 반도체 장비·부품을 수출할 때는 미 상무부의 사전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게 골자다.

또 미국 국방부는 2020년 6월 국방수권법에 화웨이와 SMIC를 이른바 ‘블랙리스트’에 포함시켰다. 중국 인민해방국 소유 관계가 확인된 정보·통신, 우주·항공, 전기·전자, 석유·화학, 원자력, 조선, CCTV, 스마트폰 등의 주요 기업이 대상에 올랐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전 국무장관 역시 현직이던 2020년 8월 5세대(5G) 세대 통신망과 모바일 어플리케이션, 클라우드 등 분야에서 미국 신뢰를 잃은 중국기업에 대한 배제를 선언했다. 지난달 13일에는 미 연방통신위원회(FCC)가 자국 통신기업의 중국 통신장비업체 장비 제거·교체 비용으로 19억달러(약 2조1000억원)를 투입한다고 발표했다.

화웨이 로고. 2020.1.10/뉴스1 © News1 오대일 기자 /사진=뉴스1
화웨이 로고. 2020.1.10/뉴스1 © News1 오대일 기자 /사진=뉴스1

■美 제재 후 국민 기업된 화웨이
1순위로 언급된 화웨이의 타격은 직접적이다. 화웨이 ‘2020년 연례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연매출은 8913억위안(약 151조원)으로 전년대비 3.8% 증가했으나 영업이익은 725억위안으로 6.8% 줄었다. 영업이익률도 1년 전과 견줘 0.93% 감소했다. 현금보유액의 경우 61.5% 축소된 352억위안으로 기록됐다.

지역별 매출 보면 미국 제재의 영향은 뚜렷하다. 중국 내수(비중 65.6%)는 15.4% 증가한 반면 유럽·중동·아프리카(20.3%)는 12.2%, 아시아는 8.7%(7.2%), 미주는 24.5%(4.4%) 등으로 감소했다. 결국 내수에만 의존해 경영 실적을 올렸다는 의미다.

그나마 매출도 소비자부문과 통신사업자부문은 각각 3.3%, 0.2% 증가하는데 그쳤다. 전기차 부품 사업 등 반도체와 관련이 없는 기업대기업(B2B) 부문이 23.0% 늘면서 전체 매출 상승을 견인했다.

스마트폰 등 소비자부문의 경우 올해 상반기 47% 급락했다. 화웨이 전체 사업에서 소비자 부문은 42.4%를 차지한다. 스마트폰 분야에서 화웨이의 세계 시장 점유율은 2019년 17%에 달했지만 올해 4%까지 추락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전체 사업 매출 또한 29.4% 내려갔다.

화웨이는 생존전략 다양화에 나섰다. 아시아 시장에서 평균 156달러(약 17만원) 판매되던 중저가 브랜드 ‘아너’ 사업을 1000억위안에 선전 즈신신 등 30개 기업 컨소시엄에 매각하고 여러 부문에서 진행하던 클라우드 사업을 하나로 모아 ‘화웨이클라우드’ 법인으로 독립시켰다. 또 온라인 신생에너지 검침기, 차량엔터테인먼트 시스템 등의 전기차 부품 사업을 ‘화웨이디지털에너지기술’ 한 곳으로 집결시켰다.

올해 7월에는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드라이버 반도체 자체 개발을 완료했다. 생산은 자국 반도체 기업 SMIC가 담당하며 올해 말 양산에 들어간다.

플래그십 스마트폰 P50 시리즈를 내놓기도 했다. 다만 이 제품은 자체적인 5G개발이 불가능해 4G전용으로 만든 뒤 독자 개발한 운영체제 ‘훙멍’(하모니)을 탑재하는데 그쳤다. 5G와 안드로이드를 채택하지 않은 것은 모두 미국 제재의 장벽 때문이다.

중국 일부 매체는 화웨이가 후베이성 우한에 첫 번째 웨이퍼 공장을 세운 이후 우한훙신반도체제조(HSMC)의 7나노미터(㎚) 노광기를 인수할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7㎚ 공정이 세계에서 상용화된 고급 수준의 반도체 생산기술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다음 단계는 화웨이의 반도체 자급자족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된다. 화웨이가 서버부문 매각을 추진 중이라는 얘기도 있다. 인수 주체가 중국 국무원 직속기구로 국유기업을 관리·감독하는 국유자산감독관리위원회(국자위)가 언급된다.

중국 반도체 시장 전문가인 고영화 SV인베스트먼트 고문은 “클라우드나 전기차 부품 사업 확대는 기업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자구책”이라면서 “근본적인 원인은 자체 개발 스마트폰 SoC (시스템 온 칩)반도체를 생산할 수 있는 국가적 능력이 부족한 것이며 상하이반도체연구개발센터를 이용하거나 하이실리콘에 제조공장을 추가해 종합반도체기업(IDM) 체계를 구축하는 방법을 동시에 추진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美제재가 호재 SMIC
중국 최대 파운드리 기업이자, 이 분야 세계 5위에 올라 있는 SMIC는 미국의 제재가 오히려 호재로 작용했다. 화웨이 등 자국 반도체 수요 기업의 공급망이 막히면서 SMIC로 주문이 몰렸다는 평가가 나온다.

SMIC는 전년동기대비 2020년 25.4%, 영업이익은 204.9% 각각 늘어나며 2000년 창사 이후 최대의 실적을 달성했다. SMIC 전체 매출에서 화웨이가 차지하는 비율은 18.9%에 달하며 내수 비중은 64% 수준이다.

SMIC는 올 상반기 실적도 상승세를 이어갔다. 1년 전과 견줘 매출은 21.8%, 영업이익은 61.9% 각각 증가했다. 지역별 매출을 보면 중국 지역 비중이 62.9%로 7.3%포인트 상승한 반면 북미지역은 23.3%로 4.4%포인트 하락했다. 중국 지역 쏠림 현상이 한층 더 가속화된 것으로 해석된다.

중국 업계 전문가는 “차량용 반도체 수급난 이후 반도체 품귀현상과 가격 상승의 영향이 크다”면서 “글로벌 반도체 부족은 2022년까지 지속될 것이며 관련 경기는 호조세를 이어갈 것”이라고 분석했다.

중국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인 SMIC 홈페이지에서 캡처한 사진. 2020.07.16. /사진=뉴시스
중국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인 SMIC 홈페이지에서 캡처한 사진. 2020.07.16. /사진=뉴시스

■시동 걸기 시작한 푸젠진화
세계 파운드리 4위 기업 대만의 UMC와 중국 푸젠성 정부의 합작 프로젝트로 2016년 설립된 푸젠진화는 미국 제재로 인해 3년 만에 운영을 중단했다.

그러나 푸젠진화는 이미 100대 이상의 반도체 설비를 갖춰 놓고 있다는 점을 중국 전문가들은 주목하고 있다. 상황에 따라 언제든지 재가동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푸젠진화는 최근 홈페이지를 폐쇄했는데, 이를 정보의 외부노출을 차단하기 위한 조치로 보는 의견도 있다. 당초 푸젠진화는 창장메모리, 허페이창신과 함께 중국 3대 메모리 업체로 불렸다.

푸젠성 공업정보화청은 홈페이지에서 푸젠진화가 독자적 지식재산권을 갖춘 25nm(나노미터) 메모리 칩을 성공적으로 개발하고 시험생산에 성공했다고 올해 초 발표했다.

25nm D램은 반도체 선진국과는 기술차가 있다. 하지만 시장이 중국이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푸젠진화가 자체적인 인력문제를 해결한 뒤 D랩 생산에 들어갈 경우 중국의 저가 D램 공급 능력이 급격히 상승할 가능성이 있다.
이 회사는 지난해 상반기 D램 연구개발(R&D) 경력직구인 공고를 냈다. 푸젠진화는 25nm D램을 목표로 설계됐으므로 중국에서 상대적으로 선진적인 반도체 시설을 갖췄다는 평이다.


가정이긴 해도 화웨이가 푸젠진화의 경영권을 확보할 경우 25nm반도체를 가장 빠른 시간에 생산할 수 있는 최적의 대안이 될 수 있는 견해도 제시되고 있다. jjw@fnnews.com
jjw@fnnews.com 정지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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