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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관칼럼] 글로벌 공급망과 기술동맹

파이낸셜뉴스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1.08.29 18:00

수정 2021.08.29 18:00

[차관칼럼] 글로벌 공급망과 기술동맹
코로나19, 공급망 교란, 기술경쟁 심화 속에서 글로벌 경제지형이 변하고 있다. 안보의 초점이 핵심 제조업과 기술 우위의 확보로 전환되면서 전략산업 유치와 기술국가주의를 기치로 한 산업정책이 복귀하고 있다. 자국 우선주의 대두가 대외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일각에선 미국이 자국산 우선구매 정책부터 최근의 아프간 철군까지 국익을 한층 우선시하면서 한미 관계가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그러나 역사를 되돌아보면 오히려 상황은 그 반대였던 경우가 많았다. 냉전과 탈냉전을 거쳐 오며 국익이 강조될 때마다 한미 동맹은 더 굳건해지고 외연을 넓혀왔던 점이 그러하다.
특히 한미 정상회담은 전환기 속에서도 끊임없이 진화해 가는 역동적인 양국 관계를 재확인한 계기였다. 우리가 군사·안보, 경제를 넘어 팬데믹발 공급망 교란에 대응하고, 4차 산업혁명 발전을 이끌어가는 '기술동맹'의 중추적 파트너가 됐음을 절감한 시점이었다.

한미 정상회담의 두드러진 성과 중 하나는 공급망 협력이다. 양국은 반도체, 배터리 분야 투자와 연구개발 확대에 합의했다. 양국은 불필요한 경쟁을 예방하고, 호혜적 공급망을 구축하기 위한 정책적 로드맵을 제시했다. 수개월간 정부는 청와대 이하 외교부를 비롯한 전 정부 차원에서 미국 주도의 공급망 재편에 선제 대응하고, 우리 대미 투자기업들이 성과를 거두도록 미 행정부와 의회, 싱크탱크 등 여러 채널과 긴밀히 협의해 왔다. 이 가운데 미국 의회 내 지원법안이 잇따라 추진되고 있는 점은 고무적이다. 6월 상원을 통과한 '반도체 지원법안(CHIPS Act)'은 반도체 제조·연구 지원에 520억달러를, 8월 통과된 '인프라 투자 및 일자리 법안'은 배터리 생산·가공·재사용 등에 60억달러 지원을 약속한다.

팬데믹발 공급망 위기를 넘어 미래시장 개척을 위한 노력 또한 중요하다. 이런 면에서 정상회담에서 첨단·신흥기술 분야 개발·표준화 협력에 합의한 것은 의미가 크다. 결과 문서에 기술된 퀀텀, 차세대 통신, 인공지능, 바이오 분야는 미래산업을 뒷받침할 핵심적 플랫폼 기술이다. 과거와 달리 미국이 정부 주도로 기술개발과 표준 확립에 나서는 상황임을 고려할 때 이번 합의는 전략적으로 시의적절했다는 평가가 많다. 이는 중장기 과제로서 현시점에서 이행 성과를 평가하기는 이르다. 기회의 창을 열어간다는 차원에서 정부는 미국의 연구개발사업에 우리 기관, 기업 그리고 전문인력이 더 많이 참여할 수 있도록 아웃리치를 계속할 예정이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는 디커플링과 기술국가주의가 더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공급망 강화, 기술 경쟁력 확보와 함께 최첨단 기술의 수출통제 노력도 강화해가고 있으며, 중국 역시 '제조 2025'와 '과학기술 자립자강'을 발전전략으로 한 산업정책을 추진 중이다. 일본도 지난 6월 반도체 등 첨단기술 지원을 위한 경제안보전략을 제시했고, 유럽연합(EU) 또한 5월 반도체, 배터리, 클라우드, 에지 컴퓨팅 등을 6대 전략산업으로 지정하는 신산업전략을 발표한 바 있다.

우리나라는 자유무역과 글로벌 분업 체제 속에서 성장해 왔다.
이제 기존 가치사슬과 산업지형이 흔들리면서 외교 교섭 결과에 따라 전략산업이 큰 영향을 받는 상황이 되고 있다. 정부는 한미 간 구축된 경제안보의 틀을 더 넓혀가면서 중국, 일본, EU를 포함한 다른 파트너와도 긴밀히 소통하고 협력해 갈 것이다.
안보, 경제, 기술이 뒤얽혀 가는 전환기에 우리 기업과 국민이 파고를 헤쳐갈 수 있도록 전방위적 외교를 앞으로도 펼쳐 나가겠다.

최종문 외교부 2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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