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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릴 때 못 올리는 '연동제'… 정치논리에 고장났다

김현철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1.08.29 18:15

수정 2021.08.29 18:15

가스·전기요금 인상요인 충분한데
국민 눈치 보며 가격 동결시켜
원유가격 연동제는 '오작동'
우유 남아 도는데 가격은 올라
정부가 도입한 각종 연동제가 유명무실한 장치로 전락했다는 비난에 직면했다.

원자재 시장 수급상황에 따라 최종 가격이 조절되도록 고안된 연동제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못하면서 시장 가격변동성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전기·가스뿐만 아니라 우유의 원재료인 원유에 적용되는 연동제의 신뢰가 도마에 올랐다.

29일 정부와 에너지업계 등에 따르면 가스·전기 요금에 적용되는 연료비 연동제 무용론이 거세게 일고 있다. 연료비 연동제는 가스·전기 요금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연료비 가격이 인상되거나 하락하면 자연스럽게 이용요금을 조절하는 제도다. 올해부터 적용된 전기요금 연료비 연동제의 경우 국제유가가 가파르게 오르면서 인상요인이 충분했다.


하지만 정부가 국민 생활안정과 물가 등 부담으로 인위적으로 요금상승을 억제해 사실상 유명무실해졌다는 지적이다. 주택·일반용 도시가스 도매가격도 올해 3차례 인상요인이 있었지만 같은 이유로 동결됐다. 잇단 가격동결 조치에 연동제 도입 취지를 정부가 스스로 무색하게 만들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에너지 업계 관계자는 "정책에 정치적인 논리가 개입되면 원칙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고 반문하며 "결국 그 피해는 누군가에게 전가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어설프게 도입한 연동제가 '부메랑'이 돼 돌아온 경우도 있다. 지난 2013년 구제역 파동 후 낙농가를 돕기 위해 마련한 '원유가격 연동제'가 대표적이다. 현재 원유가격은 연동제에 따라 통계청이 매년 계산하는 우유 생산비 증감액을 가감하고 전년도 소비자물가 인상률을 적용, 이듬해 가격을 결정한다. 우유는 남아도는 상황인데도 생산비 상승분을 고려한 가격에 원유를 사들이다보니 우유가격 상승만 부추겨 소비자와 우유 제조업체들의 부담이 커지고 있다.

지난해 국민 1인당 흰 우유(백색시유) 소비량은 26.3㎏으로 1999년 24.6㎏ 이후 가장 적었다. 그러나 원유가격은 이달부터 L당 21원 올랐다. 지난 20년간 유럽 원유가격은 19.6%, 미국은 11.8% 오른 반면 우리나라 원유가격은 72.2%나 올랐다. 이 탓에 정부는 뒤늦게 현재의 가격결정구조를 손보겠다고 나섰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 25일 세종 컨벤션센터에서 낙농산업 중장기 발전방안 마련을 위한 '낙농 산업 발전위원회' 1차 회의를 열고 원유가격 제도 개편 논의를 시작했다.

반대로 연동제의 시급한 도입을 요구하는 업종도 있다. 글로벌 원자재 가격상승에 짓눌린 중소업체들의 원가연동제 도입 목소리도 다시 들린다.
원자재 가격 인상분에 대해 완성업체에 납품가격을 올려달라고 주장할 수 없는 중소업체들이 연동제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자는 주장은 여러번 제기돼왔다. 연동제 도입이 안된 가운데 공정거래위원회는 원자재 가격 상승에 따른 납품단가 조정 협의가 잘 이뤄지고 있는지 실태점검에 나선다고 29일 밝혔다.
공급원가가 변동되는 경우 수급사업자 또는 중소기업 협동조합이 원사업자에게 하도급대금 조정을 신청할 수 있게 한 납품단가 조정협의제로 연동제의 빈자리를 메우고 있는 실정이다.

honestly82@fnnews.com 김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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