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이구순의 느린걸음

[이구순의 느린 걸음] '싸움판' 된 ICT, 중재자 절실하다

이구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1.08.31 18:12

수정 2021.08.31 18:12

[이구순의 느린 걸음] '싸움판' 된 ICT, 중재자 절실하다
억수같이 비가 쏟아지는 아침, 출근이 막막했다. 문득 택시를 불러서 탈 수 있다는 기사를 쓴 기억이 났다. 콜택시보다 싼값에 택시를 집 앞으로 부를 수 있다던 보도자료 내용이 떠올랐다. 냉큼 폰에 앱을 깔고 택시를 불렀다. 비가 퍼붓는 중에 우산 한번 펴지 않고도 뽀송하게 회사에 도착하던 그날 느낀 택시호출 플랫폼의 신박함과 유용함은 지금 생각해도 미소가 지어진다.

수년간 택시업체들과 마찰을 빚다 결국 사업이 유명무실해져버린 '타다'다.
요즘 변호사 광고 플랫폼 로톡과 미용의료 플랫폼 강남언니가 그 갈등의 한가운데 있다. 치킨집, 미장원, 꽃집, 부동산, 택시 같은 일상의 서비스들이 곳곳에서 온라인 플랫폼과 갈등을 빚고 있다.

늘 이용하던 일상의 서비스에 정보통신기술(ICT)을 입혀 온라인 플랫폼으로 키워놓으면 신박하고 유용한, 차원이 다른 서비스로 탈바꿈한다. 사용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플랫폼 기업이 있으니 편하고 싸게 질좋은 서비스를 받게 된다. 소상공인들은 플랫폼을 통해 소비자와 바로 연결할 수 있으니 시장이 열리는 효과가 있다. 신박한 아이디어로 온라인 플랫폼 사업을 시작하는 창업가들에게는 도전과 성공의 기회가 생긴다. 젊은 창업가들이 서로 새로운 사업을 하겠다고 도전하면 신산업과 일자리가 생기니 국가경제에도 희망이 된다.

그런데 희망과 기회의 대명사처럼 보이는 온라인 플랫폼들이 곳곳에서 갈등을 일으키면서 ICT산업은 싸움판이 됐다. 플랫폼 수수료가 비싸 남는 게 없다는 소상공인들의 불만, 플랫폼 기업이 기존 사업자들에게 갑질을 한다는 불만, 내 밥그릇을 플랫폼 기업에 뺏기게 생겼다는 불안까지, 내용을 들여다보면 온라인 플랫폼과 기존 산업의 갈등은 일회성이 아니다. 타다 갈등이 잠잠해지니 강남언니, 로톡이 갈등의 한가운데로 들어선 것만 봐도 그렇다. 또 다른 온라인 플랫폼이 성장하면 여지없이 갈등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네이버, 카카오, 구글, 애플 같은 플랫폼 기업들은 이미 갈등이 일상화됐다. 기업들만 싸우는 게 아니다. OTT라고 부르는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를 놓고는 공정거래위원회,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문화체육관광부가 서로 자기 영역이라고 정부 안에서도 싸운다.

지금 절실한 것은 중재자다. 기업들의 목소리를 아우르면서 정부 정책에 쓴소리, 단소리 가리지 않고 내놓을 수 있는 중재의 목소리가 절실하다. 8년쯤 전에 만들어 놓은 ICT대연합이라는 기구가 있다. ICT분야의 모든 협회, 기업들이 참여했다. 고위 공무원을 지낸 정책 전문가들도 참여한다. 애초에 정부에도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기구로 만들었다. 싸움판으로 전락해버린 ICT 현장에서 중재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외형은 갖춰 놓은 셈이니 이제 이해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듣고 정리하는 일부터 서둘러 나섰으면 한다.
정부도 정책원로와 기업들이 고르게 참여한 중재자의 목소리에 힘을 싣겠다고 인정했으면 한다. 더 이상 이해관계자들의 갈등이 소비자의 편리함과 기술혁신, 창업의 희망을 가로막으면 안되니 말이다.
싸움판이 된 ICT 현장에 현명한 중재의 목소리가 묵직하게 울리기를 기대한다.

cafe9@fnnews.com 이구순 정보미디어부 블록체인팀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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