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전시·공연

한지로 풀어낸 무속의 魂… 양혜규 '황홀망'展 [이 전시]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1.09.02 18:50

수정 2021.09.02 18:50

양혜규 '고깔 풍차진'(2021) 국제갤러리 제공
양혜규 '고깔 풍차진'(2021) 국제갤러리 제공
우리가 일상에서 행하는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에도 영혼이 깃들 수 있을까. 어린시절 즐겨 접었던 종이배와 가위로 오려냈던 수많은 꽃들과 그물망들은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한때라도 그 형상 속에 삶의 작은 소망들이 새겨졌을까 생각해본다. 지금 이 시대 미술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양혜규가 이번에는 그 종이를 만지던 소망하는 손길에 주목했다. 양혜규는 서울 소격동 국제갤러리에서 최근 한지를 콜라주한 12점의 신작 '황홀망'을 최초로 선보였다. 양혜규는 '까수기'라고도 불리는 '설위설경(設位設經)'에 주목했다. 설위설경은 종이를 접어 오린 후 다시 펼쳐 만드는 종이 무구(巫具)를 말하며 이를 만드는 무속 전통을 지칭하기도 한다.

이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이스라엘, 멕시코, 필리핀, 중국, 일본, 인도 등지에서도 물질에 영혼과 정신을 투영하는 공예 양식으로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그간 주로 물리적인 공간을 다뤄 온 작가는 설위설경을 통해 종이라는 미미한 물질에 정신을 불어넣는 영적인 행위에 주목하게 됐고 이를 바탕으로 신작을 만들었다. 특히 지난해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진행된 그의 개인전에서 선보인 작품 중 현수막 끝단을 설위설경으로 장식한 작품 '오행비행' 이후 이를 더욱 발전시키고 연구한 끝에 이번 연작을 내놓았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한 많은 영혼을 달래기 위해 한지로 만들었던 '넋전'과 의례를 치르기 위해 공예적인 감각을 더한 다양한 진과 철망에 공을 들였다. 평면 위에 대칭이 조화를 이루는 화려한 도형의 형상이 반복되는데 작가는 종이 표면을 뚫어 평면과 평면 사이 숨통을 틔우고 접혀진 겹조차도 비치는 한지의 반투명성을 드러냈다.
반복되고 대칭되는 진의 정확함을 드러내기 위해 방안지를 사용해 콜라주했고 또 곳곳에 귀여운 도깨비 같은 형상을 새겨넣어 위트를 드러냈다. 양혜규는 "이번 신작을 통해 이제까지의 여정을 고하고 스스로 미래를 점쳐보고자 한다"고 밝혔다.
이번 전시는 12일까지 국제갤러리 K1관에서 진행된 후 15일부터 국제갤러리의 새로운 한옥 공간 리졸리 스튜디오 내 뷰잉룸으로 옮겨 이어진다.

jhpark@fnnews.com 박지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