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유럽

통합과 안정의 리더십, '메르켈 시대'와 작별 앞둔 독일·유럽

뉴스1

입력 2021.09.05 06:03

수정 2021.09.05 06:03

2015년 11월 당시 독일 오벨하우젠에 머물고 있던 시리아 난민 아이들. © 로이터=뉴스1 자료 사진
2015년 11월 당시 독일 오벨하우젠에 머물고 있던 시리아 난민 아이들. © 로이터=뉴스1 자료 사진

(서울=뉴스1) 최서윤 기자 = 독일이 오는 26일 총선과 함께 '메르켈 시대'와 작별한다. 분단 시기 정치권에 몸담은 물리학 박사 앙겔라 메르켈은 독일의 첫 여성·동독 출신 총리이자, 연방공화국 수립 후 처음으로 '제 발로 내려오는' 총리가 된다. 통일을 이끈 헬무트 콜 전 총리와 함께 '최장수 총리' 타이틀도 얻는다.

16년 임기 중 독일의 리더일뿐 아니라 유럽연합(EU) 위기 속 지역 수장으로 자리매김한 메르켈의 퇴임은 유럽 전체의 관심사다. 외신들은 잇달아 그의 업적을 조명하고 있다.

다만 '총리=메르켈'인 줄 알고 성장한 '메르켈 세대' 독일 청년들은 그를 존경하면서도 변화를 갈구하고 있었다.

◇양보·경청의 대명사?…탈원전·난민·코로나 국면에선 과감한 결단

독일에는 'Merkeln'이라는 동사가 있다. 메르켈 총리의 이름에서 유래한 신조어다. '말 없이 생각만 하다', '우유부단하다' 등의 의미로 사용된다. 2013년 3선을 앞두고 야당 유력 후보와의 토론회에서 '마지막으로 유권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카메라를 응시하며 "저를 이미 아시잖아요"라고 답한 일화는 유명하다.

다소 부정적으로도 들릴 수 있는 이 메르켈스러움이 바로 16년 임기 유지의 비결이 됐다는 게 유럽 언론들의 평가다.

메르켈 총리는 특별한 정치적 색채를 띠지 않은 '중도주의'를 표방, 꾸준히 표심을 얻었다. 4차례 임기 중 기민연합이 의회 의석을 장악한 건 단 1번 뿐이었는데, 양보와 경청으로 진보 사회민주당과의 대연정을 12년간 이끌었다.

메르켈스러움이 강력한 힘을 발휘한 지점은 탈원전 정책이었다. 메르켈 총리는 2009년 첫 재선을 준비하면서 중도 좌파의 표를 가져오기 위해 기민당의 입장과 반대되는 탈원전을 공약했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참사가 정책 실현에 힘을 보탰고, 결국 2022년까지 원전 17기를 모두 폐쇄키로 하는 결정을 이뤄냈다. 에너지 전환에도 속도가 붙었다.

이와 관련, 베를린 헤르티행정대의 안드레아 롬리 정치학 교수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메르켈스러움 덕에 대중적 이미지를 불필요하게 손상시키지 않으면서 어떤 정치인과도 민감한 주제를 다루는 것이 가능했다"고 평가한 바 있다.

통합과 안정을 위해 자신의 견해를 양보하는 과감함은 보수 기민연합 정부에서 2017년 동성혼 합법화와 2010년 징병제 폐지 같은 결정의 동력이 되기도 했다.

과감한 리더십을 드러낸 건 2015년 대규모 난민 수용 결정에서였다. 시리아 내전과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혼란으로 130만여 명의 난민이 유럽으로 몰려들자 그 중 36.6%인 47만6000명을 대거 수용했다. 유럽 내 최대 규모다. 이후 3년에 걸쳐 140만여 명의 난민을 받았다. 기독사회당(CSU)과의 연합이 깨질 위기까지 갔지만 메르켈 총리는 "우리는 할 수 있다(wir schaffen Das)"는 명언을 남기며 유권자를 설득했다.

지난해 3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팬데믹으로 선언될 당시엔 대국민 연설을 통해 12분간 과학도로서 상황과 대안을 차근차근 설명하며 무리 없이 고강도 봉쇄 정책을 이끌어냈다.

그러나 팬데믹 장기화는 결국 봉쇄 반대 불만을 폭발시켰고, 7월 약 200명이 사망한 '100년 만의 폭우·홍수'는 겹악재였다. 탈원전은 러시아의 천연가스를 들여오는 '노드스트림2' 사업으로 이어졌고, 에너지가 정치에 발목 잡히는 불안의 씨앗이라는 비판을 들었다. 대규모 난민 수용은 극우 독일 대안당 약진을 초래했다.

인프라테스트 디맵이 공영 ARD 방송 의뢰로 지난달 30일부터 이달 1일까지 유권자 1337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 기민연합 지지율은 20%로, 사민당(25%)에 뒤처졌다. 사민당 당선 시 녹색당(3위, 16%)과의 연정을 통한 '좌향좌' 정권 교체가 유력, '메르켈 이후 시대' 독일 정치가 크게 변화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메르켈 세대' 청년들 "이제 변화할 때"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메르켈 시대에 더 부유하고, 다양해지며, 세계에 관여하게 된 독일에서 나고 자란 '메르켈 세대'는 자신들 기억에서 유일한 총리를 존경하면서도 변화를 주문했다.

기후운동가로 활동 중인 조세파 알브레히트(17)는 메르켈 총리의 긴 임기에 대해 "민주주의적 측면에선 상당히 충격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어릴 적엔 동독 출신 부모님의 영향으로 총리를 좋아했지만, 14세에 녹색당 청년단체에 가입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알브레히트는 탈원전과 재생에너지 확장, 2038년까지 석탄화력발전소를 모두 폐지키로 한 메르켈 총리의 정책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지난 4월 독일 헌법재판소는 정부가 2019년 발표한 기후대응법이 기후변화를 막기에 불충분하다며 일부 위헌 판단한 바 있다.

독일 사회학자들은 청년들이 부와 직업적 성공을 추구하는 부모 세대와 달리, 사회 정의와 생태환경에 더 관심을 둔다고 말한다. 독일 환경부가 최근 14~17세 청소년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에서 환경보다 경제성장이 더 중요하다는 응답은 19%에 그쳤다. 이번 총선에서 예상되는 녹색당의 돌풍은 이런 여론을 반영한다.

알브레히트는 "7월의 홍수는 우리가 행동하지 않으면 다가올 일의 전초전"이라며 "현상유지가 아닌 변화가 필요한 때"라고 강조했다.

베를린 학생단체 대표인 루퍼스 프란젠(17)은 변화를 위해 더 주장이 강하고 결단력 있는 리더를 원했다. 그는 "메르켈은 충동적이지 않고 실수하지 않는 현명한 여성 같지만, 정책을 실현하기엔 덜 과격해 보인다"고 말했다.

난민 정책에 대한 불만도 나왔다. 정보통신기술(IT)을 공부하는 에릭 엥겔하르트(19)는 "독일이 그렇게 많은 난민을 받았어야 했느냐"면서 "그들이 국가 보조금을 받고, 국민은 (쪼들려) 휴가 가는 것도 고민한다. 외지인이 현지인보다 더 많이 얻는다는 느낌이 든다"고 했다. 그는 난민 정책에 반대하는 독일대안당 당원이다.

팬데믹으로 인한 원격 교육으로 부족한 디지털 인프라도 드러났다. 사민당 청년단체 소속 이마누엘 뢰버(16)는 온라인 수업이 인터넷 불량으로 엉망진창이 된 기억을 토로했다. 그는 "수업을 들으려면 가족 모두 와이파이를 꺼야 컴퓨터가 돌아갔다"며 "독일이 유럽 다른 나라보다 뒤처졌다는 사실이 여실히 드러났다"고 했다.

다만 청년을 연구하는 시몬 슈네처 연구원은 "청년들의 평가는 애증이 엇갈리지만, 대부분의 독일 유권자들은 메르켈을 몹시 그리워할 것"이라고 말했다.

맨프레드 궐너 포르사 여론조사기관 대표도 "현재 사람들은 불안해하고 있다. 16년 동안 메르켈은 사람들에게 안정감과 연속성을 줬다"면서 "사람들은 메르켈이 마치 안전망처럼 자신들을 돌보고 있다고 느꼈다"고 분석했다.

FT는 청년 인터뷰를 종합한 뒤 "일부는 메르켈 총리의 퇴임을 슬퍼하고, 다른 일부는 변화를 기대할 것"이라면서도, '어떤 이슈가 터져도 늘 예측가능한 안정감이 있었다'는 한 청년의 발언을 소개한 뒤 "앞으로는 절대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트럼프·푸틴 시대에 빛났던 '겸손한 권력', 유럽 안정 지켜내



메르켈의 독일은 통합, 안정, 성장으로 정의돼왔으며, 이는 격동의 20세기 역사에선 부족한 자질이었다고 FT는 짚었다. 전후 독일이 과거사의 아픔을 딛고 다자주의의 모범이 되는 과정에서 메르켈 총리의 리더십은 진정 빛을 발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메르켈 집권기 유럽연합(EU)은 수차례 위기를 맞았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유로존 붕괴, 2014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크림반도 병합, 2015년 난민 정책 관련 분열부터 2016년 시작해 2020년 단행된 영국의 탈퇴(브렉시트) 등을 거쳤다. 코로나19 팬데믹도 세게 겪었다.

영국의 브렉시트 강경파 보리스 존슨 총리, 이탈리아 재벌 출신으로 온갖 논란을 일으키다 불명예 퇴진한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총리, 극우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 등의 포퓰리즘 기반 'TV·SNS 선전 정치'도 위기감을 더했다.

이런 유럽의 위기에서 메르켈 총리는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포용력을 잃지 않고 EU를 지켜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리스와 스페인의 구제금융을 직접 협상했고, EU 시스템에 대한 재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으며, 분열 속 각국에 단결을 강조했다.

베를린 헤르티에행정대 안드레아 룀멜 정치학 교수는 FT와의 인터뷰에서 "원심력이 커 유럽이 붕괴될 위험이 컸지만, 메르켈 총리는 EU를 계속 단결시켰다. 그 중요성을 과소평가할 수 없다"고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되자 메르켈 총리는 '자유주의 서방의 마지막 수호자'로 불렸다.

스페인 엘파이스는 "메르켈 총리의 탈원전과 난민 정책은 집권 기민연합의 지지도 받지 못했지만, 그런 정책으로 국민의 지지를 받았을 뿐 아니라 유럽의 리더가 됐다"면서 "메르켈 총리가 보여준 인류애와 공감력, 강한 도덕적 신념과 통합 의지는 '푸틴과 트럼프의 시대'에서 '겸손한 권력'을 보여줬다"고 칭송했다.


다만 지난 4월 유럽외교위원회(ECFR)가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 독일인의 45%는 EU 회원국 유지에 대해 양가적이거나 부정적인 감정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독일 공영 도이치벨레(DW)는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