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윤슬빈 여행전문기자 = 신라 왕성인 월성을 쌓는 과정에서 재물로 바쳐진 성인 여성 인골 1구가 추가로 발굴됐다. 여성 인골은 키 135㎝로 체격이 왜소한 20대로 추정된다. 월성 발굴 과정에서 인골이 발견된 것은 이번에 세 번째 사례로 총 24구가 발굴됐다.
7일 문화재청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경주 월성 서쪽 성벽의 문지(문이 있었던 터)에서 인신공희(사람을 제물로 바친 제사)의 여성 시신 1구를 발굴했으며, 월성의 축조 연대와 축성 방식도 최초로 밝혀냈다고 밝혔다.
월성에선 다수의 사람이 인신공희 등의 이유로 묻힌 것으로 나타났다.
'인신공희'는 '인신공양'이라고도 하는데, 사람의 몸을 신적 존재에게 제물로 바치는 행위 혹은 풍습이다. 특히 월성 서성벽의 인신공희는 국내 유일의 성벽에서 이뤄진 의례이자, 현재까지 신라가 최초로 축조한 왕성 월성에서만 확인된다.
장기명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는 "성벽을 높게 쌓아 올리기 전에 무너지지 말라는 염원을 담은 제의로 추정된다"며 "문지터에서 발굴된 것은 문지 사이로 지나가는 안 좋은 기운을 잡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번에 발굴한 여성 인골은 성벽 골조의 가장 자리에 맞춰 2017년 발견한 50대 남녀 인골 2구와 50cm 정도 떨어져 평행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이전과 달리 여성 인골은 곡옥 모양의 유리구슬을 엮은 목걸이, 팔찌를 착용했고, 키가 약 135cm 전후로 체격이 왜소했던 것으로 추정한다. 동물 뼈도 함께 발굴했다. 동물 뼈는 말, 소 등 대형 포유류로 추정하며, 늑골 부위 위주로 선별해 제물로 바쳐진 것으로 보인다.
김헌석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전문위원은 "이번에 발굴한 여성 인골은 전신이 가장 잘남은 형태이며, 전체적인 골격과 발달 양상, 연령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을 때 왜소한 성인 여성이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며 "2017년에 발굴한 인골 2구와 영양 상태가 불균형하고 좋지 않은 낮은 계급에 있었던 사람이라는 공통점이 있다"고 밝혔다.
2017년과 이번에 발굴한 인신공희 유구는 구멍의 어귀가 낮은 넓은 토기 안에 작은 토기를 넣은 토기들을 함께 발견됐다는 점도 동일하다. 다만 이전 유구는 발 아랫부분에 서 발견했다면, 이번엔 머리와 어깨 사이에서 토기를 확인했다.
인신공희 지점에서 북서쪽 방향으로 약 10m 정도 떨어진 곳에는 1985년과 1990년 시굴·발굴조사에서 출처 불명의 인골 20구 이상이 일괄적으로 확인된 바 있다.
그러나 이번에 밝혀진 월성의 축성 작업과 비교한 결과, 이들 인골이 일괄 발굴한 20구는 성벽 축조 과정과 관련해 묻힌 것은 맞지만 인신공희 사례라고는 확인되지 않는다.
장기명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는 "17구는 동물 뼈와 흐트러진 형태로 발견되는 등 성벽 중심 골조에 붙어 있는 3구와 같이 '인신공희' 사례라고 불 수 있는 정황 자료가 부족하다"며 "이 부분에 지속적으로 재검토를 해서 그 의미를 유추해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더불어 이번 월성 서성벽 조사는 축성 시기, 토목 기술을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도 그 중요성이 크다.
'삼국사기', '삼국유사' 기록에는 월성이 파사왕 22년(101년)에 축조된 것으로 등장하지만, 이런 축성 기록은 실제 축조 연대보다 많이 앞당겨진 시기로 여겨져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이번 서성벽 발굴조사를 통해 월성은 문헌 기록과 약 250년 차이 나는 4세기 중엽부터 쌓기 시작해 5세기 초에 이르러 완공된 것으로 확인됐다.
연구소는 월성 서성벽의 축조 연대를 출토한 유물의 전수 조사와 40여 점에 가까운 가속질량분석기(AMS) 연대 분석을 기반해 분석했다. 양자 간의 정합성을 최대한 맞추어 자료의 객관성을 높였다.
월성 성벽은 너비 약 40m, 높이 10m 이상으로 추정된다. 이는 월성은 신라에서 가장 이른 시기의 토성으로 알려졌지만, 그 축조 수준은 토목공학적으로 다양한 축성 기술이 집약됐다.
일정 간격으로 나무 말목을 박은 지정(地釘)공법과 목재, 식물류를 층층이 깐 부엽 공법 등 기초부 공사를 통해 월성 지형의 연약한 지반을 보강했다. 이후, 본격적으로 성벽 몸체를 만드는 체성부 공사에서는 볏짚·점토 덩어리·건물 벽체 등을 다양한 성벽 재료로 사용해 높고 거대하게 만드는 토목 기술이 확인됐다.
안소현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특별연구원은 "식물 재료들은 토성벽 내에 흘러든 물을 서서히 배출하는 기능을 하며, 식물 섬유는 흙 속에서 인장강도를 높여서 성벽의 안정성을 높이는 기능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며 "4세기 중엽 신라인들의 뛰어난 토목 기술과 당시 왕성의 웅장함을 그려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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