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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팬 톡] 한국기업을 보는 日의 프레임

조은효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1.09.28 18:16

수정 2021.09.28 18:51

[재팬 톡] 한국기업을 보는 日의 프레임
2년이나 지났지만 아직도 풀리지 않은 의문이 하나 있다.

아베 정권의 반도체 소재 수출규제가 발동된 2019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도쿄를 긴급히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이 부회장이 검은 가죽 가방 하나만 단출하게 끌고, 도쿄 하네다 공항에 모습을 나타낸 것은 일본 정부의 규제 시행 사흘 만인 7월 7일이었다. 이후 5박6일간 이 부회장의 정확한 동선은 베일에 가려져 있으나, '리크'된 것 중의 하나가 일본의 대형 시중은행들과의 면담이었다.

'왜 이 시점에 일본 메가뱅크들을 방문한 것일까.' 일본 정부의 한 인사는 자금회수 가능성을 언급했다. 그는 "한국 법원의 징용 배상 판결에 대한 보복조치로 일본이 자금을 회수할 수 있어 이를 안정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만난 것으로 안다"고 했다.


"삼성이 매일 전 세계에서 벌어들이는 달러가 얼마인지 아느냐. 설령 자금 회수 우려 때문이라고 치자. 한국은 물론이고 해외 언론들이 주시하고 있는 마당에 기업 총수가 직접 동네방네 기업 리스크를 소문내고 다닐 일이 있느냐. 상식적이지 않다"고 반문했다. 그는 "나름 신뢰할 만한 정보 소스"라고 다시 반응했다.

일본 유력 매체의 언론인도 비슷한 얘기를 했다. "중동 등지에서 대규모 프로젝트 시, 삼성이 일본 자금을 많이 쓰는데, 면담에서 이 자금이 안정적으로 공급되게 해달라는 취지로 부탁을 한 것으로 안다"고 했다. 다른 일본 정부 관계자도 '이구동성'으로 "그렇게 안다"고 했다.

한국 재계 인사들은 "삼성이? 자금이 넘쳐나는데?" 고개를 가로저었다. "우리를 아직도 그런 시선으로 보는구나." 일본 현지에서 활동하는 한 한국 기업인은 혀를 찼다. 20여년 전, 1997년 외환위기 때의 '오래된 프레임'으로 삼성을, 또 한국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다.

은행은 정보의 집합소다. 정보는 곧 돈이고, 리스크 관리의 기본이기 때문이다. 일본 메가뱅크의 정보력을 통해 아베 정권의 의중을 파악할 수 있고, 역으로 이쪽의 정보를 흘렸을 수도 있다. 오랜 세월 신뢰 관계를 갖고 있는 일본 은행들과 만나 동향을 파악했을 것이란 설명이 한국 내 정설이다. 단적으로 요약하자면, 한국이 생각하는 한국과, 일본이 생각하는 한국 사이에 일정 수준의 간극이 있는 것이다.

일본 아소 다로 부총리 겸 재무상은 한국 법원이 징용 배상금 지불을 위해 일본 기업의 한국 내 자산을 매각하면, 이에 대한 보복조치로 한국에 금융제재도 불사할 수 있다고 공공연하게 말하고 있다.

동의하지는 않지만, '자금의 안정적 관리'를 당부하기 위한 것이란 일본 측 시각이 맞을 수도 있다. 기업은 유동자산을 갖고 있어도, 상황에 따라 돈을 빌리고 투자를 한다.
정확한 내용은 이 부회장 측과 면담 상대만이 알 수 있다. 가석방 상태인 이 부회장의 해외 출장은 여전히 자유롭진 못해 보인다.
하지만 과연 '20년 전 프레임'이 여전히 유효한지, 언제고 다시 도쿄를 방문하게 된다면, 한 번 정리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ehcho@fnnews.com 조은효 도쿄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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