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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원조 낙지볶음 조방낙지의 '조방'을 아시나요

1960년대 조선방직주식회사와 그 일대의 모습.(부경근대사료연구소 제공)© 뉴스1
1960년대 조선방직주식회사와 그 일대의 모습.(부경근대사료연구소 제공)© 뉴스1


1일 오후 부산 동구 범일동 '조방' 일대.2021.10.1/© 뉴스1 백창훈 기자
1일 오후 부산 동구 범일동 '조방' 일대.2021.10.1/© 뉴스1 백창훈 기자


1일 오후 부산 동구 범일동 조방타운.2021.10.1/© 뉴스1 백창훈 기자
1일 오후 부산 동구 범일동 조방타운.2021.10.1/© 뉴스1 백창훈 기자


(부산=뉴스1) 백창훈 기자 = "부산 천지에 널려 있는 조방낙지, 대체 조방이 어디야?"

수도권에 사는 A씨(20대)는 부산에 놀러 오면 꼭 낙지볶음을 먹는다. 각종 야채와 매콤한 양념을 낙지와 함께 프라이팬에 볶아 밥에 슥슥 비벼 먹으면 그 맛이 일품이라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A씨도 부산 낙지볶음의 원조 격인 조방낙지의 '조방'은 잘 모른다.

대체 조방은 무엇일까?

조방은 '조선방직주식회사'의 줄임말이다.

3일 부산시에 따르면 조선방직은 1917년 일제가 현 부산 동구 범일동 자리에 세운 조선 최초의 면방직 공장이었다.

해당 공장은 부지가 4만평에 이르고 54동의 건물에 종업원만 3000여명에 달하는 대형 시설인 것으로 전해진다.

이곳으로 자연스레 사람이 몰리면서 인근에 점포도 하나둘씩 들어섰다. 이윽고 번화가가 형성되자 시민들 사이에서 조선방직을 줄인 '조방'으로 불리게 됐다.

이때 들어선 점포 중 한 곳이 낙지볶음 가게다. 이후 맛이 좋아 유명세를 떨치면서 전국으로 상호명이 퍼져 나간 게 그 유래다.

조선방직은 해방 이후에도 십여년간 운영되다 1968년 청산됐다. 그 자리에 현 자유 시장과 평화 시장이 들어서고 시외버스 터미널까지 생기자 외지인 유입도 늘어났다.

이런 지리적 장점에 1980년대 조방은 부산 최대 예식장 밀집 지역이기도 했다.

시민 장모씨(60대)는 "당시 조방은 네온사인으로 번쩍였고 나이트클럽과 술집이 많았다. 당시 외출 나가면 서면보다는 조방에 더 자주 갔다"고 회고했다.

그러나 현재 조방 일대는 세월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늙어버렸다.

조방의 일부 건물 외벽은 갈라졌고 색이 바래 누렇게 변했다. 경기침체와 코로나19 여파에 문을 닫거나 임대를 내놓은 가게도 많은 상태다.

빼곡했던 예식장의 대다수는 폐업했고 일부만이 영업을 이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예식장 관계자는 "당시 주말에는 하객들로 빼곡했고 '축하한다'는 소리가 여기저기 들렸다"며 "지금은 임대를 내줘야 할 판"이라고 말했다.

낙후한 조방을 두고만 볼 수 없었던 동구청은 옛 번화가 명성을 되찾자는 취지의 상권 활성화 운동도 펼쳤었다.

구는 2016년 국·시비 60억원을 투입해 도로축소 및 인도확장, 조방의 상징적인 조형물 설치, 사람중심의 보행자 거리 등을 조성했다.

하지만 지역 상인들의 호응을 얻지 못하면서 지지부진한 채 끝이 났다.

최형욱 동구청장은 "내년 중소기업벤처부에서 실시하는 상권르네상스 공모에 지원할 예정"이라며 "이를 통해 낙후된 조방을 다시 살려보겠다"고 강조했다.

이 가운데 일제 수탈 역사를 가진 '조방'의 명칭 사용을 최대한 지양해야 한다는 움직임도 있다.

현재 범일동 일대 도로 명칭은 '조방로'다.
몇 해 전 동구의회에서는 인근 지하철역 이름까지도 '조방역'으로 바꾸자는 의견이 있었다.

이광우 독립운동가 아들 이상국씨(60대)는 조선방직이 일제의 식민지 수탈에 대한 명백한 증거라며 올바른 역사관 확립 없이 조방 명칭을 사용하는 것은 '조선 식민지 근대화론'에 부합하는 행위라고 주장했다.

이씨는 "부산에 온 일본인들이 조방 명칭을 보고 한국인들이 일제의 식민지 시절을 그리워하는 일로 비춰질 수 있다"며 "지자체는 조방의 어원을 정확히 명시하고, 옛 조선방직과 관련해 지역 상권을 부흥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