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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산 밀어내는 중국, 화장품도 예외 아니었다 [글로벌 리포트]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1.10.03 19:32

수정 2021.10.03 19:32

수입 화장품 규제 왜?
코로나에도 화장품시장 커지자
올 초 화장품위생감독조례 폐지
자국기업은 등록절차 줄여주고
외국기업엔 '영업비밀' 공개시켜
1년새 내놓은 규제만 13개
핵심은 로컬브랜드 경쟁력 상승
품질·안전기준 글로벌社와 맞춰
중국 중심 소비·공급이 목표
한국산 밀어내는 중국, 화장품도 예외 아니었다 [글로벌 리포트]
【파이낸셜뉴스 베이징=정지우 특파원】 중국에 진출한 한국 화장품 기업들의 경쟁력이 추락세를 거듭하고 있다.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태 이후 한국 기업을 옥죄는 '한한령'(한류제한령)과 미·중 무역분쟁 충격 여파, 코로나19 창궐 이래 글로벌 공급망 차단, 중국 시장 접근방법의 다양화 부재 등이 복합적으로 장기간 누적된 게 요인이다. 이미 중국 수입 화장품에서 차지하는 한국 화장품 점유율은 지난 4년 동안 8.1%p가량 내려앉았다.

하지만 뾰족한 해결책은 아직 없다. 오히려 '공동부유'(다 함께 잘살자)를 내건 중국 정부의 전방위 압박이 이제 시작 단계다. 민족주의·애국주의, 연예·플랫폼 산업 규제 강화 등 정부·매체들의 견제도 점차 심각해지는 상황이다.


그러나 스마트폰, 액정표시장치(LCD), 전기차 등과 달리 한국 화장품 기업에 가해지는 위기감이 상대적으로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중국 정부 규제가 있을 때마다 아모레퍼시픽, LG생활건강 등 주요 화장품 기업 주가가 요동을 치지만 관심은 그 순간뿐이다. 반면 중국 정부의 규제는 치밀하고 광범위하다. 자국 기업을 끌어올리기 위해 경쟁 상대국가 기업에 오랫동안 서서히 제재를 가한다. 하지만 중국을 포기할 수는 없다. 중국 화장품 시장 규모는 세계 2위다.

최상의 대응법은 중국의 속내를 제대로 알고 일찍 준비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중국 정부가 글로벌 화장품 시장을 장악하기 위해 어떤 정책을 진행시키고 있는지 들여다봤다.

■中화장품 '활황'에 규제 시작

2020년은 중국 후베이성 우한을 시작으로 전 세계가 코로나19 확산 속에서 필사적 생존법을 모색하던 시기였다. 전파 방지를 위한 통제로 글로벌 공급망이 차단됐고 감염 우려 때문에 소비시장도 침체의 늪에 빠졌다.

다만 중국 화장품 시장은 달랐다. 중국 화장품 시장 규모는 2019년 2992억위안(약 55조2000억원)에서 2020년 3400억위안(62조7000억원)으로 오히려 9.5% 증가했다. 글로벌 시장이 같은 기간 5262억달러(약 624조6000억원)에서 5033억달러(597조4000억원)로 4.35% 감소한 것과는 대조된다.

중국 규제당국인 국가약품관리감독국은 이처럼 중국 화장품 시장이 외부충격에도 수년째 지속 상승하고 있다는 점을 노려 2020년 6월 '화장품 감독 및 관리 규정'을 제정했다. 위험 수준에 따라 화장품과 원료 관리·인증등록·광고 등을 규제하고, 책임자를 처벌하는 내용이 골자다. 그 대신 자국산 화장품 인증과 등록절차를 간소화했다.

당국 입장은 표면적으론 소비자의 건강권익을 보장하고 화장품 업계의 건강발전 규범화를 촉진하는 것이다. 올해 1월부터 본격 시행하면서 지난 30년간 중국 화장품 업계에 적용되던 화장품위생감독조례는 과감히 폐지했다.

그러나 규정을 자세히 분석하면 중국 정부의 의도는 명확해진다. 우선 약품총국의 권한을 강화했다. 약품총국이 화장품과 원료를 위험도로 나눠 관리하면서 절차와 조건을 요구할 수 있도록 했다.

쉽게 말해 자국 기업엔 등록절차를 줄여주면서 외국 기업엔 얼마든지 까다로운 조건을 내걸 수 있게 됐다는 의미다.

실제 규정에는 화장품의 효능광고 근거자료를 홈페이지에 공개토록 의무화했다. 전성분과 조제표, 제품 수행기준, 샘플정보, 생산공정, 안전평가보고서, 모든 원료의 함량 비율, 사용 목적, 관련 원료 공업업체 정보 일체 등을 망라했다. 사실상 기업의 영업비밀을 내놓으라는 뜻이다.

중국 정부는 이 과장에서 유예기간을 충분히 설정하지도 않았다. 수입 화장품의 경우 규정에 맞춰 '품질안전책임자'를 지정해야 한다.

하지만 관련 업무가 가능한 인력은 한정돼 있다. 중국 특성상 중국 내 담당자와 자유로운 의사소통이 가능한 화장품 전문인력도 소수에 그친다.

화장품 업계 관계자는 "외부와 소통이 필요한 수입 화장품은 플랫폼 요구 자료가 달라 인허가서, 생산품질관리 자료 모두를 다시 준비해야 하는 상황"이라면서 "해외 화장품 기업의 경우 신규 제도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반면 중국 내에선 화장품 산업 진입장벽이 높아지면서 난립하는 자국 중소 화장품 업계의 품질을 균등화할 수 있다. 아울러 대표 브랜드형 화장품 기업을 육성시켜 산업 집중도 상승효과 역시 기대 가능하다.

코트라 상하이무역관에 따르면 올해 8월 기준 중국 내 화장품 라이선스 생산기업 수는 약 5680곳으로 집계됐다. 이들 기업이 등록한 화장품 브랜드는 8만7000개, 제품 수는 160만개다.

■2020~2021년 규제만 13개

화장품 시장에 대한 중국 정부의 공격적인 규제는 올해도 이어졌다. 3월에는 '화장품 효능 선언 평가기준'이라는 것을 도입했다. 여기엔 화장품 관련기업의 허위 홍보·오해의 소지가 있는 여론, 기타 화장품 산업계 혼란을 법적으로 제한하겠다고 밝혔다. 오해 소지의 구체적인 사례에 대해선 알려지지 않았다. 바꿔 얘기하면 중국 규제당국의 판단으로 얼마든지 개별기업에 대한 제재가 가능하다는 취지로 해석될 수 있다.

5월 발표한 것은 인터넷 거래 감독 및 관리 조치다. 네트워크 운영자에 대한 감독·관리·법적 책임 등을 규정했다. 7월에는 검사기관의 자격 및 보고 내용에 대한 구체적인 요구사항을 설정하고 허위주장 방지규정을 공개했다.

중국 규제당국은 더 나아가 지난 8월에는 '화장품 생산 및 운영 감독·관리 조치'를 제정했다. 중국 영토 내에서 화장품을 생산하고 운영하는 종사자가 지켜야 할 조치를 담겨 있다. 화장품 생산에 면허 관리를 도입하고 생산사업자는 제품 추적성 보장을 위해 구매 검사기록, 제품 판매기록 등을 수립해야 한다. 또 화장품 품질과 안전 추적시스템을 구축하도록 권장했다.

주요 특징은 어린이용 화장품 규정을 명시하고 미용기관, 호텔, 화장품전시박람회 행사용 증정품까지 화장품 관리규정을 적용했다는 점이다. 전자상거래 플랫폼 화장품 사업자의 정보등록, 책임소재도 분명히 했다. 중국 정부가 2020~2021년 사이 이 같은 내용을 포함해 내놓은 화장품 산업계 규제만 모두 13개로 집계됐다.

코트라 상하이무역관 김다인 과장은 "기업은 필수 제출자료 준비, 안정성·효능 검사 대행 등으로 추가 비용이 소요되고 신제품 출시주기 연장, 기업 시스템 및 프로세스 수립·보완 등 경영상 운영비용 증가 문제에 직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중국 정부의 화장품 업계에 대한 규제 이면에는 생산·등록 기준 강화와 표준화를 통해 향후 글로벌 생산·판매기지로 도약하겠다는 희망이 담겨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품질·안전 기준을 글로벌 기업과 맞추고, 로컬브랜드 경쟁력을 향상시키면 중국 중심의 소비·공급이 가능하지 않겠느냐는 청사진이다.

중국 화장품 수출입 규모는 매년 증가세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수입 규모가 수출을 대폭 상회하는 수준이다. 따라서 무역적자 폭이 확대될 수밖에 없다. 2020년 기준 중국 화장품 수입 규모는 173억3600만달러(20조8000억원)이지만 수출은 10분의 1가량인 21억7800만달러(2조6000억원)에 불과하다.
이로써 무역적자는 151억5800만달러가 된다. 또 2019년과 비교하면 코로나19 시기에도 화장품 수입은 31.07% 늘었다.
반면 수출은 21.49% 추락했다. jjw@fnnews.com 정지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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