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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세유 축구팀과 아디다스 소유주, 도시장관, 배우였던 베르나르 타피 타계

[AP/뉴시스] 2001년 자료사진으로 타피가 마르세유에서 기자회견을 하며 제스처를 취하는 모습
[AP/뉴시스] 2001년 자료사진으로 타피가 마르세유에서 기자회견을 하며 제스처를 취하는 모습
[파리=AP/뉴시스] 김재영 기자 = 프랑스의 자수성가 사업가로 정치, 연예, 스포츠계까지 뛰어들었던 현란한 전력의 베르나르 타피가 3일 78세로 타계했다.

수십 년 동안 프랑스 식 멋진 삶으로 뉴스 인물이었던 타피의 타계 소식에 각계의 애도가 이어졌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유족 위로 메시지에서 "고인은 천 개의 삶을 살았다"면서 타피의 "야심, 에너지, 열정은 프랑스 세대들에게 영감의 원천이었다"고 칭송했다.

타피는 4년 전 위암 판정을 받았다. 부인과 두 자녀는 고인이 소유하고 있는 마르세유의 라프로방스 지에 사망을 발표하고 "그의 마음의 도시"인 마르세유에 묻힌다고 밝혔다.

마르세유 프로 축구팀 올렝피크의 구단주 시절이 타피의 전성기라고 할 수 있다. 1993년 팀의 챔피언스 리그 승리를 이끌어냈다. 마르세유 팀은 유럽 프로축구 대항전에서 승리한 유일한 프랑스 팀이다.

타피의 마르세유 팀은 1989년~93년 5차례나 프랑스 리그 타이틀을 따냈으나 경기조작 혐의로 1993년 타이틀을 박탈당하면서 2부 리그로 강등됐다. 타피 역시 유죄 판결을 받고 5개월 수감되었다.

마르세유 팬들은 그러나 아직도 타피를 존경해 이날 타계 소식 후 클럽 스타디엄 앞에 세워진 타피의 초상화에 꽃들이 묶여져 헌사되었다.

닉네임 '나나르'로 곧잘 불리던 타피는 사교적인 성품을 타고났고 가수로 성인 생활을 출발했지만 곧 위기에 처해있는 기업들을 인수하는 재주로 큰 재산을 모았다. 이때부터 수십 년 간 프랑스 언론에는 귀족적인 정장 차림에 풍성한 검은 머리숱과 넓적한 아래턱이 인상적인 타피 사진이 자주 등장했다.

배우로 나서기도 했던 타피는 사람들의 주시와 눈부신 각광을 즐겼으며 이는 기업가와 정치가일 때도 마찬기지였다. 텔레비전에도 자주 나온 그는 성공 뿐아니라 여러 분야에서의 상식선을 넘어서는 과도한 삶 그리고 실패에 이르기까지 유명인사 셀렙이었다. 그의 실패는 파산과 기나긴 법정 싸움으로 이어졌다.

타피는 1943년 파리의 가난한 동네에서 연관공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팝 가수로 데뷰하고 자동차 경주선수도 시도했다. 가수는 실패로 끝났고 선수는 코마 상태의 중상을 입고 포기했다.

그는 텔레비전을 파는 일을 한 뒤 허덕이는 기업을 회복시켜 다시 매각하는 일을 전문으로 삼았다. 타피가 되판 기업은 수십 개나 된다. 1990년 독일의 스포츠 용품 대기업 아디다스를 사들였다.

크게 칭송 받던 이 매입은 결국 그의 추락을 가져왔다. 1995년 마르세유 축구팀 문제로 감옥에 갔던 그는 1997년부터 죽을 때까지 아디다스 매입 및 재매각 문제로 법정을 들락거려야 했다.

1989년 당시 극우 정객 장마리 르펜과 치열한 말싸움 토론을 벌였던 타피는 그해 국회의원에 당선되었고 1992년 1년 동안 사회당 프랑수와 미테랑 대통령 정부에서 도시업무 장관을 맡았다.

타피는 1992년 아디다스 지분을 국영 은행 크레디 리오네를 통해 매각했다.
곧 그는 이 거래가 은행이 잘못 처리해 커다란 손해를 입혔다며 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냈다.

2008년 법원 판결로 타피는 4억400만 유로(5000억원)을 받았으나 2017년 항소심은 이를 뒤집어 다시 내놓으라고 명령했다.

2008년 타피에게 유리한 법원 판결이 난 것과 관련해 당시 사르코지 정부의 재무장관이었던 크리스틴 라가르드 현 유럽중앙은행 총재가 연루 의혹을 받아 역시 법원을 오고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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