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잃어버린 가족찾기] 아들에게 편지써도 보낼 주소 없어..."기다리는 마음이 전달됐으면"

김문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1.10.04 15:37

수정 2021.10.05 14:40

2001년 실종된 이근로씨(당시 17세)
전남 담양군 무정면 자택서 집 나선 이후 실종
왼팔 성인 검지손가락 길이 꿰맨 흉터
이근로씨(실종 당시 17세) /사진=아동권리보장원
이근로씨(실종 당시 17세) /사진=아동권리보장원

이근로씨 현재 추정 모습. /사진=아동권리보장원
이근로씨 현재 추정 모습. /사진=아동권리보장원
[파이낸셜뉴스] 2001년 1월 14일 일요일. 그날은 아침부터 눈이 무척 많이 내렸다.

온천지 하얗게 쌓인 눈을 밟으며 집을 나선 이근로씨(당시 17세)는 그날 이후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지금 그의 나이는 만 37세다.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어미는 저녁이 되면 대문 밖을 서성이며 흔적도 없이 사라진 막내아들을 기다리고 있다.

근로씨 어머니는 "그 당시 딸기 농사를 지었는데, 할머니께서 '근로가 안 들어온다'기에 아랫마을 가게에 뭘 사먹으러 갔나 정도로 생각했다. 그런데 그 이후로 돌아오지 않았다"며 "여태껏 근로를 찾으려 섬에도 가보고 수색도 해보고 애를 많이 썼지만 그 누구 하나 봤다는 사람도, 비슷하다는 사람도 없었다"고 토로했다.


어머니가 기억하는 근로씨는 '착한 아들', '착한 막내'였다. "엄마를 잘 따르고 딸기밭에서 일하고 있으면 따라와선 하우스 딸기도 잘 나르고, 일도 시키면 곧 잘 했다"며 "근로가 돼지띠라 가족들이 '돼지야'라고 부르며 귀여워했다"고 어머니는 말했다.

남매간 우애도 깊었다. 광주에서 지내던 큰 누나가 집에 올 즈음 "누나 마중을 가야한다"며 버스 정류장에서 누나를 기다리다 함께 집에 들어오곤 했다. 누나는 지적장애가 있어 공부를 하고 싶어도 못했던 근로씨를 앉혀 놓고 공부를 가르치기도 했다.

근로씨의 왼팔 어깨와 팔꿈치 사이에는 성인 검지손가락 길이의 꿰맨 흉터가 있다. 초등학교 2학년 즈음 친구들과 놀다 유리창에 부딪혀 다친 상처다.

어머니는 길을 가다 아들 근로씨 또래의 청년들을 보면 마음 한 켠이 찡하다며 울먹였다. "우리 근로도 저만큼 컸을텐데… 어디서 어떻게 잘 지내고 있을지, 겨울이면 춥지 않을지 걱정이 된다"고 했다.

전남 담양군 무정면에서 지내는 근로씨 가족은 그날 이후 단 한번도 이사하지 않고 그 자리에 머물고 있다. 이 집은 근로씨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라 언젠가 아들이 집을 기억하고 찾아올지 모른다는 이유에서다.

근로씨의 어머니는 "지금도 대문 밖"이라며 "대문 밖에 서성이고 있으면 금방이라도 '엄마'하고 부르며 올 것 같은데, 그렇지도 않고 벌써 20년이 됐다"고 말했다.

어머니는 중간 중간 울음을 삼키며 말을 이어갔다. "근로한테 편지를 썼다가도 보낼 주소가 없어 마음을 전하지 못했다"며 "항상 근로를 생각하며 살고 있고, 엄마가 늘 기다리고 있다는 마음을 알고나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어 "희망을 잃지 않고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근로야, 너는 알고나 있는지…너무 보고싶다. 엄마는 언젠가 꼭 돌아오리라 믿고 살고 있으니 '엄마, 나 여기있어. 데리러와' 하면 엄마가 데리러 갈게"라고 마음을 전했다.

어머니는 또 "너와 나는 왜 이렇게 살아야만 되는건지… 이렇게 보고싶은 마음을 어떻게 너에게 전할 수 있을까"하며 말끝을 흐렸다.

오는 15일은 근로씨의 37번째 생일이다.
어머니는 근로씨에게 마음이 전해지길 기도하며 "어디에 있든 건강하게 지내다 엄마랑 만날 수 있는 날을 기다려보자"며 "꼭 돌아와다오. 우리가 만날 그 날을 기다리고 있으니 꼭 돌아와다오"라고 되뇌었다.

gloriakim@fnnews.com 김문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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