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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광장] 500원 지폐 거북선과 K-조선

김충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1.10.13 18:33

수정 2021.10.13 18:33

[fn광장] 500원 지폐 거북선과 K-조선

승부사 정주영은 거북선이 그려진 500원짜리 지폐를 꺼냈다. 한 신사 앞에서 한국이 영국보다 300년이나 앞선 1500년대에 철갑선을 제작했다는 사실을 부각했다. 당시 영국 조선회사 A&P애플도어 롱바톰 회장은 감동했고, 바클레이스은행에서 자금조달을 할 수 있었다. 정주영 회장은 조선 불모지에서 세계 1위 조선이란 장엄한 역사를 울산 현대중공업에서 써내려갔다. 글로벌 금융위기 전 조선산업은 원화강세 속에서도 선가를 올릴 수 있는 주도권이 있어 화려한 시절을 보냈다. 조선산업의 대내외적 여건이 잿빛 안개로 덮인 후 키코(KIKO·파생금융상품) 사태로 공적자금을 거침없이 들이켰다.
오랜 영예는 몇 년 전부터 수주가뭄으로 가파른 내리막길을 걸어 빛이 바랬다. 현대중공업이 소재한 울산 동구는 고용위기지역으로 선포되는 수모까지 겪었다.

그런 와중에 할아버지의 모습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는 소년은 성장해 야심찬 미래를 꿈꿨나 보다. 10월 12일 현대중공업그룹이 3세 경영을 공식화했다. 정기선 현대중공업지주 대표이사는 우리나라 제조업을 대표하는 백년기업으로 전진할 진용을 발표했다. 신문기자 1년이란 독특한 경력의 소유자로 신산업과 성장동력 발굴에 오랜 준비를 해왔다. 물론 해결할 사항도 산재해 있다. 인수합병 최대 관건인 유럽연합(EU)의 대우조선해양 인수 기업결합 심사가 연기됐다. 조선, 에너지, 건설기계 사업에서 책임경영 체제를 확립해야 한다. 계열사 간 시너지 창출과 기업가치 상승으로 주주 중심 경영체제도 공고히 해야 한다. 올해 들어 잇달아 수주 뱃고동을 울렸지만 선박용 후판 가격이 급등해 2·4분기에 대규모 손실을 기록했다. 선가 인상으로 실적개선과 주주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 울산을 비롯한 인근 지역의 조선산업 재도약 전망은 밝다. 정부는 2022년까지 조선 분야 생산·기술인력 8000명을 양성한다. 스마트야드 같은 디지털 기반 생산역량을 강화해 2030년까지 생산성을 30% 끌어올릴 계획이다. 글로벌 시장에서 친환경선박 점유율을 75%, 자율운항선박 점유율 50%까지 확대한다는 목표다.

울산시도 그동안 5G 기반 조선해양 스마트 통신플랫폼 및 융합서비스 개발사업, 자율운항선박 성능실증센터 구축 같은 대규모 국책사업을 수행했다. 2022년 건조를 목표로 2021년까지 국내 최초 ICT융합 친환경 전기추진 스마트선박 설계를 완료한다. 업황 주기가 긴 조선산업은 한 번 업황개선이 시작되면 장기간 일관된 방향을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 올해 한국 조선업계는 LNG선 시장에서 절대적 우위를 공고히 하고 있다.
카타르발 대규모 LNG선 수주는 실적개선에 가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여러모로 2023년 조선산업의 명(明)은 더욱 확실해 보인다.
신임 대표의 열정과 거북선의 용틀임을 소망해 본다.

조원경 울산시 경제부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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