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까지 우란문화재단 우란2경
두 배우의 목소리로만 빚어낸 세상의 소리들이다. 2인극 뮤지컬 '아일랜더'는 이 마법 같은 황홀경을 선사한다. 별다른 악기 없이 배우들이 직접 조작하는 루프 스테이션과 마이크를 통해 모든 소리를 만들어낸다.
루프 스테이션은 목소리나 연주를 즉석에서 녹음해 실시간으로 반복 재생하는 기계를 가리킨다.
영국 팝스타 에드 시런이 내한공연 등에서 사용해 국내 음악 팬들 사이에서 알려졌다.
'아일랜더'는 이 루프 스테이션의 효과를 극대화한다. 앞서 언급한 효과음뿐만 아니라 악기가 맡아야 하는 연주까지 목소리로 만들어 루프 스테이션을 통해 반주로 깔아낸다.
특히 두 배우가 각각 만들어낸 멜로디 위에 또 자신의 목소리로 만든 멜로디를 덧입혀 만들어낸 화음(和音)은 여러 배우가 동시에 내는 화음과 다른 성질의 몽환성을 뽐냈다. 독특한 아카펠라 뮤지컬이다.
음악뿐만 아니라 조명, 영상 등 무대 미학도 나무랄 데가 없다.
바다 위 둥둥 떠 있는 섬처럼 공연장 한 가운데 원형무대가 자리잡고 있다. 그 무대의 바닥 전체를 각종 영상으로 뒤덮어 고래, 바다, 해변을 만들어낸다. 객석은 무대 주변을 360도로 뺑 둘러싸고 있다. 관객들 역시 바다 위에 동동 떠 있는 기분이다. 천장에 바싹 붙은 벽에 다양한 색의 조명을 비춰 새벽, 저녁, 밤 등의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형식뿐만 아니라 내용적으로도 톺아볼 거리가 많다. 본토에서 떨어진 섬마을 '키난'의 유일한 소녀 에일리와 끊임없이 움직이는 '세타 섬'에서 온 미스터리한 고래 지킴이 소녀 아란의 운명적인 만남 그리고 우정을 그린다. 신비로운 신화 속 이야기와 섬의 개발과 미래를 논하는 현실 속 이야기를 아우른다.
자연과 문명, 개인주의와 공동체, 진실과 사실 등 대립하는 가치관이 격돌하도록 불쏘시개를 놓지 않는다.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 아닌, 마음으로 포용할 수 있는 드넓은 바다를 만들어준다.
여성 배우 2인극이고 주된 캐릭터들이 여성이라 몇년 전부터 공연계에 불어온 '여성 서사'의 맥락으로 읽을 수도 있다. '아일랜더'는 한발 더 나아간다. 삶과 생명의 순환에 더 방점을 찍는다.
에일리의 할머니이자 섬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노인이 세상을 떠나면서, 한동안 새 생명이 없던 키난 섬에 아이가 태어나는 연결고리가 그렇다. 무대도 원형이고, 고래 떼도 주기적으로 섬을 찾으며, 루프 스테이션의 둥근 사운드도 원형의 이미지를 갖고 있다. '아일랜더'는 그렇게 순환의 연결고리들이 띠를 이룬다.
이 모든 것들이 무리 없이 구현되는 이유는 배우들의 역량이다. 정인지와 이예은, 유주혜와 강지혜가 각각 짝을 이룬다. 정은지와 유주혜가 아란, 이예은과 강지혜가 에일리다. 이들 배우는 주인공 외에 다양한 인물로 시시각각 변화한다.
뮤지컬은 정보 전달이 주목적이 아니라 감정의 교류임을 '아일랜더'는 확인해준다. 그건 영상의 시대에 라이브 공연의 존재가치에 대한 방증이기도 하다.
공연은 봤다는 기록이 중요한 게 아니다. 특정 시간 같은 공간에서 몸과 마음에 무엇인가가 각인되는 공동체적 체험이다. '아일랜더'는 결국 자연뿐만 아니라 이 시대에 바로 눈 앞에 살아서 존재하는 것들에 대한 경의를 담은 헌사다.
이런 점들로 인해 '아일랜더'는 소극장 공연임에도, 스타가 나오는 대형 공연 이상의 화제성을 갖고 있다. 모든 회차의 티켓은 일찌감치 매진됐고, 소셜 미디어에서는 각종 후기와 팬아트 등이 바다처럼 넘친다
2017년 스코틀랜드 멀 섬(Isle of Mull) 워크숍을 시작으로 스코틀랜드 투어 등을 진행했다. 이번이 국내 초연이다. 박소영 연출, 김성수 음악감독, 조민형 작가 등 탄탄한 스태프들이 뭉쳤다. 오는 31일까지 서울 성수동 우란문화재단 우란2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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