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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대만기업에 5조원 쥐어주면서 '반도체 재건'...WTO위반 우려도[도쿄리포트]

조은효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1.10.15 18:35

수정 2021.10.15 18:36

대만 반도체 위탁생산기업 TSMC
日 이바라키현 연구소에 이어 
구마모토현에 공장 설립키로 
日정부 절반인 5조원 지원키로
경제안보 차원의 반도체 공급망 확보 
거액의 보조금 지원, 부정적 시각도 
日주류 언론 "WTO보조금 협정 위반 가능"   
대만 TSMC 반도체 생산라인. 뉴시스
대만 TSMC 반도체 생산라인. 뉴시스
【도쿄=조은효 특파원】 일본 정부가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기업인 대만 TSMC의 반도체 공장을 유치하면서 건립 비용의 절반인 5000억엔(약 5조1800억원)이란 거액을 지원해주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산업의 쌀'인 반도체를 일본 기업들에게 안정적으로 공급하겠다는 경제안보차원의 접근법이다. TSMC측의 구마모토 공장 설립 발표 직후부터 이 공장에서 반도체 칩을 공급받을 것으로 지목되는 소니그룹의 주가가 상승하는 등 대체로 시장의 분위기는 환영하고 있으나, 해외 기업에게 조단위 보조금을 쥐어주는 것에 대해 비판의 눈길도 만만치 않다. 이런 시각의 연장선상에서 자칫하면 세계무역기구(WTO)보조금 협정 위반이 될 수 있다는 우려 섞인 지적이 15일 일본 주류 언론에서 제기됐다.

대만 TSMC 로고. 로이터 뉴스1
대만 TSMC 로고. 로이터 뉴스1

日, 외국기업에 5조원 지원해 반도체 재건 시동
일본과 대만의 반도체 동맹의 상징이 될 대만 TSMC의 일본 구마모토 공장은 내년에 착공에 들어가, 2년 뒤인 2024년부터 양산에 들어가는 일정이다. 주력 제품은 22∼28나노미터(㎚=10억분의 1m) 공정의 반도체다.
TSMC 구마모토 공장 유치는 아베 정권 때인 지난 2019년부터 일본 정부가 공들여 온 사안이다. 일본 정부는 일본 반도체 산업 쇠락에 적지않은 위기감을 가졌다. 1980년대 NEC, 도시바, 히타치 등 일본 기업들은 세계 반도체 시장을 주도했으며, 이들의 세계 시장 점유율은 50%를 넘었었다. 현재 그 자리는 한국, 대만 기업들이 차지하고 있다.

TSMC는 일본의 반도체 재건에 대한 절박함을 이용, 내내 협상의 우위를 점했다. TSMC는 이번 구마모토현 공장 발표에 앞서 올초 이바라키현 연구시설 건립에 그치는 모양새를 취했었다. 이때도 건립 비용의 절반을 일본 정부가 댔다. 최첨단 반도체 생산 공장에 기대를 걸었던 일본 측은 아쉬움을 삼켜야했고, 이후 더욱 끈질기게 공장 유치에 나섰다. 결국 5000억엔이란 거액을 쥐어주면서 최대 최대 반도체 위탁 생산 공장 유치에 이르렀다.

기시다 총리는 전날 저녁 중의원 해산 관련 기자회견을 연 자리에서 일본 정부가 2019년부터 협상을 벌여온 TSMC 신공장 유치가 확정된 사실을 거론하며 총 1조엔(약 10조원) 규모의 대형 민간 투자 등에 대한 지원책을 새 경제 대책에 포함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아사히신문은 기시다 총리의 말을 근거로 TSMC 신공장 투자액이 총 1조엔 규모라며 절반인 5000억 엔을 일본 정부가 지원하는 방향으로 검토되고 있다고 전했다.

기시다 총리는 TSMC 공장 건설이 일본 반도체 산업의 자율성을 높이고 경제 안보에도 크게 기여할 것이라며 지원하기로 한 배경을 설명했다. 일본 정부는 보정예산(한국의 추가경정예산)에 해당 예산을 반영할 계획이다.

TSMC 구마모토 공장에서 만들어질 반도체 칩이 이 지역 소니 이미지 센서 공장에 납품될 것으로 알려지면서, 소니그룹의 주가는 상승세를 탔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로이터 뉴스1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로이터 뉴스1
■보조금 지원 WTO협정 위반 가능성
일본 내에서는 대체로 환영하는 목소리가 많지만, 보조금이 지급돼야 하는 부분에서는 시각이 엇갈렸다.

또 "굳이 왜 대만 기업에 돈을 줘야 하는 것이냐"는 것이다. 키오시아(옛 도시바반도체)나 소니의 반도체 사업부분 등 일본 기업들이 힘을 합치면 해볼만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첨단 반도체를 생산하기에는 일본의 기술력이 크게 뒤쳐져 있어, 당장은 TSMC로부터 기술 수혈을 받지 않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조금 다른 차원에서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보조금을 주는 방법에 따라서는 WTO 규칙 위반이 될 수 있다고 우려를 드러냈다. TSMC에 건넬 보조금은 일본 경제산업성 산하의 신에너지·산업기술종합개발기구(NEDO)가 운영하는 기금 활용이 유력하다. 일본 정부는 이 보조금의 대가로 TSMC에 일본 시장 공급을 우선으로 하는 의무를 지우고, 사업 철수 등으로 이를 이행하지 못할 경우 보조금을 반환토록 할 요량이다.

닛케이는 식량이나 에너지처럼 필수재가 된 반도체를 시장원리에 맡기지 않고 국가가 책임지고 확보한다는 것이 일본 정부의 정책 방향이지만 경제 안보를 명분으로 한 거액의 보조금을 지급하는 게 시장질서를 왜곡시킬 우려가 있어, WTO 규칙 위배 논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WTO 협정 위반으로 즉각 간주하는 '금지 보조금'은 수출을 지원하는 보조금과 국산 부품이나 재료를 사용하는 조건으로 지원하는 보조금을 말한다. 일본 정부가 TSMC에 주려는 보조금은 금지 보조금은 아니나, 사안별로 따져들어갔을 때 보조금 협정 위반으로 걸 수 있는 조치가능 보조금(상계 가능 보조금)에 해당된다는 게 통상 전문 변호사들의 대체적 견해라고 닛케이는 전했다.

또 일본 정부 보조금을 받은 공장에서 생산한 반도체를 낮은 가격으로 일본 국내에 공급할 경우 반도체 메이커를 둔 한국 등이 일본 수출이 줄어 피해를 보고 있다고 제소할 가능성이 있고, TSMC가 일본 공장 생산품을 저가로 수출하는 경우에도 피소될 위험이 없다고 볼 수 없다고 분석했다.

반면, 미국은 물론이고 주요국들이 이미 자국 산업 발전을 위해 보조금 지원에 나서고 있고, 해당 보조금으로 인한 직접적인 피해가 발생해야 하는 등 실제 제소로 가기도 쉽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걸면 걸겠지만, 이미 많은 나라들이 해오고 있다"는 것이다.

ehcho@fnnews.com 조은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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