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형욱 금융부장·부국장
만일 허생이 현재 시중은행을 찾아갔다면 어떻게 됐을까. 일단 허생은 신용등급이 낮아 신용대출을 받기 어렵다. 일정한 소득도 없어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도 의미가 없다. 주담대도 주택담보인정비율(LTV)이 40%에 불과해 오막살이집으로는 돈을 빌리기 힘들다. 신용대출이든, 담보대출이든 지독한 '대출가뭄'에 빠진 현재 금융시장에서 대출을 받기 어려운 건 허생만의 일은 아니다. 대출가뭄은 급증하는 가계대출을 통제하기 위한 금융당국의 '대출총량규제'에 원인이 있다. 올해 금융당국은 각 은행에 대출잔액의 전년 대비 증가율 상한선을 평균 5∼6%로 유지토록 압박하고 있다. 올해 가계대출 증가세만 보면 금융당국의 선택은 불가피해 보인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9월 말 기준 은행권 가계대출 잔액은 1052조7000억원으로, 전달보다 6조5000억원 늘어났다. 앞서 지난 8월 말 기준 은행권 가계대출 잔액은 1046조3000억원으로, 전달보다 6조2000억원 증가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폭발적인 가계대출 증가는 우리 경제에 최대 위험요소로 부상했다는 측면에서 규제에 공감한다.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만으론 불길처럼 번지는 가계대출 증가세를 꺾을 수 없다는 것도 안다.
문제는 정책의 일관성이다. 요즘 금융당국을 보면 '변덕이 죽 끓듯 한다'는 속담이 떠오른다. 지난 8월 고승범 금융위원장은 "가계대출을 철저하게 관리하겠다"면서 대출규제 의지를 보였다. 그 후 농협은행이 선제적으로 대출중단을 선언했다. 이어 다른 은행들로 대출중단이 확산될 조짐을 보였다. 이때 금융당국은 "대출중단 사태가 확산되지 않을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대출중단은 다른 은행으로 확산됐다. 불똥은 실수요자에게까지 튀었다. 그제서야 금융당국은 한발 물러섰다. 고 위원장은 지난 10월 14일 "연말까지 전세대출과 집단대출을 가계부채 총량관리 한도에서 제외하겠다"고 발표했다. 금융당국이 오락가락하는 사이 실수요자들은 혼란에 빠졌다. 금융당국이 '속도는 조절하더라도, 방향은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는 철학을 가져야 한다. 그게 바로 가계부채 관리의 출발점이자, 금융시장 안정의 지름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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