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고승아 기자 = 단 십개월, 길지 않은 그 시간은 주인공 미래의 미래를 모조리 바꿔버린다. 현실의 모습을 고스란히 담아내면서도 유머를 더한 영화 '십개월의 미래'다.
지난 14일 개봉한 '십개월의 미래'는 정신 차려 보니 임신 10주, 인생 최대 혼돈과 맞닥뜨린 29살 프로그램 개발자 최미래(최성은 분)의 십개월을 담은 작품이다.
영화는 뙤약볕 아래 무감한 표정으로 있는 미래의 모습에서 시작된다. 오래된 차를 몰고 다니는 최미래는 자신의 꿈을 좇기 위해 열심히 달리는 여성이다.
그 사이 배는 불러오고, 가족들도 놀랐지만 금세 결혼을 추진한다. 미래는 '자신을 두고' 움직이는 이 모든 상황에 혼란을 느끼며 태명을 '카오스'로 짓기도 한다. 동시에 미래가 다니는 회사는 미래의 활약으로 중국 상하이로 진출하게 됐고, 임신으로 고민하던 차에 윤호에게 상하이를 가겠다고 하자, 윤호는 한국에 남기를 종용하며 "넌 엄마잖아"라며 미래 탓을 한다. 충격을 받은 미래는 회사에 상하이에 가겠다는 말과 함께 임신 사실을 알리지만, 회사 대표는 정규직 되자마자 출산 휴가를 쓴다며 "넌 나를 나쁜 사람으로 만드냐"며 역정을 낸다. 분노한 미래는 자신이 단지 임신했단 이유로 그 어느 곳에도 속할 수 없음을 알게 된다. 길거리에 앉아만 있어도, 혐오 발언을 듣는다. "나는 십개월 전과 달라진 게 없는데"라며 좌절한 미래는 결국 자신만의 새로운 미래를 개척하기 위해 나선다.
'십개월의 미래'엔 미래의 좌절감이 고스란히 담겼다. 단지 배가 불렀다는 이유만으로, 회사에 공을 세운 것도 사라지고, 혐오 섞인 시선을 받고, 점차 정체성이 사라져 가는 현실을 녹아냈다. 이는 결코 웃을 수 없는 이야기이지만 영화는 이를 무겁지 않게, 적절한 위트감에 대책 없이 당돌한 캐릭터를 어우러 완성해냈다.
영화에는 또 다른 '카오스적' 모습도 담겼다. 윤호는 채식주의자이지만, 갑작스럽게 다가온 임신, 출산으로 인해 아버지가 운영하는 돼지 농장에 간다. 그는 끝없는 자기혐오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미래의 친한 언니이자 임신부 강미(권아름 분)는 또 다른 자신의 탄생을 바랐지만, 출산 후 맞닥뜨린 현실에 자신을 잃어가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반면 미래를 돕는 절친 김김(유이든 분)은 친구를 향한 무조건적인 신뢰를 보여주며 연대의 힘을 보여준다. 미래가 혼란에 빠져 판단력이 흐려지더라도, 그를 믿고 지지하는 사람은 김김이기도 하다.
'시동'과 '괴물'로 눈도장을 찍은 최성은은 이 영화에서 주연을 맡아, 29세 최미래로 완벽하게 분했다. 외적으로 점차 달라지는 임신부의 모습을 표현한 것은 물론, 10개월의 시간 동안 혼란스러움이 가득한 상태, 동시에 캐릭터 특유의 당돌한 성격을 잘 표현해냈다. 그는 이 영화를 2018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재학 당시 찍었다.
영화는 미쟝센단편영화제 최우수상 출신 남궁선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러닝타임 9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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