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자 권리 이상을 부여하는 약정, 주주 평등원칙 위배"
[파이낸셜뉴스] 투자한 회사의 중요경영사항에 관해 사전동의권을 부여하는 신주인수계약 약정은 무효라는 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서울고법 민사16부(차문호 부장판사)는 A사 신주를 사들인 B사가 A사를 상대로 낸 상환금 청구 소송에서 원고패소 판결했다고 29일 밝혔다.
컴퓨터시스템 제조·판매회사인 A사는 2016년 자금 사정이 악화되자 투자금을 모으기 위해 같은 해 신주 20만주를 발행했다. B사는 해당 신주를 20억원에 인수하는 내용의 신주인수계약을 체결했다.
B사는 투자 자금 회수를 담보하기 위해 A사가 추가로 신주를 발행하는 경우 B사의 사전 서면 동의를 받도록 했다.
이후 A사는 2018년 B사 동의를 받지 않고 두 차례에 걸쳐 총 26만주의 신주를 추가 발행했다. 이에 B사는 조기상환금 20억과 위약금 20억원, 이에 대한 이자를 지급하라며 상환금 청구 소송을 냈다.
재판에서는 '투자자에게 투자대상회사의 중요 정책 결정에 대한 사전 동의권을 부여할 수 있는지'가 쟁점이 됐다.
보통 신주 발행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는 회사는 투자자를 끌어모으기 위해 투자자를 우대하는 약정을 하게 된다. △투자자에게 주주로서의 이익 외에 일정한 수익금 지급 보장 △임원 임명권 또는 추천권을 부여 △중요 정책결정에 대한 사전 동의권 부여 등이 대표적이다.
투자자에게 일정 수익금 지급을 보장하는 것은 지난해 대법원으로부터 주주평등의 원칙에 반해 무효라는 판단이 나왔지만, 이번 재판의 쟁점인 중요 정책결정 사전동의권에 대해서는 명시적인 판단이 나오지 않았다.
재판부는 B사에 중요 정책결정에 대해 사전동의권을 부여하는 것은 주주평등의 원칙에 반해 무효라고 판단했다. 이런 권리가 다른 주주들에게는 인정되지 않는 우월한 권리라는 취지다.
재판부는 "현행법상 회사 경영과 관련해 일부 주주에게만 특수 권한을 부여하는 내용의 종류주식은 허용되지 않는다"며 "회사와 신주인수인 사이의 별개 약정으로 신주인수인 이상의 권리를 부여하는 것은 허용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를 허용할 경우 신주발행 형식으로 실질적으로는 이른바 '황제주'와 같은 법이 허용치 않는 종류주식을 발행하는 것과 같은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며 "이는 재무적으로 열악해 신주발행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려는 회사의 기존 주주들에게 매우 불리하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이 판결이 대법원에서 확정될 경우 자금 조달을 위해 신주를 발행하는 회사의 경영권이 보호되고, 기존 주주와 사후 투자자 사이의 주주 지위 불평등이 해소될 것으로 보고 있다.
재판부는 "다만 신주 인수를 통해 투자하려는 회사 입장에서는 투자 유인이 줄어 투자활성화에 역행할 우려도 있다"며 "향후 시장상황을 지켜보며 '이사 선·해임권부주식 등과 같이 회사 경영과 관련해 일부 주주에게만 특수 권한을 부여하는 내용의 종류주식 발행을 도입하는 방안에 대한 논의가 촉발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clean@fnnews.com 이정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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