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전국

"전두환 죽기 전 사죄하라"…노태우 별세에 진상규명 목소리 높아져(종합)

뉴스1

입력 2021.10.30 05:17

수정 2021.10.30 05:17

5.18 헬기사격을 증언한 고(故) 조비오 신부에 대한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을 받는 전두환이 광주지방법원에서 열리는 항소심에 출석하기 위해 지난 8월9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자택을 나서고 있다. 2021.8.9/뉴스1 © News1 신웅수 기자
5.18 헬기사격을 증언한 고(故) 조비오 신부에 대한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을 받는 전두환이 광주지방법원에서 열리는 항소심에 출석하기 위해 지난 8월9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자택을 나서고 있다. 2021.8.9/뉴스1 © News1 신웅수 기자


전두환 전 대통령의 부인 이순자 여사가 지난 28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故) 노태우 전 대통령 빈소를 찾아 조문한 후 유족과 대화하고 있다. 2021.10.28/뉴스1 © News1 사진공동취재단
전두환 전 대통령의 부인 이순자 여사가 지난 28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故) 노태우 전 대통령 빈소를 찾아 조문한 후 유족과 대화하고 있다. 2021.10.28/뉴스1 © News1 사진공동취재단

(광주=뉴스1) 이수민 기자 = 노태우 전 대통령 별세를 계기로 전두환 전 대통령의 5월 광주 학살 사과와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1980년 5·18민중항쟁 유혈진압과 학살 책임의 당사자로 그날의 진실을 밝힐 인물로 당시 최고 책임자인 전두환씨만 남았기 때문이다.

30일 <뉴스1> 취재를 종합하면 오월단체와 시민사회단체, 정치권 등 각계각층에서 전씨의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진상규명 등 사과와 증언을 촉구하고 있다.

조진태 5·18기념재단 상임이사는 앞선 통화에서 "진상규명의 마지막 과정이 진행 중인 상태에서 가해 당사자인 노태우씨가 자백과 증언, 기록물 제공없이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세상을 뜬 것이 안타깝다"고 밝혔다.

이어 "5·18의 역사는 노태우 한 사람이 세상을 뜬다고 해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진상규명 역시 노태우 하나가 안고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를 계기로 (전씨 등 책임자에 대한 수사와 규명을) 더 지속적으로 철저하게 요구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오월어머니집 이명자 관장은 "노씨 죽음 이후 어머니들은 한숨만 쉬고 있다. 이제 남은 것은 전두환 뿐이질 않느냐. 가해자가 아닌 어머니들이 진실을 못 듣고 돌아가실까봐 애달복달이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노씨 국가장은 정부 결정이니 감수하겠다. 그러나 만일 나중에 전두환도 국가장을 한다고 하면 그것은 절대 안될 일이다. 그때는 우리가 쫓아가서라도 국가장을 못하게 강경하게 막을 것이다"라고 쐐기를 박았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전남도청 상황실장을 지냈던 박남선씨는 개인적으로 노태우 전 대통령 빈소를 찾아 용서와 화해 메시지를 전했지만 전씨에 대해서는 상반된 평가를 냈다. 박씨는 "이제라도 늦지 않았으니 광주학살에 대한 사죄표명을 하고 돌아가신 유족들과 그 피해자들에게 용서를 구하라"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과 전 전 대통령 등 1980년 당시 신군부 주요인사 5인의 대면조사를 예정하고 있던 5·18진상규명조사위원회도 진상규명에 더욱 속도를 내겠다는 입장이다.

앞서 조사위는 지난달 전두환(당시 국군 보안사령관 겸 합동수사본부장 겸 중앙정보부장)과 노태우(당시 수도경비사령관), 이희성(당시 계엄사령관), 황영시(당시 육군참모차장), 정호용(당시 특전사령관) 등 5인을 1차 조사 대상자로 선정해 서한을 발송했다.

박진언 5·18조사위 대외협력과장은 "전씨는 1차 조사 대상자로 선정된 뒤 지병으로 의사소통이 힘들다며 변호인을 선임해 조사를 대체하겠다는 의견을 통보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다른 대상자들 모두)연령과 건강상태를 고려해 의료진을 동행한 자택 방문조사 일정을 조율 중이다. 향후 5·18 진상규명 관련 핵심인물 35명과 관련자에 대해 법률이 부여한 권한과 책임에 따라 지속적이고 엄정하게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광주지역 시민사회단체도 하나둘 성명을 내고 진상규명을 촉구하고 있다.

광주진보연대는 "지난 41년간 광주와 국민 앞에 사죄와 참회의 기회를 저버리고 영원히 역사의 죄인으로 남을 노씨를 거울삼아 전두환씨 등 나머지 신군부 세력들은 더 늦기 전에 진정성 있는 사과와 책임지는 자세를 보여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광주전남지부는 특히 국가장에 대한 법 개정을 강조했다. 민변은 "정부가 나서서 노태우씨를 예우하는 것은 그 자체로 국가가 자기를 부정하는 것인 동시에 이미 역사적·사법적 평가가 마쳐진 5·18민주화운동 관련 범죄자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우리 사회가 적법하고 올바른 기준을 세우지 않은 채 정치적 필요를 좇아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리는 결정으로 나아간다면, 우리는 전두환씨에 대해서도 똑같은 논의를 해야 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5·18민주화운동의 직접 당사자인 광주시와 전남도는 국기 조기 게양과 분향소 설치를 하지 않는다는 결정으로 시도민의 목소리에 힘을 실었다.

이용섭 광주시장과 김용집 광주시의회 의장은 이같은 결정을 발표하며 "항상 시대를 선도해 온 의향 광주만이라도 역사를 올바르게 세우고 지키는 길을 갈 것"이라며 "전두환 등 5·18 책임자들의 진정어린 반성과 사죄를 이끌어내고 그날의 진실을 명명백백 밝혀 우리에게 주어진 시대적 책무를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치권도 뜨겁다. 더불어민주당 대선주자인 이재명 후보는 앞서서도 전 전 대통령에 대해 수차례 비판하며 날을 세웠다. 그는 지난 19일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의 전 전 대통령 옹호 발언을 두고도 적대감을 드러낸 바 있다.

앞서 이 후보는 지난 22일 광주 국립 5·18 민주묘지를 찾아 땅에 박힌 전두환 비석을 밟으며 "예우가 박탈됐으니 (호칭이) 전두환씨가 맞겠다. 전씨는 내란범죄의 수괴고 집단학살범이다. 국민을 지키라는 총칼로 주권자인 국민을 집단살상한, 어떤 경우에도 용서할 수 없는 학살 반란범"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국가의 폭력범죄에 대해서는 공소시효와 소멸시효를 배제하고 살아있는 한 반드시 처벌하고 영원히 배상하고 진상 규명하고 기록해야 한다"며 "전두환 그분이 오래 사셔서 법률을 바꿔서라도 처벌받게 되길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 역시 "노 전 대통령에 대한 문제보다도 전 전 대통령에 대한 문제가 더 크다"며 "민주당 대표로서 내란목적살인죄로 유죄확정 판결을 받은 전두환씨가 지금도 반성하지 않고 광주의 명예를 훼손하면서 재판을 받는데 이런 사람이 국가장을 치를 수 없도록 법 개정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 사망할 경우 국가장을 치르지 못하게 하는 방안에 대해 "필요하다면 법 개정을 할 것"이라며 "법 개정이 아니더라도 전 전 대통령에 대한 국가장은 있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전 전 대통령은) 추징금도 납부하지 않았고 아직도 광주 민주화운동에 대해 정신을 훼손하는 입장을 계속 가지고 있기 때문에 국가장의 대상이 되기 어렵다고 본다"고 했다.

앞서 노태우와 전두환 전 대통령은 1995년 5·18특별법이 제정되면서 신군부 핵심 인사 18명 등과 함께 구속돼 재판을 받았다.

검찰과 법원은 12·12, 5·17, 5·18을 군사반란과 내란행위로 판단했고 전두환 무기징역, 노태우 징역 17년형 등 핵심 관련자들에게 실형을 선고했다.

1997년 출소 후에도 반성은 없었다. 전 전 대통령은 2017년 4월 펴낸 회고록에서 5·18 민주화운동 당시 헬기 사격을 목격했다고 증언한 조비오 신부를 '가면을 쓴 사탄',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표현해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1심에서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 판결을 받았지만 현재까지도 헬기사격은 없었다면서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특히 건강을 이유로 재판에 불출석하면서 골프를 치는 모습이 포착돼 국민적 공분을 샀다.

당시 전 전 대통령은 5·18에 대한 질문에 "광주하고 나하고 무슨 상관이 있어? 나는 학살에 대해 모른다", "나는 광주시민 학살하고 관계 없다", "발포명령을 내릴 위치에 있지도 않은데 군에서 명령권 없는 사람이 명령을 하느냐"는 논리를 펴기도 했다.

지난 2019년 12월12일에는 서울 강남의 한 고급식당에서 5·18 광주학살의 책임이 있는 정호용, 최세창씨 등과 부부동반으로 호화점심을 즐기는 모습도 보였다.

전씨의 부인인 이순자씨의 경우 전씨의 1심 재판을 앞두고 재판부에 대한 불신을 제기, 5·18과 6·10항쟁 등을 깎아내리는 주장을 공개적으로 펴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씨는 전씨가 치매를 앓고 있다고 주장하며 "재판장도 어떤 압력을 받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고, 전 전 대통령에 대해선 '민주화의 아버지'로 치켜세웠다.

전씨는 지난 8월9일 열린 항소심 재판에서 호흡곤란을 호소하며 재판 시작 20분 만에 퇴정했다.
이후 혈액암의 일종인 '다발성 골수종' 진단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