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국제 유가가 올해 계속 올라가는 가운데 석유에 손도 안대는 주식 및 채권 투자자들이 석유 가격을 끌어 올렸다는 주장이 나왔다. 금융 투자자들이 물가 상승(인플레이션) 위험을 피하기 위해 석유 및 관련주에 투자했더니 오히려 유가 상승을 부추겨 물가를 올리는 악순환을 낳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달 31일(현지시간) 업계 관계자들을 인용해 각종 펀드 등 금융계 돈이 유가 상승에 일조했다고 분석했다. 다국적 시장정보업체 EPFR에 따르면 국제적으로 에너지 펀드에 들어간 순 유입액은 지난달 4주차 기준으로 7억5300만달러(약 8859억원)를 기록해 5개월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에너지 펀드에 들어간 돈은 4주 연속으로 나간 돈보다 많았다.
펀드 매니저 등 업계 투자자들은 인플레이션 위험을 피하기 위해 석유를 사들인다고 밝혔다. 일반적으로 물가가 급격하게 올라 돈의 가치가 떨어지면 채권 가치도 함께 내려가며 주식보다는 부동산 같은 현물 자산으로 돈이 몰린다. 특히 석유같이 달러로 거래되는 원자재들은 물가가 오르면 거래 가격도 함께 뛴다. 여러 자산을 가진 같이 운용하는 투자자들은 석유를 사 놓으면 물가 상승으로 증시 등에서 발생하는 손해를 메울 수 있다.
앞서 미 정부는 지난달 발표에서 9월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이 전년 동월 대비 5.4% 올라 5개월 연속 5% 이상 올랐다고 밝혔다. 유럽 최대 경제대국인 독일의 10월 물가도 1년 전보다 4.5% 올라 1993년 이후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석유 가격은 금융 투자자들의 돈에 힘입어 2014년 이후 최고가를 기록했다.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은 지난달 29일 배럴당 83.57달러로 거래를 마쳐 주중 최고가보다 가격이 내려갔지만 주간 기준 9주 연속 상승세를 나타냈다. WSJ는 투자자들이 올 여름만 해도 WTI 목표가를 배럴당 100달러로 여겼으나 지난달에는 200달러로 높였다고 설명했다.
이를 두고 스위스 UBS자산운용의 에반 브라운 자산 할당 대표는 “사람들이 (인플레이션 때문에) 석유를 사는데 이런 상황은 인플레이션이 더 심해진다는 기대로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런 현상이 계속되면 악순환으로 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석유같은 에너지 가격은 물가에 직결되어 있으며 실제로 지난달 미국 CPI 상승률은 에너지 영향을 빼면 4%에 불과했다.
시장에서는 코로나19 회복과 공급망 등을 지적하며 유가 위기가 당분간 계속된다는 분위기다. 국제 에너지 컨설팅업체 JBC에너지의 리처드 고리 아시아 부문 이사는 지난달 미 경제매체 CNBC와 인터뷰에서 에너지 위기가 “앞으로 3~4년 동안 재발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편 미국은 석유 위기가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담합 때문이라고 비난했다. 제니퍼 그랜홈 미 에너지부 장관은 지난달 31일 NBC 방송에 출연해 “석유시장이 카르텔에 의해 통제되고 있다. 그 카르텔은 OPEC이다”고 주장했다. 그는 “OPEC은 석유 공급의 50% 이상과 석유 매장량 90% 이상을 통제하고 있다”며 미국이 OPEC 등의 석유 증산을 이끌어 내기 위해 주요 에너지 소비국과 대화중이라고 강조했다.
pjw@fnnews.com 박종원 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