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 새 비슷한 통신 사고가 반복되고 있다. KT가 뭇매를 맞고 있지만 다른 통신사들도 자유롭지 않다. 일회성 실수가 아니라 근본적으로 문제가 생긴 게다.
곰곰이 따져보면 통신 서비스에 전국민의 일상이 연결된 엄중한 책임이 있다는 것을 정작 통신회사들이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통신회사들의 유행어가 된 '탈(脫)통신'을 '폐(廢)통신'으로 오해하고 있지는 않은가도 싶다. 인공지능(AI)이니 메타버스니 하는 폼나는 신사업에 돈과 인재를 몰아주면서 통신망 관리와 유지보수 비용은 잔뜩 줄여놓은 것 아닌가. 통신회사조차 통신서비스 부서는 한직으로 내몰아 인재들이 남아나지 않도록 만들고 있지는 않은가 점검해 볼 일이다.
문재인정부의 통신정책은 뭐였더라? 떠오르는 정책도 없다. 국민 생활을 좌우하는 통신서비스 주무 부처조차 폼나는 신사업에만 눈을 돌리고 있지 않은가. 통신회사들 줄세워 이동통신 속도 비교하는 것 외에 전국 기간망 관리상황은 점검이나 하는가. 통신회사 이용자 약관이 언제적 약관인지 점검은 하는가. KT를 향해 '껌값 보상' 불만을 터뜨리는 소상공인에 대해 현실적 약관 개정을 점검하지 않은 정부의 책임은 없는가. 바야흐로 대선 철이다. 통신요금 인하 공약이 터져나오겠다 싶다. 역대 3번의 대선을 거치면서 대통령 후보의 유일한 통신정책은 요금 인하가 전부였으니 올해라고 다를까 싶다.
따져보니 대통령에서 주무 부처, 통신회사로 이어지는 책임 라인에서 통신망을 튼튼히 유지하고 관리하는 게 중요하다고 목소리 낼 만한 구멍조차 없었던 게 반복되는 통신망 사고의 근본원인은 아닐까 한다. 한때 전국민이 초고속인터넷을 쓰고, 유선보다 빠른 무선인터넷을 쓸 수 있다며 'IT코리아'를 대한민국의 대표 브랜드로 세계에 자랑했던 시절이 있었다. 세계 최고의 통신인프라는 디지털 혁신의 기반이 됐고 K콘텐츠 AI, 메타버스 같은 열매를 맺었다. 그런데 89분의 통신망 사고는 디지털 혁신의 성과 뒤에 가려졌던 2021년 'IT코리아'의 민낯을 드러냈다. 지금 근본원인을 손보지 못하면 다음에는 89분 사고로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위기감이 든다.
cafe9@fnnews.com 이구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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