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건·사고

조국·추미애·송영길 고발 출발점…모두 이 사람

뉴스1

입력 2021.11.08 06:18

수정 2021.11.08 10:04

이종배 법치주의바로세우기시민행동 대표가 27일 오후 서울 종로구의 한 사무실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1.10.27/뉴스1 © News1 이재명 기자
이종배 법치주의바로세우기시민행동 대표가 27일 오후 서울 종로구의 한 사무실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1.10.27/뉴스1 © News1 이재명 기자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딸 조민 씨가 의사 국가고시에 최종 합격하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이종배 법치주의 바로 세우기 행동연대 대표가 18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앞에서 차정인 부산대 총장 고발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2021.1.18/뉴스1 © News1 박지혜 기자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딸 조민 씨가 의사 국가고시에 최종 합격하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이종배 법치주의 바로 세우기 행동연대 대표가 18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앞에서 차정인 부산대 총장 고발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2021.1.18/뉴스1 © News1 박지혜 기자


4일 오후 서울 관악구 대학동 고시촌 인근에 학원 수업 안내문이 붙어 있다. 2015.12.4/뉴스1 © News1 양동욱 기자
4일 오후 서울 관악구 대학동 고시촌 인근에 학원 수업 안내문이 붙어 있다.
2015.12.4/뉴스1 © News1 양동욱 기자

(서울=뉴스1) 이승환 기자,강수련 기자 = 이종배 대표(43)와 처음 만난 것은 4년 전이었다. 그는 사법시험 폐지 반대 단체를 이끌고 있었다. 그 자신이 고시생이었다. 명함을 건네던 이 대표의 첫인상을 기억한다. 단체를 계속 이끌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4년 후 다시 만난 이 대표는 기자의 그런 편견을 깨뜨렸다. 지난달 27일 오후 서울 종로구 공평동의 한 공유오피스에서였다. 그는 말끔한 정장 차림으로 나타났다. 회의실 안이 울릴 정도의 짱짱한 목소리였다. 이 대표는 카리스마(권위) 있는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상황 됐다면 곽상도도 고발했을 것"

그는 권력형 비리 고발 전문단체 '법치주의 바로 세우기 행동연대(법세련)' 대표다. 경찰과 검찰은 시민단체의 고발장을 접수하면 수사에 착수한다. 법세련은 비리 의혹 당사자를 수사 받게 하는 역할을 하는 셈이다.

법세련의 공익성을 완전히 외면하기 어렵다. 다만 여권 인사를 집중적으로 고발해 야권 성향으로 분류되며 '프로고발러'로도 불린다.

- 4년 전과 분위기가 다르다. 단체가 많이 커진 것 같다.

"법세련은 권력형 비리를 고발하는 단체다. 나는 5년간 사시 공부를 해서 직접 고발장을 작성한다. 시민들은 권력층 부패에 분노하지만 고발장을 쓰기 어렵다. 법세련이 대신 해주니 속 시원함을 느끼고 많이 지지해주는 것 같다."

- 고발 기준은 무엇인가.

"기본적으로 정치인·고위 공직자·정부 인사 등 권력층을 고발한다. 그리고 '공익성'을 고려한다. 불법행위 성립 여부도 검토한다. 권력·공익성·불법이 고발기준인 셈이다. 자칫 잘못하면 법세련이 사주받고 고발한다는 색안경을 주변에서 낄 수 있다. 늘 신중하게 고발을 결정한다.

법세련이 고발한 인사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윤석열 엑스파일' 유포자 등이다. 특히 지난 2019년 '조국 사태' 당시 법세련 등의 고발장을 근거로 검찰은 대대적 수사에 나섰다.

조국 사태의 핵심은 조 전 장관의 자녀가 '부모 찬스'로 대학에 부정 입학했다는 의혹이다. 입시라는 '국민 역린'을 건드려 정부 비판 여론을 확산시킨 계기가 됐다. 다만 법세련의 조 전 장관 관련 고발 건은 무혐의로 결론난 사례들도 있다.

- 여권 인사는 많이 고발했다. 그러나 야권 인사 고발에는 소극적이지 않나.

"지난 4월 당직자 폭행 의혹을 받던 송언석 국민의힘 의원을 고발했다. 1970년대도 아닌데 그는 당직자를 발로 걷어찼다는 의혹을 받았다. 당직자는 정당에서 약자다. 그 점에서 지금도 분노한다. 송 의원이 복당한 것에도 비판적이다.

- 그 외 야권 인사를 고발한 적 있는가.

"상황이 허락됐다면 곽상도 무소속 의원을 고발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들 퇴직금 50억 논란' 당시 나는 개인적인 일 때문에 고향인 대구에 내려가 있었다. 단체 활동을 할 여력이 안 됐다."

이 대표는 주로 언론이 제기한 의혹을 고발장에 명시해 여권 인사를 고발했다. 여권에는 엄격한 기준을, 야권에는 헐거운 기준을 적용하는 건 아니냐고 재차 묻자 그는 웃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이어 "감수해야 할 부분"이라며 "집권 세력과 야당의 불법을 동등한 기준으로 볼 수 없다"고 짚었다.

"청와대나 정부, 민주당 등 국가 운영 주체의 불법은 훨씬 큰 피해를 준다. 이런 측면에서 여권의 불법 의혹을 더 관심 있게 본다. 물론 시민단체의 진정성은 진영 논리에 갇히지 않는 데서 나온다. 어느 진영이든 똑같은 잣대를 대야 한다는 지적에 동의한다. 명백하게 잘못했다면 야권 인사를 고발할 것이다."

◇"밤에 대리운전"

- 후원금을 받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생계 목적으로 활동한다면 돈은 얼마든 벌 수 있다. 우리가 한 번 고발하면 후원하겠다는 문의가 이어진다. 정부 지원금과 후원금으로 수익 내는 단체도 적잖다. 그런데 저는 '반대편'을 고발하는 사람이다. 법세련 고발 기사에는 '법세련 뒷조사하라' '자금줄 조사하라'는 댓글이 어김없이 달린다. 늘 조심하자고 다짐한다."

- 생계는 어떻게 해결하나.

"밤에 대리 운전한다. 앞으로 유튜브를 할 생각이다."

- 사는 곳은 어디인가.

"최근까지 월세 27만원을 내고 신림동 고시촌에서 살았다. 현재는 개인 사정으로 고향에 잠시 내려가 있다."

- 법세련은 정부에 정식으로 등록된 단체가 아닌데.

"일부러 등록하지 않았다. 내 꿈은 여전히 법조인이다. 사법시험이 부활하면 다시 공부할 생각이다. 이 때문에 정식 등록하고 체계 갖출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이다. 다만 변호사나 다른 시민단체 관계자 등 함께 하자는 분이 많다. 200~300명 된다."

- 법조인이 원래 꿈이었나.

"나는 97학번으로 공대생이었다. 대학 시절 시위·집회 등 학생운동과 거리를 두고 공부만 했다. 졸업 후 직장을 다녔고 대학원 진학도 준비했다. 그러다가 법조인의 가치와 사회적 역할에 관심이 생겼는데 전문직이 적성에 맞는다고 판단했다. 변호사가 되기 위해 30대 초반부터 사법시험을 공부했다.

- 변호사들을 보면 무슨 생각이 드는가.

"솔직히 부럽다. 사시 합격했으면 나도 변호사로 일했을 텐데… 그 힘든 수험 생활을 뚫고 합격했구나 싶다."

◇'법대로 하자'는 말에 대하여

정치권은 '피고소인·피고발인 선별 입건'을 골자로 한 법안을 발의한 상태다. 고소·고발된 사람이라고 무조건 입건하지 말고 사건 성립 가능성 등을 고려해 선별해 입건하자는 것이다. 고소·고발 공화국 오명을 벗자는 게 취지다.

- 선별 입건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일단 피의자로 입건되면 경찰은 꼭 수사해야 한다. 수사를 안 하면 그 근거가 남기 때문이다. 선별 입건이 엄격하게 지켜지면 좋을 텐데 경찰이 불순한 목적으로 입건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이럴 경우 법 취지가 오·남용된다. '이용구 택시기사 폭행사건'도 경찰이 입건하지 않고 묻으려 하지 않았나. 면밀하게 검토해 법을 시행해야 한다."

- 혐의 없는 사람을 고의로 고소·고발하고 중대한 과실이 있는 사람에게 수사상 발생한 비용을 부과하는 방안도 학계에서 검토된다.

"괜찮은 것 같다. 명백한 허위사실로 고소·고발했다면 수사력을 낭비시킨 것이다. 문제는 고발 사건이 충분히 무혐의로 결론날 수 있다는 점이다. 모든 무혐의 사건의 고소·고발인에게 비용을 청구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제한적으로 비용을 부과하는 것은 생각해볼 만하다."

- 한국에서 시비가 붙으면 '법대로 하자'는 말이 나온다. 고소·고발 공화국 우려가 높은데.

"사인 간 법의 개입은 최후의 수단이어야 한다. 수사기관도 당사자를 불러 합의·화해시키는 방향으로 유도해야 한다. 과거에는 법적 분쟁이 있어도 화해·소통을 통해 해결하는 문화가 있었다. 문제는 권력층 불법도 그렇게 넘어갔다는 것이다. '관행'이란 이유로 말이다. 권력층 불법은 엄격하게 '법대로' 해야 한다."

4년 전 이 대표 단체의 회원들은 노량진에서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렀다. 사법고시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행사였다. 을씨년스러운 풍경이 잊히지 않는다. 누구도 그들에게 눈길을 주지 않았다. 당시 현장을 취재하는 기자는 필자가 유일했다.

이 대표는 누구보다 잘 알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는 강하게 발언할수록 귀를 기울인다는 것을. 그중 가장 강력한 발언은 '법대로 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실천했을 때 철옹성 같은 권력에 균열이 생기기도 한다.

그렇다면 남은 질문은 하나다.
법의 정신은 지금 올바르게 구현되고 있는가. 이 질문은 그가 만일 법조인의 꿈을 이룬다면 던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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