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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땐 방구석 어둠이 편했지만 동굴 밖, 내 세상 찾고싶어요 [숨어버린 사람들 (2) 3인의 은둔생활 극복기]

전학간 학교서 점심도 못먹을만큼 고립
일자리도 구하고 여자친구도 사귀고파
도피성 유학 실패 후 군대도 부적응
고용센터 방문 후 조금씩 삶의 변화
입시 스트레스와 왕따 시달려 우울증
검정고시 준비… 엄마 칭찬에 더 열공
한땐 방구석 어둠이 편했지만 동굴 밖, 내 세상 찾고싶어요 [숨어버린 사람들 (2) 3인의 은둔생활 극복기]
과거 은둔생활을 하다 현재는 은둔형 외톨이 지원 시설인 리커버리센터에서 생활하고 있는 송경준씨(오른쪽)가 파이낸셜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서동일 기자

은둔형 외톨이들은 '빛'보다 '어둠'이 더 편하다. 이들은 '동굴' 속으로 들어가 타인과 접촉을 끊는다. 동굴로 찾아오는 사람에게 이들은 돌을 던지고, 소리를 지르기도 한다. 바로 그들 때문에 동굴로 들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이 동굴 밖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다시 그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파이낸셜뉴스는 이들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수개월 설득 끝에 서로 다른 장소, 공간에서 3명을 만날 수 있었다. 지난 10월 20일 경복궁역 인근 지하 갤러리에서 은둔형 외톨이들의 마음과 생각을 담은 미술전시회가 열렸다. 은둔형 외톨이들의 자립을 지원하는 리커버리센터, 서울시 청년재단 주최로 열린 전시회에서 이들은 자신이 그린 작품을 설명했다 . 파이낸셜뉴스는 이날 송경준씨를 만났다. 경준씨에게 동굴에 들어간 이유, 다시 나오기로 마음 먹은 계기, 앞으로의 꿈 등을 들었다. 총 3명의 은둔형 외톨이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지금 시작한다.

■32살 남자 김희찬씨(가명)의 이야기

올해 2월부터 지자체에서 사회복지 분야 전문 인력으로 일하고 있다.

중학교때는 성적이 전교 10~20등 할 정도로 좋았다. 고등학교 때 처음 50등을 했는데 그걸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2학년 때 반쯤 도피성으로 미국 유학을 갔다.

유학을 간 기간 동안 부모님이 이혼을 했다. 아버지가 작은 공장을 했는데 공장에서 일하던 여자분과 가까운 사이였던 것 같다.

집에서는 반대했지만 향수병도 생기고 정서적으로 버티지 못해 고3 중간에 한국에 왔다. 그때부터 집에서 게임을 하고, 배달음식을 시켜먹고 은둔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다 22살에 군대에 갔는데 해외 생활을 한 뒤라 군대가 맞지 않았다. 부적응하다 너무 힘들어서 목을 맸는데 본능적으로 발버둥 치다 깨어났다.

이후 부적응 병사를 위한 '그린캠프'에 두달 갔다 자대에 복귀해서 별다른 일을 하지 않고 전역했다. 전역을 하고 1~2년 정도 집에만 있다가 취업을 준비하느라 또 2년을 은둔했다.

'롤'이란 게임을 했는데 우연히 커뮤니티에서 '취업성공패키지'가 있다는 걸 봤다. 도움이 될 것 같아 검색을 해보고 그때부터 일주일에 한번씩 고용센터를 방문했다. 그러면서 조금씩 멈춰 있던 바퀴가 굴러가기 시작했다.

■26살 남자 송경준씨의 이야기

어렸을 때는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았다. 전북 김제에서 초등학교를 다닐 때는 말도 많고 친구들과 장난도 심한 아이였다. 하지만 김제를 떠나 전주에 있는 중학교로 가면서 모든 게 달라졌다. 몸이 약한 경준씨는 낯선 환경에서 새 친구를 사귀는 게 어려웠다. 반에서 고립되면서 점심도 제대로 못 먹었다. 점심시간에 혼자 도서관에 있거나 계단 밑에 숨어 있기도 했다.

1년을 버티고 2학년 담임선생님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선생님은 나를 이해하거나 공감해하는 대신 답답해했다. 이때부터 학교를 나가지 않게 됐다. 엄마가 왜 학교에 가지 않느냐고 물어서 '왕따를 당한다'고 말했다. 집에 있는 동안 엄마와도 사이가 나빠졌다. 결국 고등학교를 자퇴했다. 대학 입시를 핑계로 집에 있으면서 소설을 읽곤했다. 대인기피증이 생겨 정신과 판정을 받고 공익근무를 했다. 중학교 2학년때부터 2년 전까지 은둔생활을 했다.

집에 있다가 인터넷에서 히키코모리를 검색해보고 은둔형 외톨이 지원단체인 K2를 알게됐다. 은둔형 외톨이 지원 프로그램인 '청년 체인지업 프로젝트'를 하다 리커버리센터로 연결됐다. 전주에는 비슷한 센터나 단체가 없어 작년 6월 리커버리센터에 들어왔다.

공동생활을 하는 것이 무서워서 오자마자 공황장애가 왔고 정신과 약을 처방받았다. 센터에서는 나와 같은 크루들이 기수마다 10여명 정도 함께 생활한다. 오전에는 요리 수업을 듣고 오후 2시간 정도는 미술, 음악, 영상 촬영 같은 수업을 듣는다. 현재는 리커버리센터에서 연결해준 회사에 출근해 약 3시간 정도 커피를 내리는 일을 하고 있다. 소설 데미안에 '새는 알에서 나오려 투쟁한다'는 구절이 있다. 이제 아르바이트도 구하고 여자친구도 만들고 조금씩 알을 깨고 나오고 싶다.

■20살 여자 박서윤씨(가명)의 이야기

대학 가기 유리하다는 여고에 진학했다. 학교가 입시 위주라 경쟁이 심했다. 한 학기에 문제집을 3권씩 풀었고, PPT 발표를 두번 했다. 한달에 한번 모의고사를 보면 방송으로 결과를 알려줬다. 선생님이 교무실에 못들어가면 학생들은 죄인이 됐다. 2학년 때부터 몇몇 친구들이 나와 내 친구들을 은근히 따돌리고, 조별 과제를 할 때 팀에서 빼버리기도 했다. 폭력을 쓰진 않았지만 '어디가 이상하다' '저따위로 살면 살기 힘들다' 등 수군거렸다. 괴롭힘을 당한 친구 A는 가정폭력을 당했다. 한번은 A가 손에 유리가 박혔는데 병원에 가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나를 1시간이나 기다렸다. 맛있는 걸 사주면서 3시간 동안 물어보니까 엄마와 아빠가 때리고 하인처럼 부리고 있다고 고백했다. 한번은 목이 졸렸는지 목에 거즈를 붙이고 온 적도 있었다.

A는 지금은 가정폭력으로 집을 나와서 다른 친구 B집에 위탁을 갔다. 친구 B는 공황장애가 있어서 학교에서 몇 번씩 쓰러졌는데 학교에 대한 애착이 커서 '죽어도 학교에서 죽는다'며 학교를 다녔다.

고등학교 때 자퇴를 하고 서너달 집에만 있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우울증 검사를 했는데 위험이 나왔다. 병원에서 약을 받고 상담을 하는데 시간 단위로 돈이 더 들고, 보험도 안돼서 부모님한테 늘 죄송했다. 자퇴를 하고 처음 1388상담센터에 갔고, 병원에도 다녔다.
그리고 무료 대안학교인 해밀학교에도 다녔다. 자퇴하고 6개월 뒤부터 검정고시를 볼 수 있는데 입시 위주 학교에 다니다 보니 문제가 쉬웠다. 그때 엄마에게 성적으로 처음 칭찬을 받았는데 너무 좋았다.

hwlee@fnnews.com 이환주 이진혁 김도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