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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인 모르는 증상에 병원만 전전… 30년만에 알게 된 희귀병 [Weekend 헬스]

홍석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1.11.12 04:00

수정 2021.11.12 04:00

희귀질환 환자 중 6%가 증상 느끼고 최종진단까지 10년
이미 치료제 개발된 희귀질환
조기 진단할수록 치료 효과 커
신생아 선별검사로 확인 가능
원인 모르는 증상에 병원만 전전… 30년만에 알게 된 희귀병 [Weekend 헬스]
'진단 방랑'으로 치료시기 놓치는 희귀질환자들 #김씨는 유전성 희귀질환인 폼페병 환자다. 어린 시절부터 또래 아이들보다 휜다리가 심했고, 매일같이 넘어지기를 반복했다. 당시 병원에서는 성장 중에는 자주 있는 일이고,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나아진다고 했다. 청소년기에는 점점 걸음걸이가 이상해지면서 꼭 펭귄 모양처럼 걷게 됐다. 수많은 병원을 다녀보았지만 해답은 찾을 수가 없었다. 근육 기능과 체력이 약화되면서 일상생활도 힘들어졌다.
그러던 중 찾은 한 대학병원에서 원인을 모르는 희귀한 근육질환이라고 진단을 받았다. 정확한 원인을 몰랐기에 증상은 계속 악화됐고, 나중에는 호흡 기능 문제로 잠잘 때 인공호흡기까지 쓰게 됐다. 몇 년이 더 흐르고 난 뒤, 김씨는 지인을 통해 우연히 '폼페병'이라는 희귀질환을 알게 됐고, 희귀질환 전문 병원에서 폼페병을 진단받았다. 김씨는 폼페병을 진단받기까지 30여년이 걸렸다.

'진단 방랑'이라는 말이 있다. 어떤 병인지 알 수가 없어 정확한 병명을 진단받기까지 병원을 전전하며 상당한 시간을 허비함을 의미하는 말이다. 2018년 질병관리본부가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희귀질환 환자의 6.1%가 실제 증상 자각 후 최종 진단까지 10년이상 걸린 것으로 나타났으며, 16.4%는 4개 이상의 병원을 거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씨의 사례에서 언급된 폼페병은 리소좀 축적 질환 중 하나다. 리소좀 축적질환은 대표적인 유전성 희귀질환으로 선천적으로 우리 몸의 불필요한 물질들은 제거하는 '리소좀'에 이상이 있어 분해돼야 할 물질들이 세포 내 축적돼 다양한 문제를 일으키는 질환이다. 리소좀 내에는 여러가지 효소들이 존재하는데, 부족하거나 기능을 하지 못하는 효소에 따라 따라 폼페병, 뮤코다당증, 고셔병, 파브리병 등 다양한 종류로 구분된다.

국내 리소좀 축적 질환 환자는 400여명 정도로, 이 중 뮤코다당증, 파브리병은 각각 150여명, 고셔병, 폼페병이 각각 40여명 정도이다. 환자 수가 워낙 적고, 낮은 질환인지도로 인해 진단이 쉽지 않다. 또한 여러 종류의 경중증 증상이 동시에 나타나기 때문에 다른 질환으로 오진되는 사례도 빈번하다.

■진행성 질환으로 조기 진단·치료 중요


리소좀 축적 질환은 출생 직후 또는 영유아기 때부터 증상이 시작되나, 드물게는 성인이 돼야 발현되는 경우도 있다. 근육 약화 증상 및 근육 효소 수치나 간 수치 등이 높아지는 증상(폼페병), 성장 발달이 더디어지고, 관절이 굳으면서 구부러지는 관절구축 증상(뮤코다당증), 손과 발이 타는 듯한 통증, 시력과 상관없이 나타나는 각막혼탁(파브리병), 간과 비장이 커지고 안구 운동 이상 및 팔다리의 뼈 통증 증상(고셔병) 등이 나타난다.

공통적으로 리소좀 축적 질환은 시간이 지날수록 병세가 악화되는 진행성 질환이고, 치료하지 않는 경우에는 비가역적인 손상, 조기사망 등 심각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따라서 조기 진단을 통한 치료가 매우 중요하다.

과거에는 진단을 받더라도 증상을 완화하기 위한 일시적인 대증요법만 가능했지만, 최근 대부분의 리소좀 축적 질환에서 환자에게 부족한 효소를 대체해주는 효소대체요법(ERT) 치료제가 개발돼 지속적인 치료와 관리를 받으면 병의 진행을 늦추고, 일상생활도 가능하다.

이정호 순천향대학교 부속 서울병원 교수(소아청소년과)는 "리소좀 축적 질환은 사회적인 인지도가 부족해 환자들이 수년 이상 진단 방랑을 겪고 나서야 정확한 진단을 받게 되는 안타까운 일들을 겪는다"며, "치료를 일찍 시작한 환자와 그렇지 않은 환자의 성과는 분명한 차이를 보인다. 증상이 나타나기 이전에 진단을 하여 치료를 시작하는 것이 환자의 삶의 질에 있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조기 진단의 지름길, 신생아 선별검사


리소좀 축적 질환과 같이 이미 치료제가 개발된 희귀질환은 신생아 선별 검사를 통해 조기진단이 가능하다. 신생아 선별검사란 정상 신생아를 대상으로 조기 진단할 수록 더 좋은 치료 효과를 보일 수 있는 질환에 대해 선제적으로 미리 수행하는 진단 검사를 말한다. 검사는 일반적으로 생후 3일 이후 7일 이내에 충분히 수유한 뒤에 진행된다. 신생아의 발뒤꿈치에서 소량의 혈액을 채취해 특수 여과지에 묻힌 후 건조시켜 효소의 이상유무를 확인하는 방법으로 검사가 이루어진다. 선별검사에서 이상이 확인되면 유전자 검사와 같은 정밀검사를 통해 이상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다만 국가 지원 신생아 선별검사 항목에는 포함돼 있지 않고, 질환 의심환자에 대해서만 검사가 건강보험 적용된다.

또한 희귀질환이 의심된다면 희귀질환 거점센터에 방문해, 검사와 상담을 받는 것이 좋다.
현재 희귀질환 거점센터는 서울에 중앙지원센터를 포함해 12개소가 운영중이다.

hsk@fnnews.com 홍석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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