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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아닌 제 얘기 들어줄 사람 있을까요[숨어버린 사람들 (3) 은둔형 외톨이 "우리도 말하고 싶어요"]

속마음 털어놓을 사람이 없다
대화가 절실한 은둔형 외톨이
아무것도 아닌 제 얘기 들어줄 사람 있을까요[숨어버린 사람들 (3) 은둔형 외톨이 "우리도 말하고 싶어요"]
지난 10월 20일 서울 종로구 인근 한 미술관에서 열린 '무서운 빛, 따스한 어둠' 전시회 사진=서동일 기자

"말하는 방법을 잊은 적이 있어요. 분명 이런저런 이유로 방에서 나오지 않게 됐는데 말이죠. 그림을 보며 사람들이 우리를 이해할 수 있고, 우리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지난 10월 20일 서울 종로구 인근 한 미술관에서 열린 '무서운 빛, 따스한 어둠' 전시회에서 홍경석씨(가명)는 이같이 말했다. 이날 행사장 입구에는 외톨이들이 남긴 표기(表記)가 걸려 있었다. '차별' '인간실격' '무시' '남들에게 맞서지 못하는 성격' '무관심' 등 그들이 살아온 인생의 키워드가 적혀 있었다.

은둔형 외톨이가 어떻게 숨게 됐고, 이들이 어떤 인생을 살고 있는지에 대한 전국 단위의 분석은 전무한 상황이다. 일부 지자체가 조사한 자료에 이들의 인생을 간접적으로나마 추론할 수 있을 뿐이다. 대다수 은둔형 외톨이들은 취업 실패와 우울증, 대인관계의 어려움으로 방문을 걸어잠갔다.

■취업 실패, 우울증, 대인관계 어려움 호소

14일 광주시에 따르면 신수정 광주시의원은 2019년 10월 전국 지자체 최초로 은둔형 외톨이 지원 조례를 통과시켰다. 해당 조례의 통과로 한국식 은둔형 외톨이에 대한 정의가 이뤄졌고, 지자체 차원에서 최초로 은둔형 외톨이 실태조사가 이뤄졌다.

조례에 따르면 은둔형 외톨이는 사회적·행동적 특징으로 정의된다. 우선 3개월 이상 집이나 자신의 방에 틀어박혀 있다. 학업, 사회 참여의 동기나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 친구가 없거나 한 명뿐이다. 집에서도 생산적인 활동을 하지 않는다. 자신의 은둔 상태에 대해 불안감을 느끼는 것도 특징이다. 아울러 지적장애나 정신장애를 이유로 은둔생활을 하는 경우는 제외된다.

실태조사 결과 은둔형 외톨이가 된 가장 큰 이유는 취업 실패(27.8%)였다. 다음으로 우울증 등 정신적 어려움(26.6%), 대인관계(17.3%), 학업 중단이나 진학 실패(13.5%), 실직(10.1%) 순으로 나타났다. 현재 은둔생활 중인 응답자는 취업 실패(29.7%)를 주로 언급했지만 과거 은둔생활을 했던 대상자들은 우울증(27.4%)을 가장 높은 비중으로 언급했다. 해당 대목에서 지난해부터 이어진 코로나19로 인한 '고용 절벽'이 은둔형 외톨이를 더욱더 양산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서울 유명 사립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2년째 대구 집에서 칩거 중인 김신씨(가명)는 "연이은 행정고시 실패로 남들과 뒤처지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며 "부모님께 '취업준비를 한다'고 말은 하고 있지만 방문에서 나오지 않은 지 꽤 됐다"고 토로했다.

실태조사에서는 은둔형 외톨이가 됐다가 회복되는 과정을 △전조 △갈등 △은둔 △회복 등 총 4가지로 구분했다. 은둔형 외톨이는 앞서 언급된 이유로 스트레스를 받다 신체나 정신적 증상을 나타내는 전조 증상을 보인다. 이후 가족과 의사소통이 멀어지며 갈등 단계에 이른다. 이후 외톨이는 가족구성원과도 멀어지게 돼 잠수한다. 파이낸셜뉴스가 만난 송경준씨 역시 중학교 1학년 때 겪었던 왕따 문제로 공황장애가 생겨 외톨이가 됐다.

은둔형 외톨이에게는 대화가 절실했다. 은둔형 외톨이 52.7%는 가족에게도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없다고 말했다. 가족과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없는 만큼 친구도 없었다. 60.8%의 외톨이들은 속마음을 털어놓을 사람이 없다고 말했고, 절반 이상은 은둔생활 중 외로움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토로했다. 은둔형 외톨이 지원사업인 청년 체인지업 프로젝트를 관리하고 있는 남기웅 청년재단 매니저는 "청년들과 처음 마주할 때 이들이 봉착한 문제는 바로 '대화'였다"며 "오랜 시간을 두고 대화를 거친 후에야 외톨이들이 자신들의 속마음을 꺼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전국 실태조사 전무한 은둔형 외톨이

지자체에서 은둔형 외톨이를 찾아낸 것 자체만으로도 험난한 과정이었다. 광주시와 실태조사에 참여한 폴인사이트는 방법론을 찾아내는 데만 수개월이 걸릴 정도였다. 임형문 폴인사이트 대표는 "광주시나 우리 입장에서도 모험적인 과업이었다"며 "광주시 내 구청 사회복지사들이 만난 명단 100여명을 확보했는데 막상 독거노인이 대다수였다"고 말했다.

임 대표는 "정상적인 면담방법으로는 이들과 만날 수 없어 관리비 영수증에 관련 QR코드를 배포했다"며 "아파트 2만가구에 관리비 영수증을 보내는 등 349명의 은둔형 외톨이를 찾아내게 됐다"고 설명했다.

광주시는 해당 실태조사를 바탕으로 지원 산업을 진행하고 있다. 광주시는 은둔형 외톨이 사전 욕구조사(정보 제공 및 서비스 참여 의사 파악 등), 소통·정보교환 등 심리안정 지원을 위한 '부모 자조 모임', 방문상담 및 개별 지원 프로그램, 공공·유관기관 및 지역 네트워크 활용 등을 통한 협력체계 구축 등의 사업을 펼쳐나갈 예정이다. 광주시는 올해 은둔형 외톨이 5개년(2022~2026) 기본계획을 세우고 있으며 내년부터 지원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한다.

다만 실태조사와 정책은 전국 단위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간접적으로 이들에 대해 추론할 뿐이다.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조사 청년층(15~29세) 부가조사 마이크로데이터 분석에 따르면 올해 5월 기준으로 3년 이상 장기 미취업 상태인 청년은 27만8000명이었다. 이들 중 미취업기간에 집 등에서 그냥 시간을 보낸 청년은 9만6000명으로 집계됐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발표한 '2020년 청년 사회·경제실태 및 정책방안 연구'에 따르면 18~34세 청년 3520명을 대상으로 평소 외출 정도를 물은 결과 응답자 중 3.4%가 외출이 뜸한 은둔생활을 하고 있다고 답했다.

전문가들은 미취업자 등의 여부로 은둔형 외톨이를 정의할 경우 잘못된 정책이 나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남기웅 청년재단 매니저는 "니트족(청년무직자)이나 미취업자를 은둔형 외톨이로 여길 경우 일자리 정책이 만능으로 여겨질 수 있다"며 "사회적 관계 속에서 나타나는 은둔형 외톨이에 대한 심층적인 실태조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beruf@fnnews.com 이진혁 김도우 이환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