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노민호 기자 = 전두환 전 대통령이 23일 사망한 가운데 과거 '12·12 군사반란' 직후 당시 주한미국대사를 만나 "쿠데타나 혁명이 아닌 박정희 전 대통령 암살 사건을 조사하기 위한 절차일 뿐"이라고 거짓 설명을 한 전례가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전 전 대통령은 1979년 12월12일 자신이 이끌었던 군부 내 사조직인 하나회를 중심으로 12·12 군사반란을 일으켰다. 당시 최규하 대통령의 재가 없이 계엄사령관인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을 불법으로 강제 연행하는 등 군을 장악했다.
외교부가 지난해 공개한 비밀해제 외교문건에 따르면 12·12 군사반란 이틀 뒤인, 1979년 12월14일 전 전 대통령은 글라이스틴 당시 주한미국대사를 만나 박정희 전 대통령 암살 사건을 조사하기 위한 절차라고 설명했다.
특히 전 전 대통령은 "자신은 개인적인 야망이 없다", "최규하 대통령의 정치 자유화 프로그램을 지지한다", "군 내 상황 역시 한 달 안에 재건될 것"이라고 미국 측에 설명했다.
글라이스틴 대사는 "전두환 세력이 반대 세력을 제압하기 위해 우리 측 도움을 받고 싶어한다"며 "향후 우리가 몇 주에서 몇 달 안에 아주 까다로운 선택을 해야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또한 지난해 글라이스틴 대사와 전 전 대통령의 면담에 대한 추가 비밀해제 문서가 공개되기도 했다.
이에 따르면 전 전 대통령은 글라이스틴 대사에게 "자신은 정치적 야심이 없다", "군부대 동원은 적법한 명령에 대한 정 총장 측의 저항에 따른 불가피한 조치", "최규하 대통령의 재가를 받아 정 총장을 체포하려 했으나, 이를 대통령이 거절해 승인 없이 그를 체포했다" 등의 발언을 한 것으로 확인됐다.
12·12 사태는 전두환과 노태우 전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가 정 총장 등을 불법적으로 강제 연행하고 군권을 장악하면서 시작된 군사 반란이다. 신군부는 12·12 사태 다음날에는 군 본부와 국방부, 중앙청 등은 물론이고 방송국과 신문사를 통제했다.
신군부는 이어 1980년 5월17일 비상계엄 확대를 계기로 정권을 장악했고, 이에 항거한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강경 진압했다.
이와 관련, 주한미국대사관이 당시 비상계엄 전국 확대는 최규하 전 대통령 의지와는 관계없는 전두환을 비롯한 군부 실권자들의 집단 결정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당일 에드먼드 머스키 국무장관에게 보낸 사실이 미 국무부 기밀문서 공개를 통해 확인됐다.
미 국무부가 지난 6월 공개한 5·18 관련 자료에 따르면, 미 대사관은 1980년 5월17일 국무부에 "전두환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면서도 "독자적으로 행동하지 않는다"고 보고했다. 그러면서 군부 실권자들이 집단적인 결정을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당시 미 대사관은 최규하 대통령에 대해 "무력한 대통령(Helpless President)"이라고 평가했다. 이 표현은 문서에 처음으로 공개됐다. 또한 당시 최광수 대통령 비서실장은 비상계엄 전국 확대 결정은 최 전 대통령 의지와는 관계가 없었다고 미 대사관에 전했다.
23일 사망한 전 전 대통령은 끝까지 5·18 광주 민주화 운동 강경 진압과 유가족에 대해 어떤 사과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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