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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하지 마세요" 가정폭력 고리 끊고 자립 돕는 베트남의 해바라기 [코이카, 지구촌 그늘을 밝히다 (上) 베트남 여성에 도움의 손길]

여성폭력 문제 심각한 베트남에
'해바라기센터' 노하우 전수
의료·수사·법률·심리상담 통합
센터 오픈 1년만에 342건 구제
베트남 해바라기센터 지원 어떻게 이뤄지나
긴급지원전화→의료지원→쉼터→심리상담→경찰수사→법률상담
베트남 꽝닌성에 설립된 해바라기 센터에 입소한 피해 여성이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 코이카 제공
베트남 꽝닌성에 설립된 해바라기 센터에 입소한 피해 여성이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 코이카 제공
한국국제협력단(KOICA·코이카)의 '베트남 폭력피해 여성 및 여아 예방·보호 모델 구축사업'이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고 있다. 특히 "영원히 침묵하면 변화는 요원하다"는 피해자들의 인식 변화를 이끌어 냈다는 점에서 시사점이 크다. 단지 센터 운영에 직접적으로 관련된 요소 외에도 정부 공무원 인식 제고, 매뉴얼 제작, 정책 제안 및 확산 등 유사 프로그램의 확대를 위한 기반 마련에 중점을 둬 성공적으로 진행될 수 있었다는 평가다.

24일 파이낸셜뉴스는 하루 앞으로 다가온 '개발협력의 날'을 맞아 코이카의 첫번째 젠더기반폭력 대응사업을 소개한다. 이 사업을 통해 코이카는 2016년부터 250만달러(약 30억원)를 투입해 우리나라의 성폭력 방지 및 피해자보호 지원 모델인 '해바라기센터' 운영 노하우를 베트남에 전수했다.

■'인권 사각지대' 놓인 베트남 여성

베트남의 여성폭력 문제는 매우 심각한 수준이다. 2019년 베트남 노동보훈사회부, 통계총국(GSO), 유엔인구기금(UNFPA), 호주 외교부가 공동으로 베트남 전역의 15~64세 여성 6000명을 대상으로한 설문조사 결과, 베트남 여성 47%는 남편, 동거인으로부터 신체적, 정신적, 경제적, 성적 학대 경험이 있었다. 이 중 무려 87.1%가 피해신고 등 어떤 지원도 구하지 않았으며 자신의 이야기를 공유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베트남 노동보훈사회부 성평등국에 따르면 베트남 여성에 대한 폭력으로 인한 경제적 손실은 연간 445만달러(약 53억원)에 달한다.

이에 지난 2010년부터 베트남 노동보훈사회국 주관으로 베트남에는 전국 단위의 신체적, 성적인 폭력 생존자 지원을 위한 33개의 복지센터를 지원했다. 이 시설들은 기능적으로 흩어져 있고 각각 개별 영역에서 지원을 제공함에 따라 관련 당사자인 경찰, 사법, 의료, 수사기관 등끼리 관계가 제한적이었다. 즉 젠더기반폭력(GBV)에 대한 포괄적인 서비스가 없는 상황이었다. 라미혜 코이카 베트남사무소 부소장은 "현장에서의 가장 큰 난관은 '폭력 피해자의 침묵' 이었다"라며 "폭력 피해자의 90% 가량이 피해 사실을 외부에 드러내지 않을 만큼 가정, 성폭력은 지극히 사적인 영역으로 치부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있었다"라고 전했다.

■한국의 '해바라기 센터' 해결사 되다

코이카는 피해 사실에 대해 침묵하는 것과 정부 부처 간의 분절화로 피해여성들이 이중고를 겪고 있는 것으로 분석했다. 이에 △성폭력피해 인지제고 프로그램을 통해 피해자 인지제고 향상 △사법·수사·의료·상담 원스톱 서비스 △공공영역의 서비스 접근성 향상 △베트남 정부부처 공조체계 구축 등의 지원을 제공하는 프로그램을 추진하게 됐다.

한국도 성폭력, 가정폭력, 아동폭력, 학교폭력 등을 다루는 기관들이 분절적으로 운영되다가 '해바라기 센터'가 설립되면서 몇년 전부터 통합적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의료, 경찰수사, 재판 지원 및 법률 상담, 심리상담 등 4가지 서비스를 통합하고 외부에 쉘터를 운영해서 중장기 거주 및 재활을 지원하는 방식이 기본 모델이다. 이 같은 폭력피해 여성을 위한 한국형 원스톱 서비스 센터인 우리나라 해바라기 센터 모델을 베트남으로 그대로 전파하기로 했고 그 결과 베트남 최초로 해바라기 센터가 2020년 4월 꽝닌성에 설립됐다.

피해자 개인에 대한 지원 뿐 아니라, 정부 차원의 센터 자문위원회를 구성해 코이카, 유엔 인구 활동 기금(UNFPA), 베트남 노동보훈사회국(MOLISA) 성평등국, 꽝닌성 노동보훈사회부(DOLISA) 아동 보호 및 보호 부서 관리자 및 개입 책임자, 꽝닌성 사회복지센터, 교육부, 경찰부(공안), 보건부 여성연맹, 법무부 등 모든 부처가 공조하는 체계를 만들었다. 더불어 한국 해바라기 센터, 탁틴내일, KDS 등 컨설팅 기관들이 참여해 베트남에 한국의 경험을 전수하는데 일조했다.

센터 오픈 1년이 지난 현재 24시간 긴급전화를 통한 폭력피해 누적 접수 사례는 1만3544건에 이르고 실제 관계당국으로 인계된 폭력 피해사례 구제건수는 342건에 달하는 등 많은 변화가 있었다.
'Speak up, Take Action 캠페인'은 온·오프라인을 통해 2102건이 진행되고 1만5000명 이상이 참여하는 등 폭력에 대한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의 인식 변화를 유도하고 있다.

이 원스톱 서비스 센터 모델은 2023년까지 꽝닌성, 탱화성, 다낭, 호찌민 등 베트남 전국 단위로 확산될 예정이다.

조한덕 코이카 베트남 사무소장은 "베트남에서 최초로 설립된 해바라기 센터 모델은 폭력 피해자들이 공적인 영역에서 충분히 보호받을 수 있는 한국의 '사회안전망'을 벤치마킹한 최초 사례"라며 "피해자들의 인식 변화를 이끌어 냈다는 점에서 큰 교훈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true@fnnews.com 김아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