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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인사이트] 국민 법감정과 동떨어진 채용비리 판결 나오는 이유는

이정화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1.11.29 10:16

수정 2021.11.29 10:16

'신한은행 채용 비리' 혐의 조용병 회장, 항소심서 무죄
"형법상 업무방해죄 적용…채용 비리 자체 처벌법 없어"
채용비리처벌특별법 발의…채용 자율성 보장 반론도
조용병 신한금융지주 회장이 지난 22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항소심 선고 공판을 마친 후 발언을 하고 있다. 조 회장은 이날 열린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다. /사진=뉴시스
조용병 신한금융지주 회장이 지난 22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항소심 선고 공판을 마친 후 발언을 하고 있다. 조 회장은 이날 열린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다. /사진=뉴시스

신한은행 채용 비리 혐의로 1심에서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 받았던 조용병 신한금융지주 회장이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았다. 같은 혐의로 함께 재판에 넘겨진 임직원들에게도 1심보다 감경된 형이 선고됐다.


채용 비리는 사회적 공분을 사는 민감 사안이지만, 처벌하는 별도 처벌 조항이 없다 보니 국민 법 감정과 동떨어진 판결이 나올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컸다. 다만 사기업의 채용 자율성을 폭넓게 보장해야 한다는 반론도 있다.

■"채용 비리, 업무방해죄로…법 감정 어긋나는 결과 초래"
28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제6-3형사부(조은래·김용하·정총령 판사)는 지난 22일 업무방해 등 혐의로 기소된 조 회장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했다.

조 회장은 1심에서 3명에 대한 채용 비리 혐의를 유죄로 인정받았지만, 2명은 정당한 절차를 거쳤다는 이유로, 1명은 서류 전형 부정합격 과정에 관여했다고 보기 어렵단 이유로 항소심에서 무죄 판단이 나왔다.

재판부는 무죄를 선고하면서도 "채용 비리는 기회는 균등하고 과정은 공정해야 한다는 시대 가치에 반하기 때문에 사회적 공분을 사는 것"이라면서 "현재는 채용비리죄를 업무방해죄로 다스릴 수밖에 없어 일반적인 법 감정에 어긋나는 결과가 초래된다"고 지적했다.

현행법에는 채용비리죄를 별도로 처벌하는 조항이 없다. 채용 비리 혐의로 형이 확정됐거나 재판이 진행 중인 은행장과 은행 관계자에게도 모두 업무방해 혐의가 적용됐다. 업무방해죄가 보호해야 하는 대상은 채용업무 그 자체로, 이에 따른 피해자도 해당 회사 혹은 회사 임직원들로 구성된 면접위원들이 된다. 업무방해 혐의가 유죄로 인정되더라도 부정 채용 과정에서 피해를 본 입사지원자들의 피해 정도가 반영되기도, 지원자들이 구제받기도 어렵다.

■채용비리처벌특별법 발의…채용 자율성 보장 반론도
류호정 정의당 의원은 지난 1월 출신지역, 지인, 학교 등을 고려하는 행위를 채용 비리 행위로 규정하고, 채용 비리를 요구·약속한 경우에도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7000만원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는 채용비리처벌특별법을 대표 발의했다. 법 적용 대상을 공공기관과 금융기관, 300인 이상 대기업 등으로 규정하고, 다음 단계 응시 기회를 부여하는 등 피해자 구제책도 담고 있다. 하지만 지난 3월 환경노동위원회에 상정된 이후 논의에 진전이 없는 상태다.

류 의원 측은 "업무방해죄 적용 만으로는 부정 채용을 청탁했던 사람을 처벌할 수 없고, 피해자 구제도 어렵다"며 "채용비리처벌특별법은 채용 공정성을 보호법익으로 하는 법안으로, 부당하게 고용을 박탈 당하지 않을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사기업 채용은 경영자나 인사권자 등의 재량영역으로, 채용 자율성이 보장돼야 한다는 반론 역시 만만찮다.

이창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취업이 어려워지면서 채용 비리를 용납하기 어려운 것이 여론"이라면서도 "사기업 채용은 회사 이익과도 직결되는 문제로 피해가 기업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사기업에 나름의 자율성을 부여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고 했다.


조 회장에게 무죄를 선고한 재판부도 "연고 관계에 있는 일부 지원자들 명단을 따로 관리하는 등의 관행은 반드시 타파돼야 할 구습, 악습"이라면서도 "고용 주체가 사기업인 경우 헌법 119조 1항에 근거해 사기업이 누리는 채용의 자율을 폭넓게 보호해주지 않을 수 없는 점을 함께 고려해보면 사기업 채용 과정에서 공정과 부정의 경계를 설정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clean@fnnews.com 이정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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