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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기 내 나왔는데 환자 취급에 상처만 더 커졌다 [숨어버린 사람들 (9) 치료보다 치유가 필요한 은둔형 외톨이]

은둔형 외톨이에 대한 정의조차 없어
정신과적 병명으로 진단하기보단
사회불안이 촉발한 사회의 문제로 봐야
그래서 마음의 힘 길러주는 치유가 우선
"은둔형 외톨이들은 자신에게 스스로 총을 쏘는 상황이에요. 조심스러운 상담이 필요한데 첫 상담에서 이들을 비난하거나, 단순히 정신병 환자로 취급하면 오히려 상처가 커질 수 있습니다. 응급실에 갔는데 오히려 뼈를 맞고 오는 격이죠."

동굴 속에 있던 은둔형 외톨이가 세상 밖으로 나가는 첫 시도는 대부분 대화와 상담의 형태로 시작된다. 하지만 이들이 만나는 첫 상담사가 누가 되느냐에 따라 어떤 은둔형 외톨이는 한 줌의 용기를 얻기도 하고, 또 다른 이는 반대로 더 깊은 동굴 속으로 들어가기도 한다.

박대령 이아당 심리상담센터 소장은 "은둔형 외톨이 당사자들을 상담하다 보면 정신과 병원에 갔는데 '배불러서 그런다' '의지가 약하다' 등 오히려 비난을 받고 상처가 더 커지는 경우도 있다"고 지적했다.

오상빈 광주시 동구 청소년상담복지센터장은 "부모의 손에 이끌려 아이가 정신과 병원에 비자발적으로 입원하는 경우도 있다"며 "아이 입장에서는 부모가 자신을 환자로 본다는 생각에 상처가 더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치료'와 '치유' 구분해야

은둔형 외톨이 관련 다수의 전문가들은 초기 상담은 물론 이들의 지원, 사회 복귀 전 과정에서 '치료'와 '치유'를 엄격히 구분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은둔형 외톨이에 대한 제도적 정의를 우리보다 30년 이상 먼저 내린 일본의 경우 '히키코모리'의 정의에 '정신적 질환'은 제외했다. 또 우리나라 지자체 최초로 은둔형 외톨이 조례를 제정한 광주광역시의 경우도 우울증과 같은 정신병은 제외하는 걸로 은둔형 외톨이를 정의했다. 은둔형 외톨이의 일부 특성으로 정신과 질환을 보이는 경우는 있지만 이를 동일시할 경우 적절한 해법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모세종 한국은둔형외톨이지원연대 사무국장은 "마음의 질병을 '치료'하는 것과 마음의 힘을 북돋아 주는 '치유'는 전혀 다른 과정"이라며 "대다수 은둔형 외톨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치료'가 아니라 '치유'"라고 강조했다.

파이낸셜뉴스가 만난 다수의 은둔형 외톨이들은 우울증, 공황장애, 환청·이명 등의 증상으로 정신과 약을 복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이들 중 몇몇은 의료적인 치료와 약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들이 처음 상담한 곳이 정신과 병원일 경우 '기계적'으로 정신과 약이 처방되고 남용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부모의 강압이 아닌 자발적으로 상담센터나 정신과 병원을 찾는 은둔형 외톨이들은 적절한 첫 상담을 통해 사회 복귀의 가능성이 크게 높아질 수 있다. 하지만 우울증 약과 같은 정신적인 처방은 마음의 힘을 북돋아 주기보다는 극단적인 선택을 막기 위한 목적이 더 크다. 은둔형 외톨이 당사자였던 20대 윤씨는 "정신과 약을 3년 정도 먹었었는데 부정적인 생각이든 긍정적인 생각이든 아무 생각이 들지 않게 해준다"며 "자살과 같은 극단적 생각도 안 하게 되지만 의욕도 없어진다"고 말했다.

■상처 커지는 정신병 환자 취급

일선 상담소나 정신과 병원의 경우 은둔형 외톨이에 대한 국가적 차원의 정의가 없다 보니 이들에 대한 상담 메뉴얼도 없고, 세심한 상담도 이뤄지기 어렵다.

박대령 이아당 심리상담센터 소장은 "은둔형 외톨이는 우울증과 같은 '진단명'이 아니라 '사회불안'을 느끼는 사회문화적인 현상"이라며 "정신과 상담을 받은 은둔형 외톨이의 '좋은 경험' '나쁜 경험' 설문을 해보면 나쁜 경험을 했다는 결과가 많다"고 말했다.

이로 인해 은둔형 외톨이를 자녀로 둔 일부 부모들의 경우 인터넷 카페 등에 좋은 상담을 해주는 정신과 병원에 대한 추천 정보를 공유하기도 한다. 아이의 의사와 상관없이 부모들이 강압적으로 정신과나 상담센터에 데려가거나 심지어 강제로 정신병원에 입원시킬 경우 부작용만 커질 수 있다. 상담 과정에서 '너 배불러서 그런 거다' '하면 된다'와 같이 은둔형 외톨이에 대한 공감과 이해가 부족한 상담사의 무신경한 태도도 문제가 될 수 있다.

■상담과정 문제 제도화해야

병원 정신과와 일선 상담센터의 상담과정을 전문화하고 재교육을 통해 은둔형 외톨이에 대한 전문성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모세종 한국은둔형외톨이지원연대 사무국장은 "심리상담사, 사회복지사 자격증 취득 이후 이뤄지는 보수교육(재교육)에 은둔형 외톨이 관련 과정을 추가해야 한다"며 "보수교육 시간만 규정하지 말고 어떤 내용의 교육을 해야 하는지도 시행령이나 규칙 등을 통해 개정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특히 정신과 질병을 치료하는 정신과의 경우도 약을 처방해야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은둔형 외톨이의 정의와 상담에 대한 가이드 라인 등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보건복지부 등 정부 차원의 학술 연구와 대책 마련, 일선에 대한 공유가 필요하다.


상담 과정에서 발생하는 피해를 막기 위한 제도적인 대안도 필요하다. 또 상담 과정에서 드는 상담 비용의 경우 당사자 가구의 경제 형편에 따라 적절한 지원도 필요하다. 박대령 소장은 "미국 등 선진국의 경우 의사나 상담사가 잘못된 상담을 할 경우 막대한 손해배상을 하도록 제도적인 규제장치가 마련돼 있다"며 "의사와 상담사의 관리 감독에 대한 법제화를 통해 고객에게 해가 되는 행동을 했을 경우 이를 바로잡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hwlee@fnnews.com 이환주 이진혁 김도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