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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숄츠 시대' 개막… 중도 좌파 '신호등 연정' 닻 올랐다

러시아 가스 수출 열쇠 쥔 독일
"우크라 침공땐 강력 대응" 경고
"폴란드 난민문제 돕겠다" 강조
외교정책 기조 큰 변화 없을 듯
중국에 대해선 공식입장 안밝혀
굿바이 메르켈… 獨, 16년 만에 새로운 출발8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 총리관저에서 새로 취임한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오른쪽)가 앙겔라 메르켈 전 총리와 함께 사진을 찍고 있다. AP
굿바이 메르켈… 獨, 16년 만에 새로운 출발8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 총리관저에서 새로 취임한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오른쪽)가 앙겔라 메르켈 전 총리와 함께 사진을 찍고 있다. AP
지난해 총선에서 승리했던 독일 사회민주당(사민당)의 올라프 숄츠가 총선 73일이 지난 8일(현지시간) 정식으로 선서를 하고 독일의 9대 총리에 취임했다. 약 16년 동안 중도 우파 정부를 이끌었던 앙겔라 메르켈 전 총리는 향후 거취를 밝히지 않았으나 정치 고문으로 활동할 것으로 보인다.

도이체벨레(DW)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독일 연방하원은 8일 본회의를 열고 사민당의 총리 후보로 지명된 숄츠의 총리 임명안을 투표했다. 707명이 참여한 투표에서 사민당이 구성한 연립 정부에 참여한 의원은 416명이었으며 이 가운데 21명을 제외한 395명이 찬성표를 냈다.

■코로나19 딛고 '강력한 유럽' 추구

중도 좌파 계열의 사민당은 지난해 총선에서 과반을 얻지 못해 비슷한 성향의 녹색당 및 중도 우파 계열의 자유민주당과 연립 정부를 세웠다. 2005년 이후 처음으로 사민당 총리에 오른 숄츠는 역대 최초로 16명의 장관을 남녀 8명씩 같은 숫자로 임명했다. 숄츠 내각에서는 독일 역사상 처음으로 내무장관과 외무장관에 여성 후보가 지명되었으며 국방장관도 여성이다.

숄츠는 우선 총리실에 코로나19 위기관리 위원회를 설치해 감염병 예방에 집중할 예정이다. 현지 집계에 따르면 독일의 코로나19 사망자는 7일 기준으로 527명으로 10개월 만에 사망자가 500명을 넘어섰다.

또한 그는 전임자와 마찬가지로 유럽연합(EU)의 결속을 강조하는 정책을 추진할 전망이다. 숄츠는 취임 선서를 마친 뒤 인터뷰에서 역대 총리들의 전통에 따라 가장 먼저 프랑스를 방문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독일의 외교 정책은 연속성의 정책이다"며 메르켈의 정책을 유지하겠다고 시사했다. 아울러 숄츠는 최근 벨라루스에서 유입되는 난민 때문에 고생하는 폴란드를 돕겠다고 강조했고 우크라이나 침공 위협을 놓고 러시아에게 "아주 분명하게" 경고하겠다고 말했다.

그동안 독일에 막대한 천연가스를 수출했던 러시아는 대통령 대변인을 통해 독일의 새 정부와 "건설적인 관계 구축을 희망한다"고 밝혔다. 숄츠는 이외에도 미국 등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관계를 강화하겠다고 약속했다. 다만 그는 중국 관련 정책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분명한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중도에 가까운 실용주의자

숄츠는 1958년에 독일 니더작센주 오스나부르크에서 태어났지만 곧장 함부르크로 이사해 유년 시절을 보냈다. 함부르크 대학에서 법을 배운 그는 노동법 전문 변호사로 활동했으며 국제청년사회주의자연합(IUSY) 부회장으로 활동하다 40세의 나이에 하원의원에 당선되어 본격적인 정치 경력을 시작했다. DW는 숄츠가 젊었을 당시 자본주의 파괴를 외치는 강성 좌파였으나 변호사 생활을 하면서 중도로 기울어졌다고 분석했다. 그는 2001년 함부르크시(市)의 내무장관을 맡았고 2002~2004년 동안 사민당 총서기를 역임했다. 그는 메르켈 정부 1기였던 2007년부터 2년간 노동사회부 장관을 지냈고 2011~2018년에 걸쳐 함부르크 제1시장으로 활동했다. 숄츠는 메르켈 정부 4기였던 2018년에 다시 연방 정부에 합류해 부총리 겸 재무장관을 지냈다.

숄츠는 현재 좌파에 가까운 사민당 내에서 가장 오른쪽으로 기울어진 인물이다. 그는 별명이 '기계'일만큼 카리스마가 없다는 평이 많지만 성실한 재정 관리자라는 이미지를 쌓았다. 그는 중도 우파 계열인 메르켈 정부에 대연정으로 참여해 재정 긴축을 옹호했고 집권 이후 메르켈 정부가 유럽 재정위기 당시 도입했던 정부 지출 제한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숄츠는 지난해부터 불거진 세계 최저법인세 도입을 주장하면서 국제적인 이목을 끌었고 코로나19 이후 긴급 구호 프로그램을 이끌면서 내부적으로 좋은 인상을 남겼다. 특히 그는 당이 다르지만 메르켈을 전폭적으로 지지하며 메르켈의 후계자를 자처했다.

■메르켈, 앞으로 거취는?

2005년 이후 16년 동안 기독민주연합(기민련)·기독사회연합(기사련) 연합을 이끌었던 메르켈은 5860일 동안 재임해 역대 2번째로 오래 근무한 총리가 됐다. 그는 앞서 헬무트 콜 전 총리가 1982~1998년 세운 역대 최장 재임기록(5870일)은 깨지 못했다. 총리직과 의원직에서 함께 물러난 메르켈은 이날 방청객 좌석에서 숄츠의 취임을 지켜봤고 이후 총리관저에서 따로 만나 "진심으로 축하한다"고 말했다. 그는 "직접 경험해봐서 총리직에 선출된 이 순간이 아주 감동적인 순간이라는 것을 안다. 기쁘게 임한다면 이 나라를 위해 책임을 지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멋진 일"이라고 말했다.

메르켈은 당초 총리직에서 물러나면서 정계 역시 떠나겠다고 밝혔다. 가디언 등 유럽 매체에 따르면 메르켈은 지난달 의회에 제출한 문서에서 베를린 중심가에 퇴임 후에 사용할 사무실을 마련해 달라며 비서와 사무원 등 직원 9명을 추가로 요청했다.

메르켈의 전임자였던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총리 또한 퇴임 직후 사무실을 열었으며 몇 개월 뒤 러시아의 핵심 천연가스 수출 시설인 노드 스트림에 취직해 구설에 올랐다.
헬무트 콜의 경우 정치 자문과 로비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를 운영했다.

독일 의회는 2015년 표결에서 고위 정치인이 퇴임 이후 12~18개월 동안 로비 활동을 하지 못하게 금지했으며 메르켈 또한 당장 로비 활동에 뛰어들기는 어렵다. 메르켈은 구체적인 거취를 밝히지 않았지만 지난 7일 기민련 의원들과 화상 회의에서 앞으로 공개적으로 정치적 조언을 하지 않겠지만 자문에 대답은 하겠다고 말했다.

pjw@fnnews.com 박종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