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 정책

'탈세범' 경계 내몰리는 블록체인 기업들...법인 가상자산 제도 시급

정영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1.12.12 16:10

수정 2021.12.12 16:17

올들어 잇딴 세무조사..해시드 그라운드X 등등
법인 가상자산-현금거래 막혀 탈세범 오명 위협 
투자하려면 '편법' 불가피..제도적 헛점 방치
[파이낸셜뉴스] 테슬라, 마이스로스트레티지 등 글로벌 기업들이 가상자산 투자를 공식화하고 있는 반면, 국내에서는 기업이 법인명의로 가상자산을 거래하거나 투자할 수 있는 길이 막혀 자칫 탈세범의 오명을 쓸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특히 최근 업무 성격 상 가상자산 거래를 할 수 밖에 없는 블록체인·가상자산 기업들에 대한 세무조사가 잇따르면서, 제도 보완 없이 기업 경영부터 옥죄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블록체인 기업 잇딴 세무조사

12일 업계에 따르면 올들어 과세당국이 잇따라 블록체인·가상자산 기업에 대한 세무조사를 진행했다. 지난달에는 블록체인·가상자산 기업 투자회사 해시드에 대한 세무조사에 착수한 사실이 확인됐고, 연초에는 범현대가 3세 정대선 사장의 HN그룹, 아이콘루프, 카카오 그라운드X, 테라 등 블록체인 업계 굵직한 기업들이 줄줄이 세무조사 명단에 오른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대표 블록체인 투자회사 해시드는 디센트럴랜드 더샌드박스 엑시인피니티 등 P2E(Play To Earn) 게임은 물론 카카오 클레이튼, 네이버 링크, 테라 등 아시아 주요 프로젝트에 대한 투자를 진행한 회사다. 2017년 설립된 해시드는 최근 3년간 적자를 기록 중이다.


과세당국의 세무조사 내용이 구체적으로 확인되지는 않지만, 업계에서는 "가상자산 발행회사에 대한 정부의 회계·세무 가이드라인이 없는 상황에서, 이들 가상자산 발행회사들의 회계처리가 불확실했을 것으로 보고 세무조사에 나선 것 아니겠느나"고 추정하고 있다.

과세당국은 올 들어 잇따라 가상자산 기업들에 대한 세무조사를 진행했다. 지난달에는 가상자산 기업 투자회사 해시드에 대한 세무조사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연초에는 범현대가 3세 정대선 사장의 HN그룹, 아이콘루프, 카카오그라운드X, 테라에 대한 세무조사를 진행한 것으로 전해졌다./사진=뉴스1
과세당국은 올 들어 잇따라 가상자산 기업들에 대한 세무조사를 진행했다. 지난달에는 가상자산 기업 투자회사 해시드에 대한 세무조사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연초에는 범현대가 3세 정대선 사장의 HN그룹, 아이콘루프, 카카오그라운드X, 테라에 대한 세무조사를 진행한 것으로 전해졌다./사진=뉴스1

최근 세무조사를 받은 사실을 공개한 해시드는 "ㅒ과세당국이)(주)해시드가 가상자산 투자로 많은 돈을 번 것으로 파악되는데, 정작 (주)해시드는 매출이나 투자수익이 없고 결손금만 쌓여 있는 상황이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특별조사를 진행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법인들, 가상자산 현금화 길 막혀...제도적 헛점

국내에서 법인 명의로 가상자산을 현금화할 수 있는 합법적 방법은 사실상 없다. 이 때문에 가상자산으로 서비스 대가를 받거나, 가상자산에 투자한 법인은 직원 개인 계좌를 이용해 편법으로 가상자산을 현금화할 수 밖에 없다.

실제로 해시드는 "(주)해시드의 2020년 말 기준 재무상태표상 결손금은 약 105억원, 자본총계는 약 -95억원"이라며 "(주)해시드가 가상자산으로 자산가치가 커졌다고 알려져 있으나, (주)해시드는 파트너들의 가수금을 수혈받아 운영되고 있다"고 밝혔다. 법인 이름으로 가상자산에 투자할 수 없으니 파트너들의 개인투자 수익을 가수금으로 받아 기업을 운영한다는 것이다.

법인이 활용이 가능한 커스터디 서비스 업체의 경우 국내에서는 올해들어 설립이 시작된 상황이다. 지난 5월 국민은행과 해치랩스 해시드가 공동 설립한 가상자산 전문 기업 '한국디지털에셋(KODA)'이 수탁 서비스를 출시한 바 있다. /사진=뉴스1
법인이 활용이 가능한 커스터디 서비스 업체의 경우 국내에서는 올해들어 설립이 시작된 상황이다. 지난 5월 국민은행과 해치랩스 해시드가 공동 설립한 가상자산 전문 기업 '한국디지털에셋(KODA)'이 수탁 서비스를 출시한 바 있다. /사진=뉴스1
국내에서 현금-가상자산 간 거래를 할 수 있는 대형 가상자산 거래소들은 정부에 가상자산 사업자 신고를 하면서 법인의 가상자산 현금ㄹ화 서비스를 모두 중단했다. 법인명의 가상자산 계좌를 만들어주는 서비스는 내놨으나, 이를 현금화할 방법은 없는 것이다.

그나마 최근 법인이 활용 가능한 가상자산 커스터디 서비스 업체들이 정부에 가상자산 사업자 신고를 마치고 연내 서비스를 시작할 계획이다. 회계기준도 불명확하다. 상장사 법인이 보유하고 있는 가상자산을 재무제표에 반영하기 위한 기준이 지난 2019년 9월 마련됐지만, 비상장 기업으로 일반기업회계기준을 적용하는 기업은 자체적으로 회계처리를 한다. 회계감사나 세금 관련 문제에 노출될 위험성이 그만큼 높아지는 것이다.


조원희 법무법인 디라이트 변호사는 "근본적 문제는 거래소가 개인에 대해서는 계좌발급을 하지만 법인에 대해서는 계좌 발급을 하지 않아 생기는 문제"라며 "법인도 인증 등을 통해 계좌 발급을 할 수 있는데, 정부 지침 때문에 '안된다'는 것이다 보니 대표나 임직원이 개인 명의로 투자하거나, 개인 명의로 환불해 법인통장으로 입금하는 편법이 빈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세계 시장은 물론 국내에서도 기업들이 가상자산을 거래하거나 투자하는 사례가 급속히 확산되고 있는 만큼, 법인의 가상자산 거래를 회계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기준은 물론 기업의 가상자산 현금화에 대한 제도가 시급히 마련돼야 한다는게 업계의 목소리다.
정부의 제도 미비로 신생산업에서 성장사업에 투자하는 기업들이 불법의 경계로 내몰릴 수 있다는 것이다.

bawu@fnnews.com 정영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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