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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당장의 ‘취업과 자립’ 보다, 당사자에 귀기울이는 정책이 더 필요" [숨어버린 사람들 (12) 日 히키코모리 현주소]

'히키코모리 백서 2021' 발간한
하야시 교코 히키코모리 UX회의 대표
"마음의 안정 확보 못하고 취업한다면
또다른 실패로 히키코모리 못 벗어나
아픔 공유하는 신뢰 관계 만남이 중요"
20년 긴 터널 빠져 나온 경험으로 조언
[인터뷰] "당장의 ‘취업과 자립’ 보다, 당사자에 귀기울이는 정책이 더 필요" [숨어버린 사람들 (12) 日 히키코모리 현주소]
일본 민간단체로는 처음으로 1686명의 은둔형 외톨이(히키코모리)들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기록한 백서를 출간한 '히키코모리 UX회의'의 하야시 교코 대표(55). 지난 10일 일본 도쿄 우에노역에서 카메라를 향해 응시하고 있다. 사진=조은효 특파원

【파이낸셜뉴스 도쿄=조은효 특파원】 지난 6월, 일본의 한 단체가 은둔형 외톨이(히키코모리)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담은 '히키코모리 백서 2021'을 발간했다. 총 46만자에 이르는 이 백서는 훗카이도에서 오키나와까지 1686명의 진솔함을 담았다. 한 글자 한 글자, 은둔형 외톨이들의 고통과 이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이 그대로 묻어났을 뿐 아니라 지원 상담창구에서 겪었던 또 다른 냉대와 위축, 정책 제언과 개선점까지 세밀하게 담고 있다.

아동 히키코모리부터 85세 노인 히키코모리까지 일본 각지에서 '스스로 히키코모리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조사에 참여했다. 일본 정부의 히키코모리 추계상 잘 잡히지 않는 일반 주부 히키코모리의 존재까지 이 조사를 통해 본격 드러냈다.

조사와 백서 발간은 전직 히키코모리들의 모임인 '히키코모리 UX회의'(일반 사단법인) 주도로 이뤄졌다. 히키코모리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토대로 대규모 현황 조사와 이를 통해 백서가 발간된 것은 일본 정부는 물론이고, 민간단체로서는 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백서 발간은 일본 내에서도 큰 이목을 끌었다.

[인터뷰] "당장의 ‘취업과 자립’ 보다, 당사자에 귀기울이는 정책이 더 필요" [숨어버린 사람들 (12) 日 히키코모리 현주소]
'히키코모리 UX회의'의 히키코모리 백서 2021 표지
지난 10일, 도쿄 우에노역의 한 카페에서 이 단체를 이끌고 있는 하야시 교코 대표(55)를 만나 '무엇이 히키코모리 정책의 최우선에 놓여야 하는지'를 물었다. 정책을 위한 정책이 아닌, 당사자를 위한 정책이 돼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하야시 대표는 현재 이 단체뿐만 아니라 다른 히키코모리 단체에서도 활동하고 있다. 일본 정부의 '취업 빙하기 세대 지원 추진을 위한 전 플랫폼' 민간위원 등을 맡고 있다. 마침 당일은 하야시 대표의 저서 '히키코모리의 진실(지쿠마신서 출판)'이 발간된 날이기도 했다.

하야시 대표는 "지금까지 20여년 일본 정부의 히키코모리 정책은 '취업과 자립'에 초점을 둬왔는데, 그에 앞서 히키코모리 당사자들이 마음 편히 안심할 수 있는 곳이 확보돼야 한다"고 밝혔다. "자존감은 산산조각난 상태인데, 마음의 안정이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당장 취업에 성공한다고 해도 대부분 금방 그만둬버리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는 히키코모리들에게 또 다른 실패를 의미한다. 더욱 나락으로 떨어지는 느낌을 주게 된다. 백서에서도 회복과 악화가 반복적으로 이뤄지면서 생애 장기간에 걸쳐 히키코모리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는 "당사자 모임 등에 나가서 '나만의 문제가 아니구나'라는 것을 깨닫는다거나, 신뢰할 수 있는 사람과의 만남이 우선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당신은 가치가 있는 사람이다' '당신의 말은 틀리지 않다'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말을 해줄 수 있는 곳"이란 얘기다.

[인터뷰] "당장의 ‘취업과 자립’ 보다, 당사자에 귀기울이는 정책이 더 필요" [숨어버린 사람들 (12) 日 히키코모리 현주소]
'히키코모리 UX회의'의 하야시 교코 대표가 지난 10일 출간한 '히키코모리의 진실' 사진=조은효 특파원

하야시 대표의 얘기는 사실, 그 자신의 경험에 기반한 것이다. 그 역시 기나긴 세월 히키코모리였다. 부친은 대기업 보험회사에 근무했으며, 모친은 1970년대였던 당시 초등학생인 그에게 피아노 교습을 시켜 장차 음대에 보내겠다는 꿈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여느 중산층 가정의 장녀들과 마찬가지로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듯 그 역시 모범생이었고 학교에서도 도쿄대, 교토대 등 국립대에 보내고 싶어할 정도로 학업 성적도 우수했다.

하지만 불행은 예기치 못한 곳에서 찾아왔다. 1980년대 당시 일본의 학교 교칙은 매우 엄격했다. 폭력을 수반한 교사들의 강압적 지도 방식, 입시 위주의 교육 방식에 강한 거부감이 일어났고, 당시로서는 '알 수 없는 이유'로 몸 상태가 극도로 악화됐다. 고교 2학년 때부터는 학교에 더 이상 갈 수 없는 상태가 됐고, 결국 중퇴하고 말았다.

그의 저서 '히키코모리의 진실'에서는 당시의 심경에 대해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가능한 한 좋은 대학에 가고, 가능한 한 좋은 회사에 취직한다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했고, 그 외의 미래는 꿈꾸지 않았던 내게 내게 고교 중퇴는 미래를 잃는 것과 같았다." 1980년 초반에는 '등교 거부'라는 말도 없었을 뿐더러 히키코모리라는 용어가 알려지기도 전이었다. 누구에게도 이해받기 어려웠다.

16살 고교 중퇴 후 36살이 될 때까지 상태는 호전과 악화를 반복했다. 그러던 중 5명의 히키코모리였던 친구를 잃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그들 중 일부는 취직에 성공한 후에 자살을 택했다. 20년간의 어두운 터널을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신뢰할 수 있는 사람들과의 만남' '같은 아픔을 겪는 사람들과의 만남'이었다고 했다. 그 뒤 "'그냥 단지 목숨이 다하는 그날까지 살아가자'라고 생각하게 됐다"고 했다. 백서를 발간하게 된 이유에 대해 물었다.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어떻게든 세상에 전달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최근 은둔형 외톨이 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한국 사회에 조언을 해달라고 했다.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듣지 않으면 그들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알 수 없다"고 했다. 지난 2019년 6월 네모토 다쿠미 일본 후생노동상은 당시 하야시 대표가 이끄는 히키코모리 UX회의와 KHJ전국 히키코모리 가족 연합회와 면담 후 '당사자 중심의 정책'과 이들이 '안심하고 지낼 수 있는 곳'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장관 명의의 성명을 발표했으며, 이것이 정책 당국 중심에서 당사자 중심으로 일본의 히키코모리 정책이 변화된 계기가 됐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특별취재팀 김도우 팀장 이환주 이진혁 기자 조은효 특파원
ehcho@fnnews.com 조은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