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뉴스1) 정유진 기자 = *영화의 주요 내용을 포함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킹메이커'는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 변성현 감독의 신작이다. 변 감독은 전작에서 두 남자의 미묘한 관계를 서스펜스 넘치게 묘사해 '불한당원'이라는 팬층이 양산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바 있다. 그리고 '킹메이커'로 돌아온 그는 한국 현대사의 격동기, 서로 다른 가치관을 가진 두 남자의 동행과 충돌 안에서 의미심장한 질문을 끌어낸다.
최근 언론배급시사회를 통해 공개된 영화 '킹메이커'(감독 변성현)는 빛과 그림자 같은 두 남자의 관계를 드라마틱하게 담아낸 정치 드라마다.
1961년, 서창대는 길에서 우연히 정치인 김운범(설경구 분)의 선거 유세를 듣고 그의 사무실을 찾아간다. 김운범은 구체적인 공약과 목표가 확실한 인물이지만 반대편의 '빨갱이 프레임'에 갇혀 7년간 4번이나 국회의원 선거에서 미끄러졌다. 김운범이 추구하는 정치적 이상에 공감한 서창대는 그런 그에게 "자본가적 생각이 필요하다"고 조언하며 캠프에 들어와 돕겠다고 제안한다. 하지만 처음부터 두 사람의 가치관은 판이하게 달랐다. 김운범은 아리스토텔레스를 인용해 "정의가 바로 사회의 질서"라고 말하지만 서창대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스승 플라톤의 말을 인용해 "정당한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을 가릴 필요가 없다"고 맞선다. 결국 서창대와 손을 잡은 김운범은 국회의원에 당선되고 유망한 정치 신인으로 인정받는다.
같은 길을 걷지만, 두 사람은 매번 '수단'을 두고 충돌한다. 승리를 손에 쥐지는 못해도 대의를 챙기면 된다고 생각하는 김운범은 매력적인 정치인이다. 그는 타고난 기질과 인품을 이용해 자신에게 닥쳐오는 난관을 타개한다. 반면, 뛰어난 두뇌를 가지고도 부모가 북한 출신이라는 이유로 출세를 하기 어려운 서창대는 모든 수단을 다해서라도 이기는 것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그는 전략적으로 계산하고 편법을 써서라도 상대편보다 한 발 앞서 있기 위해 노력한다. 이런 가치관의 충돌에도 불구하고 서창대는 평등하고 상식적인 세상을 만들겠다는 김운범을 마음 깊이 존경한다. 비록 음지에서 활약할 수밖에 없는 처지를 비관해 열패감에 종종 휩싸이지만, 그는 그림자로서의 역할에 충실하며 김운범의 승리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건다.
'킹메이커'는 60, 70년대 선거판에서 벌어지는 '표심 전쟁'을 흥미롭게 묘사한다. 돈 봉투, 와이셔츠, 고무신 등 뇌물이 난무하고, 부정 투표가 밥 먹듯이 진행되는 상황 속에서 정당한 방법으로 당선을 이뤄내기란 쉽지 않다. 영화는 때로는 현실에 타협하지만 결국에는 자신의 신념과 대의를 지키는 김운범과 그의 밑에서 손에 더러운 것을 묻히더라도 끝내 목표를 쟁취하는 서창대를 빛과 그림자로 묘사한다. 빛과 그림자 중 감독이 시선이 조금 더 머문 곳은 역시 그림자 쪽이다. 끝내 자신의 신념을 지키며 목표를 이룬 김운범의 성공 신화보다는 결핍과 좌절, 배반으로 점철된 서창대의 인생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삶과 깊이 공명한다.
배우들의 연기는 예상대로 훌륭하다. 구성진 목포 사투리를 쓰는 설경구는 인간적이면서도 신념으로 가득찬 젊은 정치인을 흥미롭게 연기했다. 실존 인물을 구체적으로 모사하지 않음에도 불구, 실존 인물의 전체적인 이미지와 매력을 연기 안에 담아내는 데 성공했다. 이선균은 결핍으로 가득한 한 인간의 내면을 섬세하게 표현해내며 보는 이들의 마음을 끈다.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과 60-70년대 그의 참모였던 엄창록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한 만큼, 영화 속에는 이름은 달라도 관객들이 예상할 수 있는 유명 정치인들의 캐릭터들이 여럿 등장해 흥미를 자극한다. '스타일리시하다'고 알려진 변성현 감독 특유의 미장센은 '킹메이커'에서도 엿보인다. 특히 두 캐릭터를 빛과 그림자로 형상화한 신들이 매력적이다. 러닝 타임 123분. 오는 29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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