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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스트리트] 터키발 누텔라 품귀

구본영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1.12.21 18:00

수정 2021.12.21 18:00

지난 16일(현지시간) 터키 이스탄불의 전통 재래시장 그랜드 바자르 부근에서 한 남성이 수레로 짐을 나르고 있다. 터키 중앙은행이 식료품 등 기초생활용품을 사기도 어려운 소비자물가 급등에도 또다시 기준금리를 인하하면서 터키 리라화가 달러 대비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다. 사진=뉴시스
지난 16일(현지시간) 터키 이스탄불의 전통 재래시장 그랜드 바자르 부근에서 한 남성이 수레로 짐을 나르고 있다. 터키 중앙은행이 식료품 등 기초생활용품을 사기도 어려운 소비자물가 급등에도 또다시 기준금리를 인하하면서 터키 리라화가 달러 대비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다. 사진=뉴시스
터키의 외환위기가 심상찮다. 리라화 가치는 올해 전체로 보면 달러 대비 45% 떨어진 상태다.
엄청난 인플레이션에도 저금리를 고집하면서다. 지난 8월 한국이 터키와 통화스와프 협정 체결 당시 약 2조3000억원어치였던 175억리라의 가치는 현재 1조4000억원 수준으로 폭락했다. 6·25전쟁에 참전해 '형제국'으로 불리기도 하는 터키의 곤경이 남의 일 같지 않다.

이로 인한 나비효과일까. 세계적인 헤이즐넛 스프레드 '누텔라' 공급대란이 빚어지고 있다. 누텔라는 유럽 등 세계 각국에서 빵에 바르는 잼으로 가장 인기 있는 제품이다. 이탈리아 페레로가 헤이즐넛과 설탕, 코코아, 탈지분유, 팜유 등을 원료로 만드는 이 제품은 흔히 '악마의 잼'으로도 불린다. 고열량인데도 고소함과 달콤한 맛이 뒤섞여 묘한 중독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터키 외환위기로 누텔라의 주원료인 헤이즐넛 생산이 차질을 빚었다. 터키는 그간 전 세계 헤이즐넛 생산량의 70%를 점유해 왔다. 하지만 리라화 대비 달러 가치 급등으로 비료 값 등이 폭등해 터키의 헤이즐넛 생산농가가 큰 타격을 입고 있다는 소식이다. 그 결과가 누텔라 품귀 현상이다.

이 같은 소동을 일으킨 근본 요인이 뭘까.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0일(현지시간) 레지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의 위험한 '금리 도박'으로 글로벌 헤이즐넛 공급망이 심각한 타격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터키 중앙은행이 에르도안 대통령의 종용으로 금리를 인하해 리라화가 폭락했음을 지적한 셈이다. 이로 인해 수입에 의존하는 비료 가격이 올라 헤이즐넛 농가의 경작비는 물론 가공공장의 전기료와 인건비도 급등했으니….

인플레이션 때는 금리 인상이 금융통화 정책의 정석이다. 시중의 유동성을 흡수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터키 정부는 이와 정반대로 갔다.
물가가 뛰고 있는데도 '이자는 죄악'이라고 보는 이슬람 율법을 따라 금리 인하를 단행하면서다. 이로 인해 리라화 급락 조짐이 이어지자 터키 당국은 리라화 예금에 '제로 세율' 한시 적용 등 악순환을 부르고 있다.
터키의 외환위기가 '경제의 정치화'의 산물이라면 우리 대선주자들에게도 타산지석일 듯싶다.

kby777@fnnews.com 구본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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