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비혼 동거'도 가족으로 인정받을 수 있나요”

박지연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1.12.26 14:15

수정 2021.12.26 14:15

비혼동거 가정 등에 대한 국민적 인식 확대
현행법상 가족으로 인정 안돼 의료·주거·복지 등에서 소외
다양한 가족 관계 법으로 인정하는 '생활동반자법' 요구 커져
아직 발의 준비 단계.. "가족을 '사회 유지 수단'으로만 보지 말아야"
"'사회 유지 수단'으로 보는 정책 패러다임 전환해야"
”’비혼 동거'도 가족으로 인정받을 수 있나요”

[파이낸셜뉴스] 비혼 동거 가정 등 다양한 형태의 가족이 늘어나면서 가족 개념이 확장되고 있는 가운데 법으로 이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시민사회와 여성계는 "'가족'의 정의가 변화하고 있다"면서 제도 마련을 통해 이들의 권리가 보장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행법상 가족으로 인정 안돼 소외되는 '제도 밖 가정'
26일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등에 따르면 비혼동거 등 다양한 가족 형태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이 확대되고 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지난 22일 발표한 '차기 정부에 바라는 가족·돌봄정책 수요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2000명 가운데 62.7%가 현행 법률에서 인정하는 가족의 범위를 사실혼과 비혼 동거까지 확대해야 한다고 답했다. 또한 생계·주거를 함께 하는 사람에 대해 배우자에 준하는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법률(생활동반자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의견에도 67.4%가 동의했다.

시민사회는 이번 여론조사 결과에 변화한 시대상이 반영됐다고 해석했다.
이종걸 가족구성권연구소 연구위원은 "단순 법률혼을 넘어 어떠한 사람과 살아갈 때 본인이 '나다워질 수 있는 지'를 고민하는 시대가 됐다"며 "그 결과 비혼동거 등 다양한 형태의 가족이 증가하게 된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건강가정기본법 등 현행 법에서 가족을 '혼인·혈연·입양으로 이루어진 사회의 기본단위'로 규정하고 있는 탓에 제도권 밖 가족 유형이 소외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영정 서울시여성가족재단 연구원은 "가족관계를 증명할 길이 없기 때문에 동거인이 부모상을 당해도 경조사 휴가조차 받을 수 없는 것이 이들의 현실"이라며 "주거 지원에서 제외되는 것은 물론 병원이나 수술, 장례 등 긴급한 상황에서도 동거인에겐 보호자로서의 아무런 권한이 없다"고 설명했다.

실제 여성가족부와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지난 9월 발표한 '비혼동거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동거 중이며 자녀가 있는 경우 '출생 신고시'(52.3%), '의료기관에서 보호자를 필요로 할 시'(47.3%) 어려움을 경험했다고 응답했다. 또 65.4%가 수술 동의서 등 의료적 결정 시 동거인을 법적 배우자와 동일하게 인정하도록 하는 법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사회적 합의 거쳐 '제도 밖 가정' 권리 인정돼야
여성계는 제도 밖 가정들이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서는 '생활동반자법'의 제정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생활동반자법은 혼인 여부에 관계 없이 생계·주거를 함께 하는 관계를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법 제도상 가족에 준하는 권리를 보장하는 법을 말한다.

송효진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이미 프랑스의 경우 1999년 결혼 제도 밖에 있는 가족의 관계도 법적으로 인정하는 팍스(PACS) 제도를 시행해 정착해왔다"며 "해외 사례를 선례로 삼아 법적 사각지대에 놓인 제도권 밖 가족 공동체들의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고 했다.

국내에서는 지난 2014년 진선미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발의를 추진했지만 정치권 등의 반대에 부딪혀 불발됐다. 이후 여성가족부가 지난 4월 제4차 건강가정기본계획을 발표하고 가족 다양성을 포용하는 사회적 기반을 구축하겠다고 밝히면서 올해 들어 관련 논의가 활성화됐다.

전문가들은 여가부의 당시 발표를 '가족 다양성' 논의의 중요한 진전으로 평가하면서도 사회적 합의를 위한 충분한 논의가 이어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김 연구원은 "팍스 제도도 처음에는 동성 커플의 법적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만들어졌던 제도지만 사회적 합의를 거치며 다양한 가족 형태까지 적용이 확대됐던 것"이라며 "국내 생활동반자법도 이같은 꾸준한 논의를 거치며 개선된 초안을 만들어가면 된다"고 했다.


이 연구위원은 "국가가 '사회 유지의 수단'으로 인식해 왔던 가족 정책 패러다임을 전면 전환할 필요가 있다"며 "가족은 어떠한 형태로든 개인이 선택할 수 있어야 하며, 그 선택에 있어 설령 비혼 동거의 형태더라도 권리를 인정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nodelay@fnnews.com 박지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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