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곽인찬 칼럼] 노동이사제, 청년은 분노한다

곽인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1.12.27 18:00

수정 2021.12.27 18:00

[곽인찬 칼럼] 노동이사제, 청년은 분노한다
문재인 대통령부터 이재명·윤석열 후보까지 다 공공부문 노동이사제 도입에 찬성이다. 노동계는 한껏 고무됐다. 재계는 바싹 긴장했다. 지금 노동이사제는 올바른 정책인가? 나는 신중해야 한다는 쪽이다. 청년고용이 염려돼서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은 이 분야의 선구자다.
2016년에 조례를 만들었고, 2017년에 1호 노동이사가 서울연구원에서 탄생했다. 서울시 산하 17개 지방공기업에서 22명의 노동이사가 활동 중이다(2020년 2월 기준). 문 정부는 공공부문 노동이사제 도입을 100대 국정과제에 담았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반드시 추진해야 할 과제"라고 말했다.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가 가세한 것은 뜻밖이다. 윤 후보는 한국수력원자력의 예를 들며 "이사회에 노동이사가 들어가면 (탈원전으로) 일자리가 없어지는데 그냥 뒀겠느냐"고 반문했다.

노동이사제는 근로자 대표가 이사회 멤버로 심의·의결에 참여하는 제도다. 글로벌 모델인 독일은 이사회를 감독이사회와 경영이사회로 나눈다. 노동이사는 상위 조직이라 할 감독이사회에 속한다. 500명 이상 기업은 감독이사회의 3분의 1, 2000명 이상 기업은 2분의 1을 노동이사로 채워야 한다.

사실 국내에서도 여러 차례 시도가 있었다. KB국민은행 노조는 2017년부터 노동자를 대변하는 사외이사를 주총에서 꾸준히 추천했으나 번번이 실패했다. 그러다 올 9월 국책 수출입은행에서 노조추천이사가 처음 나왔다. 기업은행 노사도 '노조추천이사제를 유관기관과 적극 협의해 추진한다'고 합의한 상태다. 금융권 노조추천이사는 근로자가 아니라 제3자 전문가라는 점에서 노동이사제의 전 단계라 할 만하다.

재계는 결사반대다. 발에 모래주머니 다는 걸 누가 좋아하겠는가. 지금도 노조는 힘이 세다. 노동이사는 날개를 다는 격이다. 삼성전자도 미국에 반도체 공장을 짓기 전에 먼저 노동이사 눈치부터 살펴야 할 것이다. 재계는 노동이사제가 공공을 거쳐 점차 민간으로 번질 걸로 본다.

지난주 민주당 이동학 최고위원(39)이 귀가 쫑긋할 이야기를 했다. 청년 몫인 이 최고위원은 선대위에서 노동이사제가 "청년고용의 문턱을 더 높이진 않을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이어 "정년연장을 하면서 패키지로 논의된 (부실한) 임금피크제가 청년고용의 문을 더 좁아지게 했던 우리 당의 과오를 되풀이해선 안 된다"고 덧붙였다. 노동이사제를 청년 일자리와 연결 지은 이 최고위원의 식견에 격하게 공감한다.

노동이사제는 순기능이 있다. 경영 독단을 견제하고, 근로자의 능동적인 협력을 이끌어낼 수 있다. 길게 보면 무조건 배척할 일은 아니다. 강제가 아니라 기업 자율에 맡긴다는 전제 아래서다.

그러나 청년 일자리를 생각하면 이내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지금도 양질의 일자리는 공기업·대기업 강성 노조가 틀어쥐고 있다. 국내 최강 기득권이다.
이 마당에 노조가 노동이사 자리까지 차지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만약 노조와 노동이사가 손잡고 정년을 65세, 70세로 쭉쭉 올리면? 기득권에 끼지 못한 청년들은 한데서 더 오래 벌벌 떨 수밖에 없다. 노동이사제는 청년 분노를 부를 수 있다.
누구든 노동이사제를 옹호하는 이라면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대목이다.

paulk@fnnews.com 곽인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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