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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사이 줄타기만 하다간 한국이 지워진다 [2022 신년기획]

장민권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2.01.05 16:44

수정 2022.01.05 16:44

막오른 공급망 패권전쟁 (2) '수출' 한국의 선택은
자동차·반도체·이차전지
핵심 원자재 대부분 中의존
운송·난방·발전용 LPG원료
대미 수입의존도 90% 이상
한국이 경쟁력 보유한 산업
美중심 공급망 재편 확대
결국 어느편에 설지 골라야
대중 원자재 의존도 낮출
정부 차원 정책 서둘러야
미-중 사이 줄타기만 하다간 한국이 지워진다 [2022 신년기획]

'Designed by Apple in California Assembled in China'(캘리포니아에 있는 애플이 디자인하고 중국에서 조립함).

애플 전자기기 후면에 각인돼온 이 상징적 문구는 최근 바뀌거나 아예 사라지는 추세다.

이제 중국만이 아닌 인도, 베트남 그리고 미국 텍사스 등으로 제품 생산지역을 다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탈중국'으로 대변되는 글로벌 공급망 변화를 나타내는 단적인 사례다.

유럽연합(EU)이 지난해 7월 세계 최초로 국제무역에 탄소세를 부과하는 '탄소국경조정세' 도입을 발표했다.

국제무역에서 교역상대국에 탄소세를 적용하는 것은 처음이다. 에너지 집약산업 중심의 수출로 탄소세 부과 최대 피해국이 된 중국·러시아 등은 EU에 보복조치를 예고하고 나섰다.


EU는 추가 세수 효과와 함께 경쟁국들의 유럽시장 진입 문턱을 높이며 유럽 제조업을 보호하는 효과가 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패권 다툼으로 글로벌 공급망 질서가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코로나19 장기화 사태까지 겹치며 글로벌 가치사슬(GVC)은 해체 수준에 버금가는 전면 재편 수순에 들어섰다. 주요국들이 자국중심주의를 앞세워 공급망 다변화를 골자로 한 지원책을 쏟아내는 가운데 대외 의존도가 높아 공급망 충격에 취약한 우리나라는 어느 때보다 선제적이고 기민한 대응을 요구받고 있다. 핵심 소재·부품·장비 등 산업안보, 미래산업과 관련된 기업들에 대한 지원책을 마련하는 동시에 시장 다변화를 통해 안정적인 공급망 관리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수입품 30% 이상 한 나라에 의존

5일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에 따르면 2021년 1~10월 기준 1만2588개 수입품 중 특정국에 80% 이상 수입의존도가 높은 품목은 총 3911개다. 30%가 넘는 수입품이 사실상 단일국에 의존하고 있어 공급망 교란에 매우 취약한 형태다. 이 중 절반에 달하는 1856개(47.4%)가 중국에 집중됐고 미국(498개·12.7%), 일본(429개·10.9%)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중국 의존도가 높은 수입품 상당수가 제조업 생산에 필수적인 원자재라는 점이다.

지난해 물류대란을 일으킨 요소수는 중국 수입의존도가 95.2%에 달했다. 자동차 차체, 차량용 시트 프레임, 항공기 등 부품 경량화 작업에 필요한 알루미늄합금을 생산하는 데 필수 원료인 마그네슘잉곳은 100% 중국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반도체, 이차전지 등 생산에 필요한 산화텅스텐, 네오디뮴 영구자석, 수산화리튬 등도 중국 수입비중이 80% 이상인 품목이다. 또 프로판·부탄 등 운송·난방·발전용 액화석유가스(LPG) 연료는 대미 수입의존도가 90% 이상으로 나타났다.

글로벌 공급망 불안정은 기업들의 경영활동 불확실성을 한층 가중시키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2020년 5월 발표한 조사에 따르면 글로벌 공급망 타격으로 인해 기업활동에 차질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응답한 국내 기업 비율은 56.7%로 절반을 넘었다.

오미크론 변이 확산 등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는 주요 산업의 공급차질과 수요절벽으로 인한 글로벌 산업구조 재편을 부추기고 있다. 생산기지가 밀집된 동남아 등에서 공장 가동이 중단되는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하면서 주요국들이 필수품목과 핵심 전략물품에 대해 자국 내 생산을 유지해야 할 필요성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美 주도 공급망 재편 올라타야"

주요국들은 구조적인 원자재 수급 차질 우려가 확대되는 구조적 공급망 리스크에 직면하면서 선제적으로 대응해 중장기적으로 공급망의 핵심 부문을 내재화하기 위해 산업정책을 강화하고 있다. 미국은 지난해 △반도체 제조 및 첨단패키징 △전기차 배터리 등 대용량 배터리 △핵심광물 및 소재 △의약품 및 원료의약품을 4대 핵심품목으로 선정했고, 올해 품목을 더 확대할 계획이다.

전문가들은 중장기적으로 반도체, 배터리 등 한국이 경쟁력을 보유한 분야에서 미국 지원이 확대되는 방향으로 공급망이 재편되면서 한국 기업이 반사이익을 누릴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의 공급망 재편전략은 제조 경쟁력을 갖춘 국가들과 협력을 통해 안정적인 공급망을 미국 중심으로 구축하는 것이 목적이라는 이유에서다.


특히 미국 주도의 공급망 재편은 미국 기업의 본국 회귀(리쇼어링)와 더불어 해외 기업들의 투자유치 의도까지 담긴 만큼 우리도 미국 내 생산설비 증설 관련 투자 확대 및 연구개발(R&D)을 통한 기술협력 추진 등 동맹국과 공조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또 대중국 원자재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정부 차원에서도 생산거점 다변화와 규제개선, 해외진출 지원 등 기업활력을 제고할 보완정책을 모색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윤여준 연구원은 "우리 기업 입장에서는 본격적인 미국 중심의 공급망 재편전략에 맞춘 리스크 관리 및 공급망 다변화 전략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면서 "각 기업별로 자사가 속해 있는 공급망 구조를 파악하고 자연재해, 미·중 갈등, 팬데믹 등 외부충격에 따라 예상되는 공급망 리스크를 사전에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mkchang@fnnews.com 장민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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