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사회

[기고] 카자흐스탄 사태가 던지는 우리의 과제

김경수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2.01.11 10:23

수정 2022.01.11 10:23

[파이낸셜뉴스]
오은경 동덕여대 교수
오은경 동덕여대 교수
2022년 새해 벽두부터 세계를 긴장시킨 카자흐스탄 유혈사태는 8000여 명이 체포되고, 200여 명의 사망자를 낸 후 진정이라기보다는 '진압' 국면에 접어든 것으로 보인다.

카자흐스탄 유전지대인 망기스타우주(州) 자나오젠에서 2일 차량용 액화천연가스(LNG) 가격 폭등 불만으로 시작된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격화되면서 최대 도시 알마티 시청 청사와 대통령 관저가 불탔고, 초대 대통령 나자르바예프 동상이 파괴되었다.

카자흐스탄은 세계에서 9번째로 큰 영토를 보유한 나라이다. 이 방대한 땅에는 멘델레예프 원소 주기율표에 등장하는 모든 자원이 매장되어 있다. 카자흐스탄의 우라늄 생산량은 세계 1위로 전 세계 소비의 40%를 책임지고 있고, 석유는 세계 12위로 OPEC 플러스(+)에서 러시아의 뒤를 잇는 산유국이다. 가스 또한 세계 15위권 안에 든다.


이렇게 에너지 산업으로 경제가 유지되는 나라에서 LPG 가격 인상으로 폭동이 일어났다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문제는 바로 거기에 있다. 에너지 자원을 기반으로 거의 모든 국부가 창출되고 있다는 데 구조적 문제가 있다. 게다가 카자흐스탄 국내 에너지 산업은 정부와 유착관계에 있는 특정 기업이 독점하며 통제받지 않는 무한 이익을 창출해왔다. 에너지와 광물 가격이 폭등하자 이 기업들은 이러한 분위기에 힘입어 무제한 이윤 창출을 욕망했고, 정부는 통제력을 상실했다. 더구나 코로나 팬데믹 사태로 민생은 파탄이 나고 있는데도, 정부는 기업의 무한 이익 창출을 위해 LPG 가격 상한제를 폐지해버렸다. 분노가 누적된 시민들이 마침내 폭발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대다수 카자흐인은 휘발유보다 저렴한 LPG를 사용하기 위해 자동차를 개조한다. 주요 도시 차량용 LPG 이용률은 90%에 달해서, LPG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길거리 연료'라 불릴 정도다. LPG 가격 상한제를 도입해 시중보다 저렴하게 가스를 공급하고 가스 가격이 상한가를 초과할 때 정부 보조금으로 메우는 방식으로 연료 시장을 운영해오던 정부가 특정 기업의 편을 들어 LPG 가격 상한제를 폐지하자 성난 민심에 불이 붙고 말았다. 사태 수습을 위해 토카예프 대통령은 상한선을 풀고 난 후 두 배 이상 폭등한 LPG 가격을 L당 50텡게(약 137.5원)로 인하했다.

다행스럽게도 카자흐스탄 사태는 어느 정도 진정국면으로 들어섰지만 향후 토카예프 대통령이 풀어갈 문제들은 그리 간단치 않아 보인다. 1991년 카자흐스탄 독립 이전부터 초대대통령으로 30여년 장기집권 후 2019년 3월 자진퇴임한 뒤에도 '상왕'의 역할을 해온 나자르바예프 전 대통령은 "노인은 가라"라는 국민의 외침을 피해 국외로 도피했다. 가족들의 부정부패와 막대한 비자금을 챙긴 독재자가 사라지고, 내부 권력다툼의 승자가 되었지만, 토카예프 대통령이 풀어야 할 산업구조의 개편과 민심을 얻을 수 있는 개혁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것은 풀기 쉽지 않은 과제들이다. 더욱이 반정부 시위 진압을 위해 끌어들인 '외국 군대'는 풀어가야 할 큰 난제가 아닐 수 없다.

카자흐스탄은 이미 미국, 러시아, 중국의 각축전이 되어가고 있다. 집단안보조약기구(CSTO)는 병력 상당수가 러시아 공수부대로 이루어진 평화유지군을 파병했다. 중국도 러시아와 함께 카자흐스탄 정부를 적극 지원하겠다며 거들고 있다. 엑손모빌과 셰브론이 유전을 개발하고 있는 미국은 이런 움직임에 불편한 기색을 역력히 드러내고 있다.

반정부 시위를 '이슬람 테러리스트 개입'으로 규정하고 내전 상황이 아닌데도 외세를 개입시킨 정부 대응에 반대하는 시위가 국외에 거주하는 카자흐스탄 국민들에 의해 전개되고 있다. 외세 개입에 부정적인 카자흐스탄 국민의 반(反)러 감정은 더욱 심화할 것이다.

카자흐스탄에서 미ㆍ러ㆍ중 강대국의 각축전이 벌어지는 것은 '에너지 자원의 보고'라는 지경학적 이유 때문이다. 오랜 독재와 정경유착 그리고 외세를 거부하고자 하는 카자흐스탄 국민의 열망이 커가는 가운데 카자흐스탄은 분명 '변화'하고 있다.
이번 유혈사태는 그런 역동적인 변화의 에너지가 분출한 것이다. 혼란과 위기로 점철된 변화 속에 오히려 한국의 기회가 있을 수 있다.
한국 정부가 카자흐스탄의 변화에 상응하는 '외교력'과 '정치력'을 키워나가길 기대한다. /오은경 동덕여대 교수, 유라시아투르크연구소장

rainman@fnnews.com 김경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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