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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대선지식창고] 끝까지 간다 : 대선 재수, 삼수에 도전한 후보들

2022 대선 후보 정보 > 이재명 윤석열 심상정 안철수
-2022대선 후보 심상정, 안철수 대선 재수에 도전하다
-과거 김대중 대통령은 4번 만에 대통령에 당선, 이회창 후보는 3번 도전하는 의지 보여줘 

[2022대선지식창고] 끝까지 간다 : 대선 재수, 삼수에 도전한 후보들
대통령의 꿈을 이루기 위해 낙선 후에도 오뚜기처럼 다시 일어난 역대 대통령 후보들. ⓒ파이낸셜뉴스

칠전팔기 내 인생, 끝까지 가볼래!

-가수 윤미래의 곡 'Memories...’ 中

[파이낸셜뉴스] 종종 외신은 우리나라 국민을 불굴의 의지를 지닌 민족이라 칭하죠. 임진왜란, 새마을 운동, 대통령 탄핵… 오랜 역사에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마음으로 나라를 지키고 일으켜왔기 때문입니다. 우리 민족의 특출난 목표 의식과 애국심은 대선에서도 돋보입니다. 여기, 나라를 올바르게 이끌겠다는 의지를 불태우며 대선에 도전하고, 또 도전하는 후보들이 있습니다.

‘반듯한 대한민국’이 될 때까지, 삼세판!

-이회창 전 국회의원

[2022대선지식창고] 끝까지 간다 : 대선 재수, 삼수에 도전한 후보들
이회창은 1996년 국회의원에 당선된 후 정치를 시작했다. 1997년 15대 대통령 선거에 낙선한 후 1999년과 2000년 국회의원에 당선되었지만 2002년, 2007년 대선에서는 승리하지 못했다. ⓒ fnDB, 2017년 8월

이회창은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에 입학한 뒤 서울지방법원 판사, 대법원 대법관, 제26대 국무총리로 활약했던 인물입니다. 판사로 일할 당시 군사 정권의 압박에도 소신껏 판결을 내리는 것으로 유명해 ‘대쪽 판사’라는 별명으로 불렸는데요. 그가 정치에 입문한 것은 1996년 신한국당에 입당하면서 부터 입니다.

이회창은 국회의원 선거에서 4번이나 당선됐지만 대통령 선거에서 3번 낙선하며 롤러코스터 같은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전국구(지금은 없어진 선출 제도) 1번으로 출마해 34.52%의 득표율을 달성하며 대통령이 되기 위한 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는데요.

1년 뒤 한나라당을 대표해 제15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 총력을 다해 38.74%의 득표율을 올렸지만 40.27% 득표율을 가져간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 당시 후보에게 밀려 낙선했습니다. 그는 1999년 재보궐 선거에,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해 다시 국회의원이 되었죠. 연이어 도전한 2002년 제16대, 2007년 제17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낙선의 쓴맛을 봐야했습니다.

이회창은 제18대, 제19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선거는 2008년 자유선진당 소속으로 출마한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인데요. 충남 홍성군예산군 지역구에서 무려 60.99%의 득표율을 기록하는 기염을 보여주었습니다.

대신 이회창은 2012년 새누리당 제18대 대선 주자였던 박근혜를 지지하기 위해 새누리당에 입당했습니다. 이후 2017년에는 바른정당에 가입해 제19대 대선에 출마한 유승민 당시 의원을 공개적으로 응원했죠. 같은 해 자서전 <이회창 회고록>을 출간하며 자신의 생각을 글로써 세상에 공개하며 정치 인생을 돌아보기도 했습니다.

삼세판에서 한 판 더, 평화를 위한 4번의 도전

-김대중 제15대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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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균 전 국무총리가 김대중 대통령과의 추억을 회상하며 공개한 사진. ⓒ정세균 전 국무총리 페이스북, 2020년 12월

김대중 제15대 대통령은 대한민국 최초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하며 대한민국을 세계에 알렸습니다. 그는 일제강점기 전남 신안군에서 태어나 목포일보, 흥국해운을 운영하며 청년 시절을 보냈는데요. 1959년 민주당에 입당한 후 김영삼, 김종필과 함께 활약하며 정치계 유명인사가 되었습니다.

김대중이 대통령에 당선되기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1954년 생애 처음으로 제3대 국회의원 선거 전남 제2선거구에 무소속으로 출마했지만, 민주국민당 정중섭 후보에 밀려 낙선했고 제4대,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좋은 결과를 얻지 못했죠.

그는 1960년 제5대 국회의원선거에서 강원 제15선거구에 출마해 마침내 국회에 입성합니다. 하지만 당선 이틀 뒤 5.16 군사정변이 발생, 국회가 해산되면서 고배를 마셔야 했습니다. 1960년에는 아내 차용애 여사마저 세상을 떠났습니다. 1971년에는 교통 사고로 다리를 크게 다쳤고, 1973년에는 납치를 당해 고초를 겪는 등 그야말로 파란만장한 인생이 이어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무려 4번의 대선을 치뤘습니다. 1971년 제7대, 1987년 제13대, 1992년 제14대, 1997년 제15대 대선에 이르기까지 도전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1995년 제15대 대통령 선거에서 40.27%의 높은 득표율을 거두며 승기를 들어올렸죠. 고생 끝에 낙이 오듯, 꿈에 그리던 대통령이 된 그는 민주주의와 평화를 위해 헌신하며 임기를 보냈습니다.

‘넘사벽 스펙’으로 한번 더 도전!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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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사업가, 교수 이력으로 화제가 된 안철수는 제18대, 제19대 대통령 선거에서 못다 이룬 대통령의 꿈을 이루기 위해 제20대 대통령 선거 준비에 한창이다. ⓒ뉴시스, 2022년 1월

안철수는 2013년 4월, 국회의원 선거 재보궐 선거를 기점으로 정치계에 입문했습니다. 의사, 벤처사업가, 교수 이력을 가진 그는 정치에 도전하기 전부터 많은 사람의 존경을 받던 인물이었습니다. ‘설정 과다(인물의 조건이나 이력이 지나치게 완벽함을 이르는 시쳇말)’스펙을 가진 그가 국회의원 선거 출마를 선언하자, 국민은 물론 정치계 인사들의 관심이 집중되었습니다.

그는 2016년 국민의당을 창당, 당 대표가 된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대통령의 꿈을 세상에 공개하고 대선에도 출마했습니다. 2018년 제18대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통합당 문재인 당시 후보와 단일화를 시도했지만, 협상이 결렬되어 후보직을 사퇴했습니다. 2017년 제19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3위에 그치며 낙선의 맛을 봐야 했죠. 그리고 2022년, 그의 무기인 꾸준하고 성실한 성격으로 제20대 대선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안철수의 지난 제19대 대선과 이번 제20대 대선,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많은 평론가가 그의 토론 실력이 '일취월장'했다고 말합니다. 제19대 대선에서 안철수는 TV 토론회에 등장할 때마다 ‘말빨’이 밀린다는 비판을 피하지 못했는데요.

화제에 오른 부인 김미경 씨의 ‘갑질’ 논란을 간접적으로 언급하며, 문재인 당시 후보에게 "제가 갑철수입니까, 안철수입니까?"라고 물은 것이 오래도록 회자되기도 했습니다. 토론회 이후 그의 지지율은 점차 하락했습니다. 대선 결과 투표율 3위(전체 투표율 중 21.41%)라는 결과를 받아들여야 했죠.

일부 지지자들은 제19대 대선 TV 토론회를 기점으로 안철수에게 토론이 트라우마처럼 남을 것이라 예상했습니다. 하지만 202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 금태섭, 오세훈 후보와 단일화를 위해 치룬 토론에서 그는 확연히 달라져있었습니다. 유창한 언변에 많은 국민이 그를 치켜세웠고, 국민의힘 홍준표 의원도 SNS에 안철수의 성장을 칭찬하는 글을 올리기도 했죠.

눈부신 성장을 증명하며 국민들에게 이전과 다른 모습을 확실히 각인한 안철수.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라는 문장을 증명하는 ‘성장형’ 후보로 자리잡을 수 있을지 기대해봅니다.

어딜 뺏겨, 대통령을. 그치?

-정의당 심상정 후보

[2022대선지식창고] 끝까지 간다 : 대선 재수, 삼수에 도전한 후보들
노동권과 소외 계층에 대해 꾸준한 관심을 보이며 국회의원 생활을 이어온 심상정. 심상정은 제19대 대통령 선거에 이어 제20대 대통령 선거에도 출마를 선언했다. ⓒ뉴스1, 2022년 1월

심상정은 2004년 민주노동당 비례대표국회의원선거에서 당선된 후 쭉 정치의 길을 걸어온, 정치계의 베테랑입니다. 그는 대학생 시절부터 성평등을 실천하기 위해 여성으로만 구성된 운동권 모임을 만드는 등 사회 문제에 많은 관심을 보였는데요. 국회의원이 된 후에도 서민의 삶과 노동 현장에서 일어나는 고충을 해결하고자 노력해 왔습니다.

안철수와 마찬가지로 심상정도 2017년 제19대 대선을 통해 대통령의 꿈을 확고히 했습니다. 2017년 3월 박근혜의 탄핵이 결정되기 전인 2월 16일, 당시 대선 후보들 가운데 첫번째로 예비 후보 등록을 마치며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뜨거운 의지를 보여주었죠. 비록 개표 결과 5위(전체 투표율 중 6.17%)에 그쳤지만, 청소년층 모의투표율에서 두 번째로 높은 지지율(전체 투표율 중 36.2%)을 얻으며 변화를 지향하는 Z세대의 표심을 사로잡았습니다.

심상정 후보는 이번 대선에서도 다양한 노동 정책 및 복지 정책으로 20대 청년층을 공략할 예정입니다. 실제로 그의 1호 공약인 주 4일제를 비롯해 전국민 육아 휴직제도, 신노동법 등이 공개될 때 마다 2030 세대가 관심을 보내고 있죠.

또한 심상정은 제19대 대선과 마찬가지로 차별 금지법의 가치를 호소하고 있습니다. 2017년 대선 후보 TV 토론회에서 카리스마 넘치는 목소리로 동성애에 반대한다는 후보들에게 쓴 소리를 했던 그. 동성애 반대 단체의 비난이 이어졌을지언정, 많은 국민이 성 소수자의 인권을 국가에서 보호해야 한다는 그의 말에 큰 울림을 받았죠. 그로부터 4년 뒤인 현재까지도 그는 모든 국민들이 편견으로부터 자유롭고 편안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길 희망하고 있습니다.

‘또철수,’ ‘또상정’이 들려주는 메시지

-비록 제3지대에 있더라도, ‘가보자고’

2021년 우리나라 MZ세대를 강타한 유행어 가운데 ‘가보자고’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이 표현은 아이돌 가수 ‘더보이즈’의 팬덤이 Mnet의 프로그램 <로드 투 킹덤>에 나간 가수를 1위로 만들어주기 위해 SNS 해시태그 이벤트를 했던 것에서 유래됐는데요. 팬덤의 노력 덕분에 ‘더보이즈’가 해당 프로그램에서 기적적으로 1위를 탈환하게 되면서, 이 표현은 청년들 사이에서 동력을 유발하는 주문처럼 쓰이고 있습니다.

어쩌면 제3지대에서 고군분투하는 안철수, 심상정 후보도 또다른 ‘가보자고’의 상징이 될 지도 모릅니다. 끊임없이 대통령에 도전하는 후보가 결국 국민들의 마음을 감동시킬 수도 있으니까요. 우리에게 ‘성공은 운에 따른 것이 아니며,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정설을 믿게 해줄 대통령이 나타나는 그 날, 국민들이 살기 좋은 대한민국이 펼쳐질 것이라 기대해봅니다.

cyj7110@fnnews.com 조예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