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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영 칼럼] 남북 평화쇼의 허무한 종영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2.01.17 18:00

수정 2022.01.17 18:35

논설위원
[구본영 칼럼] 남북 평화쇼의 허무한 종영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부터 매달렸던 한반도 종전선언이 미궁에 빠졌다. 북한이 정초부터 올림픽 불참을 공식화하고 극초음속 미사일을 쏘아올리면서다. 이 바람에 중국 베이징올림픽 무대서 상영하려던 '평화 쇼'도 사실상 무산됐다. 청와대도 문 대통령이 내달 베이징에 가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문재인정부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가 벽에 부딪힌 형국이다.

임기 초반 문 대통령은 한반도 현안을 다루는 '운전자'를 자처했다. 그때만 해도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도 몇 차례 옆자리에 동승하는 척했다. 판문점 도보다리 회담 등 3차례 남북 정상회담과 싱가포르와 하노이에서 열렸던 미·북 정상회담이 그런 사례다.

그러나 평화 무드는 오래가지 않았다. 애초 김정은 정권이 핵·미사일을 포기할 뜻이 없었던 탓이다. 그는 하노이 회담에서 보유 중인 핵전력 중 노후화한 영변 핵시설과 대북제재 해제를 맞바꾸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이 꼼수가 미국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퇴짜를 맞자 북한은 문 정부에 화풀이를 시작했다. 남북 통신선을 끊거나 남북연락사무소를 폭파한 게 단적인 사례다.

그러던 북한이 새해 벽두 핵탄두를 탑재할 수 있는 극초음속 미사일을 연거푸 쏘아올렸다. 실전배치 시 우리 군의 각종 요격미사일은 무용지물이 된다. 마하 10 속도로 서울까지 1~2분 만에 날아오는 데다 회피 기동으로 요격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극초음속 미사일은 북한 정권의 입장에서 군사·외교 양면에서 '게임 체인저'다. 문 정부로부터 더는 얻을 게 없다고 보고 차기 정부와 미국을 동시에 압박하는 카드여서다. 그런데도 범여권은 대북 짝사랑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인상이다. 문 대통령도, 국방부도 도발이라는 표현을 한사코 자제하면서 "우려"와 "유감"만 표명했다. 심지어 여당 지도부는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북한의 극초음속 미사일에 대한 대응책의 하나로 선제타격을 거론하자 "호전적 지도자"니 "전쟁광"이라느니 하며 맹비난했다.

그러나 여권 지도부의 흥분은 번지수가 틀렸다. 윤 후보는 "(북한의 극초음속 미사일에) 핵이 탑재되면 '킬 체인(Kill chain)'이란 선제타격밖에 막을 방법이 없다"고 했다. 당연한 얘기다. 문 정부를 비롯한 역대 정부의 북 핵·미사일 대응 매뉴얼인 이른바 '3축 체계' 속에 선제타격을 가리키는 '킬 체인' 구축이 엄연히 포함돼 있다.

3축 체계는 ①킬 체인 ②한국형 미사일방어체계(KAMD) ③대량응징보복(KMPR)으로 구성된다. 어차피 ②를 통해 완벽한 요격 성공이 불가능하다면, 공격을 당한 뒤 보복하는 ③보다 ①(북 핵·미사일 발사 기미를 미리 탐지해 타격)이 상책이다. 국가가 ① 옵션을 부인한다면 국민의 생명을 지킬 의무를 포기하겠다는 말이 된다.


문 정부 들어 그토록 평화를 외쳤지만, 북한의 미사일 도발 횟수는 이명박·박근혜정부 때를 합친 것보다 훨씬 많다. 임기 말까지 '평화 쇼'에만 집착하는 현 정권의 행태는 '튼튼한 안보를 기반으로 대북 화해'를 표방했던 김대중정부 때보다도 퇴행적으로 비친다.
남북 대화와 교류의 당위성과 별개로 북한의 가공할 '평화파괴 능력'(핵·미사일 보유)을 경시해선 평화도, 통일도 공염불이 될 수밖에 없다.

kby777@fnneww.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