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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주정차에 과속에… 노인보호 못하는 '노인보호구역'

제한속도 30㎞·주정차 금지
교통단속장비 설치율 2%
홍보부족에 인지도 부족
시장·역·터미널·병원주변 등
사고 다발지역 실버존 지정 필요
17일 오후 방문한 서울 종로구 락희거리 일대 노인보호구역(실버존)이 불법 주정차된 차량들로 어지러운 모습이다. 이 곳을 보행하던 시민 다수는 실버존의 존재에 대해 알지 못했다.
17일 오후 방문한 서울 종로구 락희거리 일대 노인보호구역(실버존)이 불법 주정차된 차량들로 어지러운 모습이다. 이 곳을 보행하던 시민 다수는 실버존의 존재에 대해 알지 못했다. 사진=박지연 기자
불법 주정차에 과속에… 노인보호 못하는 '노인보호구역'
"여기가 노인보호구역이라고? 매일 오가지만 오늘 처음 알았네요." 17일 오후 서울 종로구 락희거리 일대에서 만난 80대 오모씨는 이같이 말했다.

종로 락희거리 일대는 지난 2017년 노인보호구역(실버존)으로 지정돼 스쿨존과 마찬가지로 통행속도가 시속 30㎞로 제한되며 주·정차 또한 금지된다. 하지만 이날 방문한 락희거리는 '실버존'이란 이름이 무색하게 노인 대다수가 실버존 여부를 모르고 있었다. 보행로는 불법 주·정차된 차량 여러 대가 막고 있었고, 오토바이들은 불법 주·정차 차량 사이를 비집고 지나가는 등 위험한 모습도 연출됐다.

보행자 사고가 잇따르는 가운데 노인 보행자 사고 예방을 위한 제도가 제 구실을 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노인 보행자를 보호하는 노인보호구역은 그 개수부터 관리까지 전반적으로 미흡하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고령 보행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노인 보행자 특성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실버존 교통단속장비 2% 그쳐

17일 도로교통공단 등에 따르면 2020년 국내 노인 보행자 교통사고 건수는 9739건에 달한다. 이중 사망자 수는 인구 10만명 당 9.7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압도적 1위를 기록했다.

최근 노인 보행자 사망사고는 연이어 발생하고 있다. 지난 13일 충북 청주시 소재 한 도로에서 길을 건너던 70대 A씨가 경차에 치여 숨을 거뒀다. 사고가 난 장소는 노인보호구역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22일에는 18개월 손녀와 길을 가던 60대 여성이 부산 수영팔도시장 입구에서 차에 치여 목숨을 잃었다.

전문가들은 노인 보행 보호를 위해 실버존 확충과 더불어 미흡한 기존 실버존 관리도 개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간 실버존은 스쿨존 대비 시설 면에서 부족한 상황에 놓여왔다는 것이다.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시 내 스쿨존으로 지정된 곳은 1741곳인 반면 실버존은 164곳에 불과하다. 또 스쿨존 내 무인 교통단속장비 설치는 법으로 의무화돼 있지만, 실버존 내 단속장비 설치는 법에서 강제하고 있지 않아 지난 2020년 기준 실버존 내 단속장비 설치율은 2% 남짓인 것으로 파악됐다.

이에 "노인 보행자 사망은 안일한 인식이 낳은 결과"라는 지적이 나온다. 최재원 도로교통공단 교수는 "속된 말로 아이가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으면 사회적으로 이슈화가 돼 제도 개선까지 이어지지만 노인이 길을 가다 차에 치여 목숨을 잃으면 큰 관심을 받지 못한다"며 "2025년이면 우리나라도 초고령사회에 진입하는 만큼 고령 보행자에 대한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노인 보행자에 대한 인식 변화해야

또 현행 도로교통법상 실버존은 노인 복지 시설 인근에만 설치가 가능해 실제로 노인 보행 사고가 많이 일어나는 구역에 대한 보호는 어렵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현행 도로교통법에 따라 실버존은 양로원·경로당·노인복지시설 등 인근에 설치될 수 있지만 도로교통공단에 따르면 2020년 노인 보행자 교통사고가 가장 많이 발생한 장소는 시장(65%), 역·터미널 주변(14%), 병원주변(12%) 순으로 나타났다.


이수범 서울시립대 교통공학과 교수는 "실버존에 대해서는 각 지역마다 지자체장이 자율적으로 노인 보행 사고 다발지역을 실버존으로 지정할 수 있도록 권한을 추가로 부여해야 한다"며 "어르신들의 활동 반경을 구체적으로 파악해 실버존 설치에 반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노인 보행자의 특성에 대한 운전자의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박무혁 도로교통공단 교수는 "노인 보행자들은 도로에서의 인지 능력, 위험한 상황을 판단하고, 이를 피할 수 있는 신체 능력 모두가 퇴화될 수밖에 없다"며 "운전자가 이들의 특성을 인지하고 실버존 뿐만 아니라 도로 전반에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설명했다.

nodelay@fnnews.com 박지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