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이상철 기자 = 롯데 자이언츠의 나승엽(20)이 NC 다이노스로 떠난 손아섭(34)이 남긴 등번호 '31번'의 새 주인이 됐다. 존경하는 선배가 달았던 등번호라 꼭 차지하고 싶어했는데, 뜻을 이뤘다.
롯데에서 31번은 10번(이대호)과 11번(고 최동원) 못지않게 상징성이 크다. 2007년 롯데에 입단해 KBO리그 최고의 교타자로 성장한 손아섭은 이 등번호를 달고 통산 2000안타를 달성했으며 5차례 골든글러브와 3차례 안타왕을 수상했다.
영원한 롯데맨이 될 것 같았던 손아섭은 지난해 12월 프리에이전트(FA) 신청 후 NC와 4년 64억원에 계약했다.
손아섭의 이적으로 31번은 주인을 잃었다. 이미 선수단 등번호가 정해진 상황에서 손아섭을 따르던 후배들, 나승엽과 최준용(21)이 31번으로 바꾸길 희망했다. 최종적으로 최준용이 1년 후배 나승엽에게 양보, 자신은 기존의 56번을 쓰기로 했다.
나승엽은 "사실 (최)준용이 형도 31번을 쓰길 원했다. 그러나 내가 이 등번호를 원하는 걸 들은 준용이 형이 '나보다는 네가 더 잘 어울리겠다'며 양보해줬다. 감사의 의미로 좋은 식당에 가서 식사 한 끼를 대접해야 할 것 같다"고 등번호 교체와 관련된 비화를 털어놨다.
손아섭도 자신을 가장 잘 따르던 후배가 등번호를 이어받았다는 소식에 크게 기뻐했다.
나승엽은 "(손)아섭 선배가 '다른 누구도 아닌 네가 31번을 달게 돼서 기쁘다'고 말해줬다. 그러면서 아섭 선배가 '2년차인데, 더 잘할 때가 됐다. 31번을 달고 작년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줘'라며 응원해줬다"고 말했다.
2021년 롯데에 입단한 나승엽이 손아섭과 함께 뛴 시간은 1년뿐이지만, 최준용까지 셋은 각별한 사이다. 나승엽과 최준용은 최근 제주도에서 자율훈련 중인 손아섭을 찾아가기도 했다.
나승엽은 "아섭 선배와는 지난해 스프링캠프에서 처음 인연을 맺었는데 그라운드 안팎에서 정말 많은 걸 챙겨줬다. 아섭 선배를 보며 자기관리의 중요성을 깨닫고, 프로에서 어떻게 운동하며 생존할 수 있을지에 대해 많은 걸 배웠다"며 "아섭 선배는 가장 존경하는 선수"라고 강조했다.
이어 "롯데의 31번은 상징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한다. 아섭 선배의 뒤를 잘 이어서 롯데의 31번에 어울리는 선수가 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손아섭은 NC에서도 등번호 31번을 받았다. 올해부터 롯데와 NC가 맞붙는 경기에선 롯데 31번 나승엽과 NC 31번 손아섭의 자존심 대결이 펼쳐지게 된다. 나승엽은 이에 대해 "아섭 선배와 그라운드에서 대결하게 된다면 기분이 묘할 것 같다. 그래도 프로의 세계니까 야구장 안에선 승부에만 집중해 꼭 이기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면서 손아섭의 당부처럼 더 좋은 활약을 펼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메이저리그 진출의 꿈을 잠시 접고 롯데에 입단한 그는 지난해 신인 야수 최대어로 평가를 받았으나 60경기에 나가 타율 0.204(113타수 23안타) 2홈런 10타점 16득점 OPS(출루율+장타율) 0.563으로 부진했다.
나승엽이 앞으로 손아섭 같은 길을 따라가려면 끝없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는 "지난해에는 정말 보여준 것이 하나도 없다. 공을 맞히는데 급급해 제대로 내 타격을 펼치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어 "비록 아쉬움이 많은 시즌이어도 프로 무대를 경험했다는 것이 가장 큰 의미가 있다.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를 확실히 느꼈지만 넘지 못할 수준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올해부터는 다르게 준비하고 있다. 헛스윙을 하더라도 나만의 타격을 펼치려 할 것이다. 또한 파워를 향상하기 위해 쉼 없이 웨이트트레이닝을 하는 중"이라고 전했다.
나승엽은 지난해 시즌을 마치고 빠른 병역 이행을 결정, 상무에 지원했으나 최종 탈락했다. 하지만 기회는 아직 남았고, 상무는 4월 추가 지원을 받을 예정이다.
내달부터 시작할 스프링캠프를 준비 중인 나승엽은 상무 재도전과 관련해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그렇지만 그는 롯데에서 자리잡을 수 있다는 확신이 서면 입대를 연기할 의사가 있다.
나승엽은 "지난해 합격됐다면 좋았을 텐데 고민이 더 많아졌다. 아직까진 결정된 부분이 없다. 구단과 상의한 뒤에 선택할 텐데 어떤 결정을 하더라도 후회가 없도록 하겠다"면서 "스프링캠프에서 내 기량을 잘 보여준다면 입대 시기를 늦추는 방향도 생각 중"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나승엽은 "개인적으로 목표를 잘 설정하지 않는 편이다. 자칫 그 목표를 의식해 조급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좋은 활약을 펼쳐) 지난해와 비교해 달라졌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다. 아울러 이대호 선배가 마지막 시즌에 롯데에서 우승 꿈을 이룰 수 있도록 힘을 보태고 싶다"고 바람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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