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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광장] 페미니스트세요? 아니세요?

김충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2.01.24 18:32

수정 2022.01.24 18:32

[fn광장] 페미니스트세요? 아니세요?
몇 주 전 우연히 TV를 틀었더니 대선 토론회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선거 판세가 안갯속이라서 그런지 기 싸움들이 대단했다. 각 당을 대표하여 나온 토론자들이 모두 여성 국회의원이라는 점도 시선을 끌기 충분했다. 의원들이 주도적으로 질문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고 정의당 장혜영 의원의 질문 순서가 되었다. 장 의원은 국민의힘 김은혜 의원에게 이렇게 첫 질문을 시작했다. "의원님, 페미니스트이세요? 아니세요?" 개인의 성향을 저렇게 공개적으로 물어도 되나 하는 생각이 순간 들었지만, 국회의원은 공인이니 유권자들의 알 권리가 더 중요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질문은 좋은 질문이 아니다. 질문 자체에서 '페미니스트가 아니면 바람직하지 못함'이라는 뉘앙스를 주기 때문이다. 나만 그렇게 느낀 것은 아닐 것이다. 또 이런 질문은 페미니즘이 '예' '아니요' 두 가지 선택밖에 없는 극단적인 현상으로 인식되게 만든다. 페미니즘도 중간지점이 있고 타협하는 부분이 있기에 '예' '아니요' 두 가지 답안지로 다 해결되기 어렵다.

최근 고 박원순 시장 성폭력 피해자가 '나는 피해 호소인이 아닙니다'라는 책을 발간해 박 시장과 주변으로부터 겪은 고통을 토로했다. 성추행 사건이 알려진 직후, 페미니즘 운동을 통해 권력자가 된 민주당 여성 국회의원들은 그녀를 피해 호소인으로 재빠르게 명명했다. 피해 호소인이라는 단어에는 고 박 시장이 가해자가 아니라는 암시가 들어있다. 2017년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대통령도 본인 스스로 페미니스트 대통령으로 자처했지만, 박 시장 성추행 피해 사건에는 침묵했다.

나도 여기서 질문하고 싶다. "박원순 피해자에게 피해 호소인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페미니스트일까요? 아닐까요?" 피해에 침묵했던 사람들이나 피해 호소인 명명자들이 어떻게 답변할지 궁금하다. 본인들에게 유리할 때는 페미니즘의 잣대를 들이대어 피해자이고, 불리할 때는 평소의 신념을 버리고 자기 편을 감싸기 위해 신조어를 만드는 결기가 놀랍다. 문재인정부의 여성가족부도 내 편 네 편 젠더 갈라치기를 했다는 비판을 계속 받아왔다. 이런 상황은 전 세계에 유례가 없으니 K-페미니즘이라고 호칭해도 될 것 같다. K-페미니즘 상황에서 페미니즘을 공격포인트로 삼는 것은 국민 다수의 공감을 받기 쉽지 않다. 그동안 정부와 정치권의 주도하에 성평등을 위한 법 개정 등 제도 개선의 성과도 있었지만, 우리나라 페미니즘의 가장 큰 문제는 권력을 향한 숨어 있던 탐욕을 국민에게 드러냈다는 점이다. 본인들의 정파에 따라 페미니즘이 추구하는 가치가 달라서는 곤란하다.
2022년 새해에는 여당이든 야당이든 정파와 상관없이 성평등 개선을 위해 노력하기를 바란다.

말로만 요란하게 페미니스트라고 선언하는 것보다는 행동에 옮기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페미니즘을 상대방을 공격하기 위해서나, 자기가 속한 정치권에 유리하게 이용하려고 악용하지 말자. 유리천장 지수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하위이고 성 격차지수가 세계 최하위권인 우리 사회에 개선해야 할 일들이 아직도 많기 때문이다.

이복실 전 여성가족부 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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