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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영끌한 82년생 김지영들…조남주 신작 '서영동이야기' [서평]

뉴스1

입력 2022.02.03 06:33

수정 2022.02.03 07:42

서영동이야기© 뉴스1
서영동이야기© 뉴스1

(서울=뉴스1) 박정환 문화전문기자 = 소설가 조남주가 아파트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룬 신작 '서영동 이야기'로 돌아왔다. "이 소설을 쓰는 내내 어렵고 괴롭고 부끄러웠다"다는 작가의 말처럼 82년생 김지영으로 연상되는 다수의 등장인물들은 더이상 남성중심사회의 피해자가 아니라 자신의 욕망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연작소설집 '서영동 이야기'는 서울 영등포구로 짐작되는 서영동 동아1차 아파트라는 가상의 공간을 배경으로 단편 7편을 묶었다. Δ봄날아빠(새싹멤버) Δ경고맨 Δ샐리 엄마 은주 Δ다큐멘터리 감독 안보미 Δ백은학원연합회 회장 경화 Δ교양 있는 서울 시민 희진 Δ이상한 나라의 앨리 등이다.

첫번째 단편 '봄날아빠(새싹멤버)'만 세세하게 살펴보면 네이버카페 '서영동 사는 사람들'에 부동산 관련 게시물을 도배한 봄날아빠가 누구인지 찾아내는 과정을 다룬다.

다만 작가 특유의 서사기법에 따라 이 과정보다 봄날아빠의 재산증식 과정에 초점이 맞춰진다.

봄날아빠는 서영동 아파트의 시세가 중개업소의 담합으로 다른 지역보다 저평가됐다고 비판하면서 지하철역 출구를 동아1차아파트 쪽으로 내도록 압력을 넣자고 촉구한다. 특히 봄날아빠가 압구정동에 있는 반포부동산에서 매매를 의뢰하면 좋다고 밝혀서 이해관계가 얽힌 것이 아니냐는 의심까지 받는다. 그는 이런 게시물 때문에 카페 관리자로부터 경고까지 받는다.

'중개업소 가격 후려치기에 당해 헐값 매도' '강력 규제가 잇따른다? 절대 안 잡힌다는 뜻' 등 다소 직설적이고 과격한 표현을 담은 글에 서영동 주민들은 동요하기 시작한다.

결혼 6년차 부부인 세훈과 유정도 해당 글을 눈여겨본다. 독자는 유정의 모습에서 82년생 김지영을 자연스럽게 겹칠 수 있다. 유정은 집안이 넉넉한 세훈을 만나 영끌할 필요 없이 신혼 생활부터 신영동에서 가장 비싼 이른바 '대장아파트' 34평에서 자가생활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유정은 사실 아파트 얘기가 싫다. 이 비싼 집을 세훈이 혼자 마련했다는 사실이 부담스럽다. 회사 동료들도, 오랜 친구들도, 세훈에게 잘해라, 했다"(18쪽)

서영동 주민들은 봄날아빠의 게시글 이후 자신들이 사는 동네의 집값상승 요인을 자각하기 시작한다. 인근의 특목고, 자율고, 과학중점고의 위치와 사교육 열풍으로 강남8학군에 비교할만한 학군이라는 것이 대표적이다.

결국 봄날아빠는 서영동 내에서도 가장 저평가된 동아1차아파트 입주자대표 안승복씨라는 것이 자연스럽게 밝혀진다. 그는 실생활에서도 아파트 가격 상승을 위해 노력하다가 아파트 관리인들과 갈등을 겪지만 그의 바람대로 동아1차아파트 시세가 상승한다.

이 소설집에는 이처럼 아파트를 둘러싼 여러 인물들이 나온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의 주인공 아영은 영끌을 해도 아파트를 살 수 없는 30대 초반의 시간제 강사다. '교양 있는 서울 시민 희진'은 25평 아파트에 영끌한 돈을 얹어가며 42평 아파트에 안착했지만 층간소음으로 갈등을 겪는다.

서영동 사람들의 핍진한 삶은 우리의 현실과 닮았다. 이 책의 미덕은 내 집 마련의 다양한 과정을 훑으면서 함께 살을 부대끼며 살아가는 가족의 가치를 곰씹게 한다는 점이다.

◇ 서영동 이야기 / 조남주 지음 / 한겨레출판사 / 1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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