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강남시선

[강남시선] 먹거리 가격 인상을 변호함

윤경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2.02.13 19:01

수정 2022.02.14 09:12

[강남시선] 먹거리 가격 인상을 변호함
연초부터 장바구니 물가 상승세가 심상치 않다. 장을 보는 아내의 지갑은 갈수록 가벼워지고, 마음은 무거워진다. 어지간한 식당에서 점심 한 끼 해결하려면 1만원 안팎이 든다. 편의점에서는 1000원으로 살 수 있는 물건이 거의 없다.

지난해 하반기 이후 라면, 커피, 치킨, 햄버거는 물론 음식점과 세탁소, 결혼정보회사까지 줄줄이 가격을 인상했다. 안 오른 제품을 찾는 게 힘들 정도다.
직장인들 사이에선 "월급 빼곤 다 오른다"는 말이 나온다.

하지만 눈총을 받는 기업들은 억울하다. 그중에서도 유독 먹거리를 만드는 기업에 화살이 집중된다. 여기저기 눈치를 보느라 참고 참다 몇 년 만에 겨우 올렸는데도 물가상승의 주범인 양 죄인 취급을 받는다.

"팜유와 밀가루 같은 원자재 가격이 너무 올랐다. 수년 동안 가격을 동결했는데 더 이상은 버티기 힘들다."(A라면업체 관계자)

"원유(原乳) 가격이 L당 21원이나 올랐다. 전반적 생산비용도 상승해 원가 압박이 극심하다."(B우유회사 관계자)

"인건비와 임대료 상승, 배달앱 수수료 부담 등으로 가맹점들이 사지로 내몰리고 있다."(C치킨 프랜차이즈 관계자)

식품·외식업계 관계자들의 하소연은 끝이 없다. 신제품이 나올 때마다 10만원, 20만원을 올리는 휴대폰 업체에는 너그러우면서 몇년 만에 100원, 200원 올리는 식품업체들에는 가혹하리만치 쌀쌀하게 군다.

대표적인 '서민 먹거리' 라면을 예로 들어보자.

농심 '신라면' 한 봉지는 주요 인터넷 쇼핑몰에서 700원 언저리에 팔린다. 롯데제과 '자일리톨 츄잉껌'과 비슷한 수준이다. 한마디로 라면이 '껌값'이라는 얘기다. 지난해 8월 오뚜기는 무려 13년 만에, 농심은 5년 만에 가격을 올렸다.

커피 값도 마찬가지다. 올해 초 스타벅스 코리아를 비롯해 투썸플레이스, 할리스 등 주요 업체들이 모두 가격을 올렸다. 커피 원두, 우유 등의 가격이 오르는 통에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항변한다. 스타벅스는 7년 반, 투썸플레이스는 9년 만의 가격인상이다.

많은 사람들은 '가격인상'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얼굴을 찌푸린다. 일부에서는 어려운 시기에 상생(相生)을 외면한 처사라고 비난한다. 그러면서도 상생의 다른 한 축인, '가격을 올릴 수밖에 없는' 기업의 사정은 애써 무시한다.

기업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적정 수준의 이익을 내야 한다.
1000원짜리 라면을 만드는 기업도, 100만원이 넘는 휴대폰을 만드는 기업도 마찬가지다. 그래야 새로운 생산설비와 연구개발에 투자할 여력이 생긴다.
우리가 더 다양하고 건강한 라면, 더 맛있는 커피를 먹을 수 있는 이유다.

blue73@fnnews.com 윤경현 생활경제부장
blue73@fnnews.com 윤경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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